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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li May 19. 2020

한 번 사면 죽을 때까지 입는 옷

파타고니아를 사는 이유, ‘가치 소비’

보통의 직장인들은 평일에는 정장을 입습니다. 하지만 최근 여러 회사들은 ‘캐주얼 데이(Casual day)’라는 걸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매주 수요일이나 금요일에는 정장이 아닌 편안한 복장을 입는 것이죠. 그래서 수요일이나 금요일에 광화문 주변에는 딱딱한 정장보다는 편안한 캐주얼을 입은 사람들의 숫자가 훨씬 많습니다.

    

Photo by Roberto Júnior on Unsplash


하와이에서 시작되었다고 알려진 캐주얼 데이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뉴욕에 있는 금융·증권 거래의 중심지인 월스트리트에서도 보편화된 기업 문화입니다. 그런데 이 캐주얼 데이에 미국의 금융, 증권맨들이 모두 같은 브랜드의 조끼(Vest)를 입기 시작했다는 기사가 월스트리트 저널(WSJ)에 등장했습니다. 어디서 동시에 기부를 받거나 공동 구매라도 한 것일까요? 월스트리트에서 일하는 금융인들의 상징이 되어버린 그 조끼 브랜드는 바로 환경 친화적인 기업으로 알려진 파타고니아입니다.


캐주얼 데이의 문화가 월스트리트에 막 번져나가기 시작할 당시, 금융계와 IT업계에서는 파타고니아의 조끼를 대량으로 구입하여 직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합니다. 이게 몇 년 동안 반복되다 보니 직원들의 대부분이 파타고니아 조끼를 갖게 된 것이죠. 제가 직접 가보지는 못했지만 아마 월스트리트의 사람들은 파타고니아 조끼를 입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저 사람은 골드만삭스에 있는 사람인가?”, “저 사람은 J.P.모건체이스에 다니는 사람인가?”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가 광화문에서 말끔한 정장에 사원증을 목에 걸고 커피를 들고 있는 사람들 봤을 때 “저 사람은 증권 회사 사람인가?”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죠.



그런데 ‘월스트리트=파타고니아 조끼’라는 공식이 생겨날 무렵, 파타고니아는 월스트리스트의 회사들에게 다음과 같은 선언을 했습니다.


‘월스트리트=파타고니아 조끼’


     

“이제는 저희 회사 옷 마음대로 못 삽니다. 환경 보호에 앞장서는 기업들만 저희 옷을 살 수 있습니다.”

    

그때 이후로 파타고니아 조끼를 입으려면 환경보호에 기여하고 있다는 증거를 제출해야 되게 되었습니다. 조끼 하나 사는 과정이 굉장히 까다로워진 것이죠. 실제로 한 회사는 파타고니아 측에 조끼 구입을 신청했지만 환경 보호에 기여한 바를 인정받지 못해 구입을 거절당했다고 합니다. 파타고니아의 이런 배짱 마케팅에도 불구하고 월스트리트에 있는 유수의 기업들은 환경보호에 기여한 실적을 제출하면서까지 파타고니아의 제품을 사용하려고 합니다.


출처 : patagonia 공식 홈페이지  





파타고니아 설립자 

이본 쉬나드가 추구하는 가치     


파타고니아의 설립자인 이본 쉬나드(Yvon Chouinard)는 암벽등반가이자 환경운동가입니다. 아웃도어와 관련된 분야에서 수십 년 동안 일하고 있는 사업가이기도 하고요. 파타고니아라는 브랜드가 지금의 위치에 올 수 있었던 것은 이본 쉬나드가 가지고 있던 신념와 가치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가 품었던 가치가 파타고니아라는 기업이 나아갈 방향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일종의 나침반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이런 가치들이 구성원들에게 공유되며 파타고니아라는 회사 전체의 기업 문화를 만들었을 테고요.


Photo by Christoph Deinet on Unsplash

   

이본 쉬나드는 파타고니아라는 기업을 40년 동안 운영하면서 배우게 된 내용을 담은 그의 책 『The Responsible company』를 통해 자신이 일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의미 있는 일이란
일을 사랑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일을 통해 세상에 기여하는 것이다.

그의 신념에 맞게 파타고니아에서는 세상에 기여하는 일들에 에너지를 지속적으로 쏟고 있습니다. 일단 금액이 높아지더라도 유기농·친환경 원단만 사용합니다. 직원들의 복지를 위해 상당한 금액을 지출하고 다른 업계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의 자유를 보장해줍니다. 매년 매출의 1%는 환경보호를 위해 기부합니다. 심지어 적자가 나는 해에도 기부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죠. 그래서인지 현재까지 환경을 위해 기부한 금액만 우리나라 돈으로 1000억 원을 훌쩍 넘는다고 합니다. 아웃도어 브랜드로써 이익을 추구해감과 동시에 보다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는 브랜드가 바로 파타고니아입니다.






파타고니아의 배짱, 

“이 옷을 사지마세요.”     


매년 11월의 마지막 목요일인 추수감사절의 다음 날. 미국인들은 이날을 블랙 프라이데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흔히 연말 세일 기간으로 알려져 있죠. 여러 가지 제품들의 할인 폭이 급격하게 높아지는 때니까요. 기업들의 매출이 최고조에 이르는 달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시기에 파타고니아는 뉴욕 타임즈에 다음과 같은 광고를 실었습니다.




“Don't buy this jacket. Unless you need it.”

(필요하지 않으면, 이 재킷을 사지 마세요.)

 

제발 우리 재킷을 사달라고 말해도 모자를 판에 대놓고 사지 말아달라고 광고한 거죠. 당연히 이슈가 되었습니다. 파격적인 광고 문구 아래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덧붙었습니다. (아래 내용은 광고에서 설명한 그대로가 아니라 그 내용 속에 담긴 의미를 바탕으로 제가 이본 쉬나드에 빙의되어 이야기하는 것이라는 점을 미리 밝힙니다.)


어떤 재킷이든 생산하는 것 자체로 환경에는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칩니다. 많은 물이 소비되고 생각보다 많은 탄소가 배출됩니다. 설사 오래 입는다고 하더라도 언젠가는 버려지게 됩니다. 진정으로 환경을 생각한다면 되도록 적게 생산하는 게 옳은 일입니다. 그게 바로 우리가 필요하지 않으면 이 재킷을 사지 말아달라고 하는 이유입니다.”


Photo by Sander Crombach on Unsplash

      

지속가능한 개발, 지구를 되살릴 수 있는 사업을 꿈꾸는 파타고니아는 이와 같은 경영 철학 아래에서 ‘옷 고쳐 입기 캠페인’이나 ‘옷 물려 입기 캠페인’과 같은 캠페인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팝업 스토어를 통해 옷을 무료로 수선해주는 행사를 벌이기도 하죠. 아버지가 젊은 시절에 입었던 후리스를 딸이 입고 있는 사진으로 광고를 하기도 하고요. 아이러니하게도 “환경을 생각해서 되도록 적게 사자.”는 슬로건이 오히려 광고 효과를 발휘해서 마니아들이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게 바로 소위 ‘파타고니아 덕후’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고 있는 이유입니다.






고객들은 ‘가치 소비’를 한다.     


이본 쉬나르의 신념이 반영된 브랜드, 파타고니아를 통해 우리는 이런 점을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믿고 꾸준히 노력하다보면 우리의 브랜드는 언젠가 성공할 수 있다. 그 진정성을 고객들이 알아줄 테니까.”


사람들은 파타고니아를 구입하는 것이 단순히 옷을 구입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파타고니아 제품을 사는 것이 지구를 생각하고, 환경을 생각하고, 공정무역을 생각하는 한 가지 실천 방법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다른 아웃도어 브랜드보다 조금 더 비싸더라도 흔쾌히 구입합니다. 이게 바로 가심비(가격대비 마음의 만족을 추구하는 소비)를 추구하는 ‘가치 소비’, ‘책임 있는 소비’입니다.


최애장품, 파타고니아 나노퍼프

  

파타고니아처럼 브랜드가 지향하는 가치가 분명하다면 고객들은 그 브랜드의 진정성에 공감하게 됩니다. 진정성에 대한 이해는 브랜드에 대한 신뢰로 이어지고요. 


이게 바로 파타고니아가 “우리 옷을 사지 마세요(DON'T BUY THIS JACKET!)”라고 아무리 외침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최고 매출을 달성해가고 있는 이유가 아닐까요? 


그래서 저도 오늘 아침 파타고니아를 입고 출근했습니다. 죽을 때까지 입으려고요. 






Reference

Wall Street Bankers No Longer Fully Vested

리스판서블 컴퍼니 파타고니아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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