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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아리 Jul 10. 2024

아이들이 앙갚음

우리 반 여우와 두루미

'여우와 두루미' 이야기의 주제는 무엇일까?

존중하자? 배려하자?

아니. 먹는 걸로 치사하게 앙갚음하지 말자!

난 매일 교실에서 '여우와 두루미'이야기를 목격한다.


우리 반은 교실에서 급식을 먹는다.

아이들이 돌아가며 친구들에게 배식을 한다.


오늘은

준후가 급식판을 들고 씩씩대며 온다.

"선생님~ 채희가 이렇게 줬어요~!"


아이가 내민 급식판에는 멀건 국물만 찰랑~인다.


아까 국어시간에 둘이 티격태격하더니

채희는 탕국 건더기로 준후에게 복수를 한 듯하다.

(너.. 무.. 티 나게..)


매일매일 '배식의 공정성'을 교육하지만

아이들은 식판에 반찬 하나 더 올려줌으로써

사랑을 표현하고

국물 건더기를 주지 않음으로써 앙갚음을 한다.


'아이고 머리야..'

"채희야~~ 건더기 줘라~~~ 건더기 많잖아~~!"


아이들의 앙갚음.


먹는 걸로 이러는 건 아니라고 아무리 말해도

급식 반찬으로 '쏘야(소시지 야채볶음)'가 나올 때

"소시지 3개 하고 야채도 같이 줘"라고 알려줘도


"선생님! 얘가 소시지 하나만 줘요!"

"선생님! 저는 야채만 줘요!"

하는 울부짖음은 필연적이다.

식판을 들고 오는 애가 누군고~ 보면

아... 너구나.

고개가 끄덕여진다.


어느 정도 포기했다.

아무리 말해도 반복의 나날이다.

그래, 괜찮다.

탕국에 건더기야 내가 더 주면 되니까.


청소시간에 자기 자리 밑 쓰레기를

미운 친구 자리에 슬쩍 흘러보내도

괜찮다.

내가 청소기로 흡입하면 되니까


가정통신문 나눠줄 때

미운 친구 제일 구겨진 거 줘도

괜찮다.

다시 프린트하면 되니까


실내화 숨기기

교과서 없애기

지우개 가져가기

누가 했는지 모르는 이런 건

안 괜찮다.

 1. 지속적일 때

2. 행동이 심각할 때

3. 고의성이 있을 때

이건

학교폭력이 되어버리니까.


급식은 귀여운 수준이다.

선을 넘는 앙갚음도 있다.

몇 해 전에 일은 아직도 어찔하다.


아이들이 다 집으로 간 오후 늦게 전화가 왔다.

느낌이 안 좋다.

 

"선생님! 재우가 철훈이 물통에 손소독제를 넣었답니다!"

"네??? 재우가요???"


재우가 철훈이 물통에 뭘 넣었다고?

손소독제?


한창 코로나로 교실엔 손소독제와 소독약품들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담임은 몰랐던 죄로 30분 넘는 시간 동안 고개를 숙인 채 어머니의 속상함을 들어야 했다.

그런데 나도 너무 속상하다.

철훈이 엄마 말이지만, 아직 재우와 이야기해보지 않았지만


아니길 바랐건만.

사실이었다.

다리에 힘이 풀린다.


사실 철훈이는 ADHD가 있다.

아이들은 모른다.

철훈이의 돌발행동을 개그맨이 꿈인 걸로 포장했기에

고개를 갸우뚱하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그렇게 그렇게 넘어갔다.


최근 재우와 철훈이가 목소리를 높이며 투닥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재우가 이런 행동을 할 줄이야.

그런데 재우가 손소독제를 넣고,

철훈이가 물을 마시려고 할 때

본인이 사실대로 말해서 철훈이는 물을 마시지 않았다고 한다.


아무리 미운 감정에 골탕 먹이고 싶었다지만

타이밍을 놓쳤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재우는 다시는 이런 행동을 해선 안된다.

재우를 어떻게 교육해야 할까.

라고 생각했는데


재우는 철훈이의 이해되지 않는 행동이 너무 싫어

그런 행동을 충동적으로 했지만

선생님이 어제 야단을 쳐서

아이가 기가 죽었다며

오늘 학교를 보내지 않겠으니 내일은 아이를 보듬어 달라는

중요한 건 철훈이가 그걸 마시지 않은 거라는 재우 아버님의 전화에ㅡ

재우를 교육할 기회를 잃었다.


철훈이 마음을 어떻게 치유해 주지.

철훈이도 아이들에게 이해 안 되는 소리나 행동을 자제하도록 이야기를 더 나눠봐야겠다.

라고 생각했는데


놀란 마음으로 선생님께 전화했는데

선생님이 제일 처음 한 말이 "네? 재우가요?"라서 너무 서운하다며

저녁에 아버지와 함께 교실로 찾아온 철훈이 어머니 모습에ㅡ

철훈이를 위로할 기회를 놓쳤다.


그렇게

두 녀석은 서로를 투명인간 취급한 채로 졸업을 했다.


아이들의 티격태격이

못다 푼 분풀이가

귀여움으로

웃고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이길

담임인 내 눈앞에서 해주길

그래서 딱 걸려주길 바라며

오늘도 눈에 불을 켜고, 귀를 2배로 키우며

여우와 두루미를 찾는다.  



근데..

그냥 한 번쯤은

'쟤 왜 저래~'

'뭐 잘못 먹은 거?'

'아침에 집에서 혼났나?'하고

걔를 좀 가엾게 어여삐 봐주면 안 될까.

한 번쯤은 그냥 넘어가 주기도 하고,

걔도 예전에 너 봐준 적 있을 텐데.

조금만, 조금만

마음을 좀 키워보자. 쫌.


*아이들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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