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가장 힘들었던 순간 한 가지: 그리운 나의 엄마

by 압구정 감성코치

올해 4월 엄마는 1년 2개월의 난소암 투병 끝에 하늘나라로 이사를 가셨다.

맛과 멋을 아는, 진정 인생을 즐길 줄 알던 엄마가 어느 날 몸에 이상 증상을 호소하셨다.

그 길로 병원에 가보니 난소암 4기...........

평소에 용가리 통뼈라고 엄마를 놀리던 우리 삼남매는 망연자실.

수술과 항암으로 엄마는 그 좋아하던 빵과 스파게티, 피자와 커피를 더 이상 드시지 못했고,

친구들을 만나러 나가지도, 여행을 하지도 못하시고 일상이 멈추어 버렸다.

엄마를 간병인에게 맡길 수 없다는 큰오빠의 뜻에 따라 우리 삼남매는 순서를 정해 밤마다 엄마 곁을 지켰다.

어릴적 엄마는 우리의 생일 케이크를 손수 만드셨고, 카스테라, 초코렛이 알알이 박힌 쿠기, 양갱 등을

만들어 우리의 눈과 입을 즐겁게 해주셨고, 요리 솜씨가 정말 대단했다.

엄마의 도시락 반찬은 항상 친구들에게 인기 만점

집 수리를 하러 온 인부들에게 손수 따끈한 밥을 지어 주시고,

일하는 언니도 딸처럼 대했던 정이 많은 엄마

김장은 물론이고 된장, 고추장, 딸기잼, 포도잼 등 손수 만들어 이웃에게 퍼주시던 손 큰 엄마

새로운 냄비나 가전제품이 나오면 가장 먼저 사용해야 직성이 풀리는 얼리 어답터(early adopter) 엄마

화장을 하실 때면 메이크업 아티스트처럼 팔레트를 펼쳐 놓고 능수능란하게 그리던 엄마

대구 사람인 엄마는 결혼하기 전에 외할아버지가 너무 엄하셔서 하다못해 동네 목욕탕도

못갔다고 한다.

엄마는 하나뿐인 딸에게 "너는 자유롭게 살아라, 훨훨 날아다녀라" 하시며 그 어떤 간섭도 하지

않으셨다. 심지어 공부하라는 말도 하신 적이 없다.

하지만 아빠가 결혼 전에는 외박이며 친구들과의 여행은 꿈도 못꾸게 하셨고,

아니러니하게도 나는 스스로 정한 규범과 자체 검열을 하며 사느라 그리 자유롭게 살지는 못했다.

오빠들과 터울이 1~2살 밖에 안나서 가장 먼저 결혼한 나!

나의 큰아들은 엄마에게 4번째 자식과 같았다.

아빠에게 꾸중을 들은 날이면, 할머니를 찾을 정도인 보물(큰아들의 애칭)

그 보물이 내년 5월에 결혼을 한다.

보물은 할머니가 이렇게 빨리 떠나실 줄 몰랐다며, 할머니가 없는 결혼식이 못내 안타깝기만 하다.




7년 전 아빠가 갑자기 쓰러지는 바람에 1년여 말도 못하고 누워만 계실 때 손수 간병을 하시다가

장례 후 조용히 병원에 가서 연명치료중단동의서를 작성하고 오신 엄마

항암으로 머리가 빠지면서도 남들 다 쓰는 모자는 싫다고 특별한 두건을 쓰셨던 엄마

병실 복도에서 링거줄을 매단채로 에어로빅을 하시던 엄마

아! 엄마!

부슬부슬 비가 내리며 찬바람이 불던 오늘,

엄마의 초록색 파카를 입고 외출을 했다.

엄마의 품처럼 따스하고 포근한 온기에 되려 마음 한 켠이 서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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