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마지막 점심이 될 줄 몰랐다.
아빠는 어렸을 때 아주 많이 가난하셨다고 들었다.
서울에 올라와서 어느 집에서 자취를 하셨는데, 그 사장님의 부인되시는 분은
얄밉게도 '사골 곰탕'을 꼭 아빠를 시켜서 사장님에게 갖다주라고 시켰단다.
아빠는 그게 미치도록 먹고 싶었다고 했다.
국물이 출렁거리는 그릇을 들고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꼴깍꼴깍 침을 삼키면서 많이 힘드셨다고 들었다.
그래서 우리 집은 내가 시집가기 전까지,
아니다.
시집을 갔어도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엄마는 '사골 곰탕'을 계속 끓이셔야만 했다.
아빠의 시리도록 아픈 얘기를 듣기 전까지는 그저 아빠의 최애 음식인 줄로만 알았다.
난 지금도 '사골 곰탕'을 먹지 않는다.
아빠는 사업을 크게 성공하시고, 또 말년에 크게 실패를 하셨다.
자식들 다 시집, 장가보내셨고, 연세가 있으니 그만 정리하시라고
엄마도, 오빠들도 말렸지만, 욕심은 화를 불렀다.
아빠는 사업을 실패했지만, 꿈을 버리지 못했다.
오빠들에게 사업 자금을 대라고 자주 전화를 하셨다.
나한테까지 돈 얘기는 안 하셨지만,
아빠의 사업에 대해 (말도 안 되는 얘기를) 끊임없이 얘기하셨다.
나의 안부를 묻기도 전에...........
연세가 80이 넘으셨음에도 사업 계획이 들어있는 두툼한 서류 가방을 들고,
자신의 사업체가 있던 그곳으로 매일 출근을 하셨다.
사무실도 없는데...........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이빨 빠진 하이에나 같았다.
그래서 어느 순간 아빠를 만나지 못했다.
아니 피했다.
학부모 중 한 명이 상담 중에
"아유, 사람들이 그렇게 나하고 밥을 먹자고 해요.
우리 OO 이가 공부를 잘해서 그런가?
내가 미쳤어요? 그 엄마들하고 밥 먹을 시간 있으면
차라리 우리 아빠랑 한 번 더 점심을 먹지.
내가 아빠랑 점심 먹을 날이 뭐 그리 많겠어요?"
그 어머니의 마지막 말은 마치 북소리같이 잠든 나의 감각을 깨웠다.
사실 아빠를 그리 만나고 싶지는 않았지만,
영혼의 울림처럼 계속 그 소리가 귀에 윙윙거렸다.
"아빠, 오늘 같이 점심 먹을래요?"
아빠의 사업체가 여럿 있었던 그 동네,
매일 출근하시는 그곳에서 우리는 만났다.
아빠가 좋아하시는 '간장게장' 전문점에서.
그날 우리는 많은 말을 하지 않았지만, 아빠는 밥을 두 공기나 드셨다.
옛 어른들이 '마른논에 물들어 가는 것하고, 내 새끼 입에 밥 들어가는 것이 제일 좋다.'
라고 하셨다는데.
아이들 어릴 때 오물오물 밥 먹는 걸 보면, 입은 귀에 걸렸고 내 배는 저절로 불렀었다.
연로하신 아빠의 식사하시는 모습을 보며, 나는 속으로 눈물을 흘렸다.
'이렇게 잘 드시는데..... 난 뭐지?'
마음속에 새겼다. 자주 만나서 또 간장게장이랑 설렁탕 사드려야지.
며칠 후 전화가 왔다.
구두 한 켤레 사달라고. 아빠는 '금강제화 구두'가 제일 좋다고 하셨다.
아빠가 항상 신으시던 구두 스타일이 있다.
어려운 일 아니니 엄마와 함께 만나서 아빠가 손수 고르셨다.
신고 가시라고 하니, 나중에 신겠다고 하셨다.
엄마랑 같이 점심 먹자고 했더니, 아빠는 약속 있다며 '그곳'으로 가셨다.
그로부터 며칠 후, 뇌경색으로 쓰러진 아빠를 병원에서 만날 수 있었다.
그날 이후 아빠는 입으로 음식을 삼킬 수 없었다.
쓰러지고 1년간 듣는 것만 가능하셨고,
돌아가시기 전까지 말 한마디 나눌 수 없었다.
더 이상 간장게장도, 빨간 박스에 고이 담겨 있던 구두도
아빠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엄마는 아빠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어 고맙다고 했지만............
미치도록 소중한 그 시간의 의미를 조금 더 빨리 깨달아야 했다.
외국에 있는 아들들과 통화를 할 때면
언제나 마지막 말을 "사랑해!"로 끝낸다.
언제 마지막 통화가 될 줄 모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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