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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소위

by 한요한
육군 소위

선선한 가을 바람이 불던 4학년 11월, 공무원증 제작을 위한 증명사진을 찍었다. 그토록 꿈에 그렸던 학군 단복을 너머, 육군 정복을 걸치고 사진을 찍었다. 땀과 진흙 묻은 전투복을 입어본 자만 입을 수 있는 세련된 정복은 역설적이기에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육군 정복을 입고 있는 나의 얼굴은 그 어떤 증명사진보다도 마음에 들었다. 앙상하게 말라 각진 얼굴에는 후보생 생활을 하며 다져진 나의 열정, 기백이 느껴지는 듯 했고 옅은 미소에는 섬세하고 여린 원래 내 모습이 그대로 담겨있는 듯 했다.

사진을 찍고나니 하늘을 날아갈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내가 육군 장교가 되는 것이 머지 않았다는 사실에 가슴이 뛰었고, 학교 뒷산을 뛰어 올라가 감격의 눈물 대신 땀을 한 바가지 쏟아냈다.


2019년 3월. 육군학생군사학교에서 거행하는 임관식에서 나는 수많은 신임소위 대열에 들어가 있었다. 내 젊음과 열정을 불사를 각오로 임관 선서를 목청껏 외치며, 그렇게 육군 소위가 되었다.


자대 전입

나는 강원도 원주에 있는 모 사단 기동대대로 전입을 갔다. 처음 부대로 갔을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일은, 검은색 SUV차량에서 내리는 머리가 살짝 벗겨진 어떤 군인과 마주쳤을 때의 일이다. 후보생 생활 때부터 보병학교에 이르기까지 나보다 연령이 높아 보이는 군인과 마주치면 항상 긴장을 했고, 경례를 올렸었다. 그런데 그 군인은 내가 경례를 올리기도 전에 내쪽을 보며 경례를 하시는 것이었다. 내 뒤를 돌아보았으나 아무도 없었고, 나밖에 없었다.

그 군인은 부사관이셨다. 새파랗게 젊고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 경례를 해주신 것이었다. 그제서야 내가 장교라는 것이 몸소 실감이 났고, 부대 복도에 들어서자 마주치는 병사들마다 족족 나에게 경례를 해주었다.


엥? 분명 내가 입대 전에 들었던 소위의 위상은 그리 높지 않았고 말년의 병사들에게 조차 무시받는 존재로 알고 있었는데.. 어쨌든 장교는 대우가 다르구나 라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대우는 잠깐, 나의 무능력함과 사회생활에 대한 무지함으로 인해 철저히 깨지고 부수어질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시련의 시간 속에서 한 단계 성장하고 더 단단해질 수 있었다. 그 일련의 과정들을 하나 하나 다 나열할 수는 없지만, 느꼈던 점들을 최대한 많이 담아내어 정리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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