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려주지 않는 사회에서 꿈을 꾼다는 것
‘꿈=직업’이라고 딱 잘라 말할 순 없지만 어린아이들은 대개 장래 희망을 자신의 꿈으로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내 꿈을 돌이켜 보자면 그 모습은 흐리고 희미했다. 나는 운동이나 예체능에서 두각을 드러내지도 특별히 잘 하는 것도 없었다. 다른 아이들처럼 평범하게 매일 학교를 다녔고 고만고만하게 공부를 했다. 미술을 제외하면 그렇게 싫어하던 과목도, 열정을 가지고 디립다 팠던 과목도 없었다.
중학교 땐 화학이 좋아서 화학자를 꿈꿨던 적이 있었다. 고등학교에 와선 물리학을 전공할까? 공대에 진학할까? 를 생각하기도 했지만 수학과 과학에 젬병이라는 걸 깨닫곤 뒤늦게 이과에서 문과로 전과를 했다. 그 이후엔 심리학과 사회학에 관심이 있었지만... 미래에 무엇이 되고 싶은지에 관해선 확신이 없었다. 미래의 내 모습은 뿌옇게 보였고 잘 그려내지 못했다.
대학에 입학하고 나선 원하던 모든 것을 다 이뤘다고 생각했다. 입시로부터 벗어나 대학생이 된 게 정말 기뻤고 스스로가 대견스러웠다. 그래서 고등학생 때는 못 했던 것들을 맘껏 하면서 새내기 생활을 만끽했다. 수고한 나를 위한 보상이었다. 그러나 대학 생활을 만끽할수록 공허함이 밀려왔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여전히 모르겠는데, 어떤 미래를 그려야 할지 확신조차 없는데 시간은 성큼성큼 흘러갔기 때문이었다. 많은 날을 방황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겐 뒤늦게 사춘기가 온 것처럼 굴었다. 다들 서로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었을 텐데... 나만 세상의 모든 짐을 떠안은 것처럼 시간들을 보냈다. 그때를 돌이켜보면 많은 사람들에게 참 미안하다.
미래에 대한 고민과 방황에 사로잡혀 있었던 20대의 어느 시절, 그땐 그 모든 게 나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여태껏 수동적으로 살아왔던 삶에서 스스로 길을 찾길 바랐던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방황 속에서도 여전히 스스로를 잘 알지 못했다. 세상이 얼마나 넓은 지도 말이다. 그 시절의 내게 필요했던 건 뭐였을까. 홀로 몸부림치던 그 시절을 떠올려보면 내 삶과 미래의 꿈에 대해 좀 더 일찍 고민해 볼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초등학교를 다닐 땐 해마다 <학부모 희망 직업>과 <본인 희망 직업>을 써서 냈던 일이 떠오른다. 그리고 미술 시간엔 종종 장래 희망을 주제로 그림을 그렸다. 그 경험들은 꿈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최초의 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좀 더 자라 고등학생 때는 담임선생님과 진로 상담을 여러 번 했다. 그동안의 모의고사 점수와 내신 성적을 함께 보면서 진학 가능한 대학과 학과를 찾아봤다. 담임 선생님이 조언을 해 주시기도 했고 어디를 갈 수 있는지 스스로 알아보기도 했다. 점수대를 놓고 가능성을 점쳤다. 대학 진학 전략이랄까?
정규 교육을 받으면서 여러 차례 진로 교육을 접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워지지 않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때, 나와 세상에 대해 좀 더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면 어땠을까? 지금 같은 상황이 계속된다면 당치 않은 소리일지도 모르겠지만.
초등학생 때는 미래가 영영 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고 중학생 때는 몇 년 뒤를 고민하기보다 당장 오늘 게임을 하는 게 좋았다. 고등학생일 때는 수능이라는 관문만을 생각해서 그 이후는 내게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선 뒤늦게 나라는 사람을 생각해 보기 시작했고 내 미래를 그려보고자 애썼다. 하지만 이미 너무 많이 와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특별한 재능을 가진 것도 아닌 평범한 내가 꿀 수 있는 꿈들은 무엇이 있는지도 잘 몰랐다. 무엇보다 '세상이 나를 기다려 줄까?' 하는 불안감이 내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
가끔 스웨덴에 있는 한국인 유학생들과 대화를 나눌 때면 각자 미래에 대한 고민과 불안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다. 나이가 벌써 이만큼이나 됐는데 학업 이후엔 뭘 할 수 있을지 불안하다는 것이다. 한국에 돌아가 직장을 구하기엔 너무 늦은 나이는 아닌지, 지금껏 사회생활 경험 없이 공부만 해왔는데 취업이 될지... 그들 고민의 출발점은 기다려 주지 않는 사회에 있다. 시간은 늘 알뜰하게 사용해야 해서 졸업 후엔 남는 틈 없이 입사 지원을 해야 취업 성공 가능성이 커진다고들 한다.
그랬기에 스웨덴에서 교육 인터뷰를 하며 들었던 교사들의 이야기는 낯설게 들렸다. 학생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Gap year)을 2-3년 정도 가진 뒤에 대학에 간다는 이야기. 자신이 원하면 뭐든 배울 수 있고 다시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는 이야기. 공부를 더 하고 싶어 교직을 관두고 대학원에 갔었단 이야기.
우리도 생각은 해보지만 쉽사리 실행하기 힘든 것들이다. 나를 알기 위한 시간도 필요하지만 그 때문에 자칫 미래의 기회를 얻지 못할 수도 있을 거란 불안에 휩싸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선 많은 기업들이 '나이'를 족쇄로, 또 나이만큼의 '경력'을 필수라 칭하며 우리를 압박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남들은 달리는데 나는 나만의 속도로 가겠다는 건 큰 용기가 필요하다.
내가 지금 넘어져도 다시 새롭게 출발할 수 있을까? 스스로의 질문에 나는 도전에 대한 기대보단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앞선다.
지금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이 경험하는 진로 교육이나 미래에 대한 생각은 예전의 나 때와는 다를 것이다. 대학 입학 전형이 다양해지고 정시보다 수시가 많아서 어떤 학과를 갈지 미리 생각하고 꾸준히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2016년부터 모든 중학교에서 시행된 자유 학기제로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고 탐구하는 시간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자유 학기제에 대한 비판도 있지만 이를 보완해서 실행하면 지금까지의 진로 교육보다 발전된 교육을 학생들이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자유 학기제
중학교 과정 중 한 학기 동안 학생들이 시험 부담에서 벗어나 꿈과 끼를 찾을 수 있도록 토론, 실습 등 학생 참여형으로 수업을 개선하고, 진로탐색 활동 등 다양한 체험 활동이 가능하도록 교육과정을 유연하게 운영하는 제도. 아일랜드의 전환 학년제(고교에 들어가기 전, 1년 동안 운영되는 학교 교육과정. 인생의 여유를 갖고 스스로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환경을 보장)를 모델로 했다.
출처: 교육부 자유학기제, 나무위키 자유학기제
교육이 내 꿈을 결정해 줄 순 없다. 선택과 고민은 온전히 내가 해야 하는 것이지만 적어도 그 선택에 이를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학교와 선생님 그리고 배움이 충분했으면 한다. 학교가 내게 알려주지 않았던 것들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다. 아울러 지금까지 개인 각자의 몫으로 주어진 미래에 대한 고민과 방황을 교육이 보듬어 줄 수 있다면 좋겠다. 나는 너무 늦게 시작했던 나는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와 같은 스스로에 대한 물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