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을 하기까지.
이상하다.
아무리 봐도 이상하다.
그리고 모르겠다.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이런 때는 없었다.
의사들이 환자 처방을 하듯
어떤 아이를 만나도 그 아이에 맞는 지도 방법이 나온다.
그런데 경민이는 모르겠다.
계속 당한다.
어떤 날은 참지 않고 폭발하면 아이들은 그 모습을 보며 히득히득 웃는다.
쉬는 시간마다 복도를 혼자 걸어 다닌다. 복도 벽을 훑으며 혼잣말을 하며.
경민이랑 마주 앉아 이야기하면 독백하는 연극배우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 같다.
주고받는 소통이 안된다.
"경민이 이상하지 않아요?"
내 말에 모두 고개를 돌린다.
6학급 작은 학교,
열 명 남짓 교사들의 회식 자리에서도 혼자 복도를 걷는 경민이가 생각났다.
"경민이 부모님을 만나봐야겠어요."
다음 날, 교장선생님께서 부른다.
"이 부장, 좀 더 지켜보고 만나보는 게 어때요?"
뭘 더 지켜보지.
지금 이 아이는 충분히 힘들고 외롭고 괴로운데.
이미 다 알고 있지 않은가.
이 아이는 평범하지 않으며 교사의 힘으로 도울 수 없다는 걸.
"어머니, 경민이 담임입니다. 직접 뵙고 상담가능하실까요?"
경민이 어머니와 만나기로 한 날이다.
난 확신에 찼는데 가슴이 너무 뛴다.
쿵쾅거리는 심장소리가 교실을 메운다.
어제까지만 해도 자신 있었는데
오늘 너무 자신이 없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상처받겠지.
나한테 서운해하겠지.
나랑 적이 될 수도 있겠지.
나와 마주 앉은 어머니의 표정은
내 마음을 읽은 듯 한 표정이다.
"어머니.. 경민이.. 병원 도움을 받아보면 어떨까요?
솔직히 경민이를 돕고 싶은데 참 어렵습니다.
전문가를 만나면 학교에서 집에서 어떻게 경민이를 도와줘야 할지 알려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
말해버렸다.
이제 다음 상황은 온전히 내 몫이다.
어떤 반응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
"선생님, 추천해 주실 병원 있으세요?"
"아 네, 이 두 군데가 유명하더라고요.."
"네, 감사합니다. 가보겠습니다."
퇴근하는 차 안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건지.
경민이 엄마는 얼마나 속상할까.
내 생각은, 내가 한 말은 어쩌면 무책임이 아닐까.
아니야, 백번 넘게 고민하고 말한 거야.
그런데, 다시는 안 할 거야.
그래서 다들 모른척하고, 나를 말렸던 거구나.
너무 힘들다.
몇 개월 뒤,
경민이 아버지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선생님, 경민이 아빠입니다. 경민이와 경민이 엄마 같이 병원 상담받았습니다. 경민이도 엄마도 우울증이랍니다. 선생님, 제가 가족을 잘 돌보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치료 잘 받고 제가 더 노력하겠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감사합니다. 아버님. 제가 더 감사합니다."
그리고 경민이와 어머니는 병원 치료를 꾸준히 받았고
몇 개월 뒤, 경민이는 좀 더 규모가 큰 학교로 전학을 갔다.
그 뒤로 연락은 되지 않았지만
전학 간 학교에 건너 건너 아는 사람을 통해 새 담임선생님께 경민이 소식을 물었다.
잘 지내고 있단다.
친구들과도 잘 지내고.
'고맙다, 경민아...'
아이 부모님께 전문가를 만나보는 게 어떻겠냐는 말을 하기란 정말이지 쉽지 않다.
그러나 그 말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을 땐
아이가 미워서가 아니다.
힘들어서가 아니다.
그 아이 옆에 친구가 없어서이다.
'지금'을 놓치면 앞으로 아이가 더 힘들어질 것에 대한 확신이 들기 때문에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기분 상한 학부모가 어떻게 앙갚음할지 모두 각오하고 말하는 것이다.
어찌 될지 모를 미래의 내 상황보다 그 아이의 '지금'이 더 중요하기에.
그러나 요즘은
'할까 말까' 고민하다 '말까'를 선택하는 교사들이 많아지고 있다.
지금 내가 경민이를 만났다면 나 또한 '말까'를 선택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지금'을 놓치고 있는 아이들이 학교에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종일 무기력하게 있거나
자신을 무시하는 친구들과 싸우며
지금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