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승아리 Jul 24. 2024

생활통지표를 믿지 마세요

맘카페에 자랑하지 마세요.

어김없이 다가온 7월

아이들 손에 들려 보낼 1학기 생활 통지표를 작성하는 달이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던 홍길동이 이런 마음일까.

아이에 대해 있는 그대로 쓸 수 없는 우리는 모두 홍길동이다.


생활통지표

가정통신문, 행동발달은 다섯가지 특징을 가진다.


첫째,

생활통지표에 있는 '아이의 정보'는 모두 좋은 말 대잔치다.

요즘 학교에서 솔직함은 죄악시되고 있다.  

아이에 대해 솔직하게 쓴 글은

교사에게 100배 더 강력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일이 많으니 '못하는 것'은 적지 않는 것이 룰이다.


긍정적인 효과는

일단 학생, 학부모의 기분이 좋다.


부정적인 효과는

아이의 메꿔줘야 할 부분

더 신경 써야 할 힌트를 얻을 수 없다.


둘째,

교사 유형에 따라 생활 통지표 속 기술도 달라진다.

평소 영희는 친구들에게 부정적인 말과 짜증을 자주 내어 학급 내 자주 트러블이 일어나고, 친구들이 그런 영희를 싫어하여 교우 관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교사 유형 1. 이게 무슨 말인지 잘 해석하세요!

"자신의 감정만큼 다른 사람의 감정도 소중함을 알고 존중하는 태도를 가지면 좋겠음."

선생님은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특별히 부정적인 말은 없는데 애매하다.  

암호 해독이 될 때까지 보고 또 봐야 한다.


교사 유형 2. 예쁜 포장지에 싸서 보냅니다. 잘 풀어서 알맹이를 확인하세요!

"00는 감정표현이 매우 솔직하고..."

감정표현이 매우 솔직해서, 이는 매우 솔직해서 문제가 있으니 덜 솔직해도 된다는 뜻이다.


교사 유형 3. 그래도 난 할 말 하련다!

"친구들에게 부정적인 말과 짜증을 자주 내어"

통지표를 확인하던 교감선생님은 포스트잇 메모지에 이렇게 적어 전달한다.

'아이의 발전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적어주세요.'

"친구들에게 매우 솔직하게 감정을 표출하는 경향이 있어 차분한 마음가짐을 갖추고자 노력하면 발전이 있을 것으로 보임."으로 수정되었다.


교사 유형 4. 난 모르겠다.

"밝고 성실하게 학교 생활을 하며 주어진 과제를 빠짐없이 해오는 등..."

어디에도 '감정 표현'이나 '친구'이야기가 없다.

아이가 한 학기 동안 가장 고난을 겪었던 정보가 아예 없다.

안 적으면 그만이다.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사실 이 유형이 가장 안전하다.

그러나 학부모가 아이의 어려운 점을 알고 함께 고민하고 노력할 기회가 없다. 

점점 교사들이 이런 유형이 되어간다.


초등연령기 아이가

5개월의 단체 생활 속에서

어찌 완벽할 수 있을까.

어찌 칭찬 한 가득하기만 할까.

그 아이는 "하산 하라."


정말 이 글을 오롯이 믿기에

부모들은 아이들의 통지표를 카톡 프로필에 올리고

맘카페에 서로 자랑하는 것일까.

 

셋째,

이순신에게 12척의 배가 있었다면

교사들에겐 순화된, 돌려서 표현한 문장들이 수백 개 있다.   

수업 중 바른 자세를 유지하는 습관을 기른다면

:가만히 못 앉아있다.

주도성이 강하여 놀이를 이끌어가는 편이며 자신의 의견을 명확하게 잘 말하고

:대장노릇만 하려 한다.

솔직하고 자기 주관이 뚜렷하며, 타인의 의견에 휘둘리지 않고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것을 선호함.

:눈치 없고 분위기 파악 못한다.

사고와 행동이 자유분방하고 주관이 뚜렷함.

:예의가 부족하다.

주변에 대해 관심이 많음.

:간섭을 많이 한다.

감정 표현이 솔직함.

:상처 주는 말을 많이 한다.

친구들에게 매우 관심이 많음.

:고자질을 자주 한다.

문제상황이 생겼을 때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의 중요성을 깨닫고

:평소 부정적인 성향이다.

완벽을 추구하는 성향으로

:예민하다.

수업 중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며 참여하고

:쓸데없는 말이 많다.


넷째,

이런 표현이 있다면 적극 관심을 가지고 도와주어야 한다.

1. 00을 연습한다면-

2. 00을 노력한다면-

3. 00 한다면 발전할 것임.

4. 공부 이야기만 있고, 생활면 또는 교우 관계 내용이 없을 때


다섯째,

이런 표현이 있다면 흐뭇해도 된다.

1. 친구들 사이에 신뢰가 높고

2.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고


아이들도 보는 눈이 있다. 아무나 안좋아한다. 친구들에게 신뢰가 높고, 인기가 많다는 표현을 받았다면 학교 생활을 잘하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런 아이는 어쩌면 교실에서 선생님께 힘을 주는 아이일지도 모른다.




물론 진심을 다해 아이들의 성장과 발전을 바라며 소신껏, 정성껏 통지표에 기록하는 교사도 있다.

그러나 한 점에 불과할 것이다.


아이의 바른 성장에는 어른의 도움이 필요하다.

아이는 미성숙하다.

이 전제를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요즘이다.


아이를 키우는 두 주체라고 할 수 있는

교사와 학부모 사이에

아이의 자라는 모습이

감추어지고 꾸며질 때

아이는 잘 자랄 수 있을까.

이 악순환의 결과물은 과연 무엇일까.


소신껏 아이를 평가하는 교사의 용기

아이의 진짜 모습을 궁금해하는 학부모의 용기

모두의 용기가 필요한 지금이다.





 


이전 04화 야, 그건 속으로만 생각했어야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