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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캉 Aug 31. 2024

청춘, 가리워진 길을 걷다

 - 오봉산 유격장가는 행군 길

갓 스무 살을 넘었을 무렵 내 인생처럼 알 수 없던 그 길을 걸었다.
유격장을 가는 길은 고참이 으름장을 놓은 덕분에 긴장하고, 유격에 대한 두려움으로 감흥도 없이 25킬로를 걸었다.
양말에 바른 비누 때문인지 물집도 없이
초조하게 유격을 맞이했다.

아마도 군대 행군이 아니었으면 벚꽃 날리는 봄이 무척 이도 설레는 청춘의 나날이었을 것이다.

신문 사진을 근거로 옛 행군을 상상한 그림


그 아름답던 길은 어쩌면 그 길을 걷던 수많은 이들의 청춘의 길이었음을
앞을 알 수 없음 조차도
나를 닮아, 내 옆 전우를 닮아 있음에
어쩌면 아름다웠던 것은 아닐까



한 달 같던 그 뜨거운 봄날의 일주일은 가고
먼지 찌든 훈련복 벗고
준비해 둔 군복을 입으며
아마도 그때,
우리의 미래 또한
고난 뒤에는 잠시라도 뿌듯한 성취감을
얻으리라 믿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젊은이들이 단체로 걷는 길은 가끔 낭만적 밝음이 스며있다.
돌아가는 행군길은 아는 길이라서
물건을 다 판 보부상처럼
방학하고 집으로 가는 하굣길 마냥
들뜨고 가벼웠다.
가끔은 살짝
구름빵을 먹은 듯
떠서 걸었는지도

유격을 끝내고 복귀하는 길은 주말과 겹쳐 술 취한 아저씨, 아줌마의 응원을 받기도 하고, 젊은 연인에게 응원과 부러움에 휘파람도 불면서 저녁부터 새벽까지 청명한 프러시안 블루 같은 밤을 걸었다.


가려져 보이지 않고, 불안해서 두려웠던 그때의 길은 어쩌면 알 수 없어 신비롭고

처음이라 설레었던 내청춘의 시간임을

이제야 알게 된다.

-24. 로캉

유격후 기념 사진 (옛 전우들에게 초상권 보호를 위해 선글라스처리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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