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승아리 Jul 03. 2024

병원 도움을 받아보면 어떨까요?

그 말을 하기까지.

이상하다.

아무리 봐도 이상하다.


그리고 모르겠다.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이런 때는 없었다.

의사들이 환자 처방을 하듯

어떤 아이를 만나도 그 아이에 맞는 지도 방법이 나온다.


그런데 경민이는 모르겠다.


계속 당한다.

어떤 날은 참지 않고 폭발하면 아이들은 그 모습을 보며 히득히득 웃는다.

쉬는 시간마다 복도를 혼자 걸어 다닌다. 복도 벽을 훑으며 혼잣말을 하며.

경민이랑 마주 앉아 이야기하면 독백하는 연극배우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 같다.

주고받는 소통이 안된다.


"경민이 이상하지 않아요?"

내 말에 모두 고개를 돌린다.


6학급 작은 학교,

열 명 남짓 교사들의 회식 자리에서도 혼자 복도를 걷는 경민이가 생각났다.

"경민이 부모님을 만나봐야겠어요."

다음 날, 교장선생님께서 부른다.

"이 부장, 좀 더 지켜보고 만나보는 게 어때요?"


뭘 더 지켜보지.

지금 이 아이는 충분히 힘들고 외롭고 괴로운데.

이미 다 알고 있지 않은가.

이 아이는 평범하지 않으며 교사의 힘으로 도울 수 없다는 걸.


"어머니, 경민이 담임입니다. 직접 뵙고 상담가능하실까요?"


경민이 어머니와 만나기로 한 날이다.

난 확신에 찼는데 가슴이 너무 뛴다.

쿵쾅거리는 심장소리가 교실을 메운다.


어제까지만 해도 자신 있었는데

오늘 너무 자신이 없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상처받겠지.

나한테 서운해하겠지.

나랑 적이 될 수도 있겠지.


나와 마주 앉은 어머니의 표정은

내 마음을 읽은 듯 한 표정이다.


"어머니.. 경민이.. 병원 도움을 받아보면 어떨까요?

솔직히 경민이를 돕고 싶은데 참 어렵습니다.

전문가를 만나면 학교에서 집에서 어떻게 경민이를 도와줘야 할지 알려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


말해버렸다.

이제 다음 상황은 온전히 내 몫이다.

어떤 반응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


"선생님, 추천해 주실 병원 있으세요?"


"아 네, 이 두 군데가 유명하더라고요.."


"네, 감사합니다. 가보겠습니다."



퇴근하는 차 안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건지.

경민이 엄마는 얼마나 속상할까.

내 생각은, 내가 한 말은 어쩌면 무책임이 아닐까.

아니야, 백번 넘게 고민하고 말한 거야.

그런데, 다시는 안 할 거야.

그래서 다들 모른척하고, 나를 말렸던 거구나.

너무 힘들다.



몇 개월 뒤,

경민이 아버지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선생님, 경민이 아빠입니다. 경민이와 경민이 엄마 같이 병원 상담받았습니다. 경민이도 엄마도 우울증이랍니다. 선생님, 제가 가족을 잘 돌보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치료 잘 받고 제가 더 노력하겠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감사합니다. 아버님. 제가 더 감사합니다."


그리고 경민이와 어머니는 병원 치료를 꾸준히 받았고

몇 개월 뒤, 경민이는 좀 더 규모가 큰 학교로 전학을 갔다.

그 뒤로 연락은 되지 않았지만

전학 간 학교에 건너 건너 아는 사람을 통해 새 담임선생님께 경민이 소식을 물었다.


잘 지내고 있단다.

친구들과도 잘 지내고.


'고맙다, 경민아...'



아이 부모님께 전문가를 만나보는 게 어떻겠냐는 말을 하기란 정말이지 쉽지 않다.

그러나 그 말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을 땐

아이가 미워서가 아니다.

힘들어서가 아니다.

그 아이 옆에 친구가 없어서이다.

'지금'을 놓치면 앞으로 아이가 더 힘들어질 것에 대한 확신이 들기 때문에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기분 상한 학부모가 어떻게 앙갚음할지 모두 각오하고 말하는 것이다.

어찌 될지 모를 미래의 내 상황보다 그 아이의 '지금'이 더 중요하기에.


그러나 요즘은

'할까 말까' 고민하다 '말까'를 선택하는 교사들이 많아지고 있다.

지금 내가 경민이를 만났다면 나 또한 '말까'를 선택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지금'을 놓치고 있는 아이들이 학교에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종일 무기력하게 있거나

자신을 무시하는 친구들과 싸우며

지금을 보낸다.


이전 01화 사명감을 잃고 싶지 않아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