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으로 배운 교훈들
군생활 2년 동안 경험했던 일들을 모두 글로 정리하기에는 힘들 것 같다. 글로 적어내는 과정에서 과거에 느꼈던 상처들을 다시 되짚고 싶지 않으며 나의 부족했던 과거들이 부끄럽기 때문이다.
나는 전역할 때쯤에야 '장교'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다. 2년 동안 참 많이 부족했지만, 그 부족했다는 것을 이제라도 알고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경험으로 배운 교훈들을 중심으로 글을 써내려보고, 난 이제 그 교훈들을 발판 삼아 앞으로의 생을 살아갈 것이다.
사회생활
군인은 전투력을 기반으로 국가 안보를 지키는 사람이지만, 혼자가 아닌 공동체에 속한 사람으로서 공동체 생활을 기본적으로 잘 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에 대한 깊은 통찰이 있어야 하며 배려심을 기반으로 한 눈치와 센스가 있어야 한다. 눈치란 상대가 뭘 좋고 싫어하는지 빠르게 파악하는 것이고 센스는 상대방의 분위기를 살피어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언행을 하는 것이다. 이는 상급자 뿐 아니라 하급자를 대할 때도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결론은 착하기만 해서는 무시 받을 수 있으며, 시기 적절하게 '눈치'와 '센스'를 발휘해 주어진 상황들에 지혜롭고 순발력있게 대처 해야한다. 난 상급자에게나 하급자에게나 늘 착하기만 했던 사람이었다.
업무 파악
아무리 사회생활을 잘 하는 사람이라 한들 직장에 속한 이상 본인이 맡은 업무에는 능통해야한다. 나는 2년 동안 소대장 직책을 맡았었는데, 소대장은 엄밀히 따지고 보면 부서(중대)내의 중간 관리자다. 아무런 실무 경험 없이 중간 관리자의 직급을 맡게 되는데 생각 없이 있으면 무능한 사람이 되는 것은 한 순간이다.
실무라 함은 정말 다양하다. 작게는 병사들의 일과진행 및 근무투입 부터 시작해, 알아서 잘 하시는 부사관단의 업무 또한 알고있어야 한다. 크게는 상급부대에서 내려온 지침부터 시작해 내가 속한 부대의 일정 및 우리 부서의 임무를 알고있어야 한다. 이는 평시 부대관리와 훈련에서도 모두 마찬가지다. 일단 기본적으로 가장 밑에서 부터 위에까지 흐름을 알고 있어야 내가 중간에서 무엇을 해야하는지 알 수 있다. 그것을 알려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나에게 업무 지시를 하는 사람은 중대장 한 사람 뿐이다. 그말은 즉, 나에게 업무를 지시하는 사람이 없으면 정말 아무일도 하지 않을 수 있는 직책이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밑에서부터 위에까지 흐름을 파악하는 것, 그리고 나의 위치에서 주어진 업무를 찾고 성실하게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사회경험도 없고 철도 없이 소대장이라는 직책을 맡고 허둥지둥대며 겨우 이 원리를 알게 되었다.
리더십
지금의 군대는 예전 군대 같지 않다. 과거 군대는 상명하복의 문화가 심했고, 지금 군대는 간부들의 지휘권은 떨어졌으며 병사들의 여건 및 편의는 많이 개선되었다. '까라면 까'식의 방식은 이제 잘 통하지 않는다. 용사들의 수준도 많이 올라갔을 뿐더러 어떤 지시를 하면 '이걸 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이렇게 말고 이렇게 하시는 건 어떻습니까?'라는 식의 반응이 다수다.(물론 경력이 부족한 간부에게 해당되는 분위기)
나는 이러한 분위기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장 밑에 있는 구성원이라도 지시를 받는 것에 대한 합당한 목적과 이유는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몇몇 사람은 지금의 분위기를 보며 '이게 군대냐'라고 할 수 있지만, 다른 한 편으로 생각해보면 간부들의 리더십을 키우기에는 오히려 좋은 조건인 것 같다. 어떤 것을 지시할 땐 그 목적과 이유를 설명함과 동시에 납득 시킬 수 있어야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규정을 잘 알고 있어야 하고 조직 내의 시스템은 물론 문화까지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만약 이렇게 유능한 리더라면 '까라면 까'라는 식의 지시를 해도 신뢰하고 따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난 왜 기준도 없이 여기저기 끌려다녔는지...
어필
아무리 일을 잘하고 성실한 사람이라 해도, 뒤에서 묵묵히 하기만 하면 아무도 몰라주는게 사회였다. 나도 처음에는 티내며 일을 하는 사람들을 보고 '뭘 할 때마다 저렇게 생색을 내지?'라며 쪼잔하다고 생각 했었는데, 어떻게 보면 생색이 아니라 업무공유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업무 공유가 지속 되다보면 그 공유되는 업무는 자연스레 그 사람의 책임이 되고, 책임은 곧 그 사람의 능력이 되는 것이다. 물론 정말 시덥잖은 일까지 공유해서는 안 되며, 다른 사람의 성과를 가로채서도 안 되며, 티나지 않고 자연스럽게 자신의 업무와 성과를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성경에는 '네 왼손이 한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해라'라는 말씀이 있는데 음... 참 어렵다
자존감
'나 자신을 존중할 수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도 존중할 줄 안다.' 아마 많은 자기개발서에서도 일맥상통하는 문장일 것이다. 나는 이 사실을 군생활 간 만났던 부사관 분들을 통해 확실히 느꼈다.
장교와 부사관 둘 중 높은 계급을 꼽자면 당연히 장교겠지만, 초급 장교인 나보다 경력도, 능력도, 리더십도 뛰어난 부사관 분들이 계셨다. 나는 계급 말고는 그분들 보다 나은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훌륭한 부사관 분들은 나 같이 어리고 부족한 초급장교들을 무시하지 않고 오히려 존중 해주셨다. 그분들은 초급장교들을 존중 해준다고 해서 자존심 상할 것도, 잃을게 없을 만큼 이미 훌륭한 분들이기 때문이었다.
나도 혹여 부족해보이는 사람이 높은 직급에 있다고 해서 자존심 상하거나 거들먹거리지 않고 존중할 수 있는 멋진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