왜 사람들은 꼭두새벽부터 운동을 할까?
‘숲세권’ 아파트는 대체적으로 다른 곳들에 비해 가격이 비싸다. 아파트 주변에 숲이나 산이 있어 자연 친화적이라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기 때문이다. 내가 이십 대에 살았던 아파트는 숲세권이었다. 물론 ‘숲세권’이라는 거창한 수식어를 앞에 붙여서 다소 있어 보이긴 하지만 실제론 집 앞에 작은 공원 겸 산이 있었던 것일 뿐이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서울 숲 바로 옆에 있는 ‘한화 갤러리아 포레’나 ‘아크로 서울 포레스트’, ‘서울 숲 트리마제’처럼 럭셔리한 곳과는 거리가 멀었다.
임용 시험을 준비하던 시절, 나는 매일 새벽 다섯 시 삼십 분에 일어나 옷을 챙겨 입고 집 앞 숲을 걸었다. 여름에는 얇은 바람막이를 입고, 겨울에는 두꺼운 오리털 파카를 입고 출발했다. 물론 주말에도 예외는 없었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매일 걸었다. 비가 오는 날에는 우산을 쓰고 나갔다. 이름하야 나만의 ‘새벽 걷기 프로젝트’였던 셈이다.
사실 이 걷기 프로젝트는 “아침마다 산책을 해서 건강한 체력을 가져야지.”, “공복 유산소 운동은 뇌세포를 활성화시켜준다는데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는 걷는 게 좋겠지?”와 같은 진지한 고민에서 출발했던 게 아니었다. 그 시작은 지독하게도 단순했다. “늦잠자면 집에서 눈치 보이니까 일단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자.”였다. 일어나자마자 독서실이나 도서관으로 갈 수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공영 도서관은 아침 8시는 되어야만 문을 열었다. “공부하러 가긴 뭐한 시간이니깐 그냥 집 앞이나 걷자.” 나의 ‘새벽 걷기 프로젝트’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사실 ‘새벽 걷기 프로젝트’를 선택하게 된 데에는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었다.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는 표현이 조금 더 적당한 것 같다. 내가 새벽 걷기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돈이 들지 않아서였다. 임용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학생이었기에 돈이 넉넉하지 않았다. 생활비에 여유가 있는 직장인들처럼 퍼스널 트레이닝을 받거나 수영, 클라이밍과 같은 스포츠를 즐길 수는 없었다. 하지만 산책은 달랐다. 돈이 필요하지 않았다. 집 앞을 걷는데 운동복이나 클라이밍 슈즈, 월 회비 같은 게 필요할리 없었다. 그냥 집에 있는 옷을 입고, 어제 신었던 신발을 신고, 출발하면 됐다.
코스는 한 시간 정도였다. 삼심 분 정도 걸어서 도착하게 되는 곳에 다다르면 한 바퀴 돌아서 같은 코스로 되돌아왔다. 특별한 생각을 하면서 걸은 것도 아니다. 굳이 머릿속에 떠올랐던 생각들이라면 “오늘은 너무 춥네.”, “오늘은 따뜻하네.” 이정도? 아무튼 이 과정을 한 달 정도 반복하다보니 한 가지 궁금한 게 생겨났다. 나를 제외한 사람들의 연령대가 궁금해졌다. 나 이외의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그 다음 날부터 걸음이 아니라 사람들의 인상착의에 집중했다. 우선 남성인지 여성인지 성별을 확인했다. 그리고 30대인지, 40대인지, 50대인지 나이를 짐작했다. 그 다음으로는 표정을 살폈다. 나처럼 별생각 안하고 걷고 있는지 아니면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지를 관찰했다. 이런 저런 추측을 하다보면 한 시간은 훌쩍 지나갔다.
자, 한 번 상상해보자. 아침 여섯 시 우리들의 집 앞에 있는 작은 산이나 공원, 조금 더 고가의 아파트에 살고 있다면 아파트 산책로 정도가 되겠다. 이런 곳에는 어떤 사람들이 걷고 있을까? 어떤 성별, 어떤 연령, 어떤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아직 해가 뜨기도 전인 아침 여섯 시부터 나와 산책을 하고 있을까?
아쉽게도 이 질문에 대한 데이터를 가지고 있는 리서치 기관은 아직까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런 질문을 떠올렸던 나조차도 어떤 사람들이 산책을 하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증명하진 못한다. 그들에게 “혹시, 나이는 어떻게 되시고 어떤 일을 하고 있으신가요?”와 같은 질문을 해본 적이 없기에. 혹시 아침에 집 앞 공원에서 산책을 하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꼭 친절하게 대답해주길 바란다. 그 사람이 훗날 학계에 최초로 발표될 논문을 써낼 수 있는 비범한 사람일지 모르는 일이다.
여하튼 지역을 막론하고 아침 시간에 온 몸을 싸매고 나와 걷고 있는 사람들을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 사람들이 아침 여섯 시에 출근이 아닌 산책을 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