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둘, 대학 중퇴, 기본급 60만 원

잃을 게 없던 청춘이 '맨땅'에 머리를 박기 시작했다

by CareerMak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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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나는 스물둘이었다

잃을 게 없던 청춘이 '맨땅'에 머리를 박기 시작했다


남들은 캠퍼스에서 낭만을 즐길 나이에, 나는 군복을 벗자마자 학교에 자퇴서를 던졌다 낭만이 아니었다. 생존이었다 전단지 배포부터 고깃집 불판 닦기까지, 몸으로 하는 일은 닥치는 대로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사업이 망한 아버지와 함께 나갔던 한겨울 공사판이었다.


살을 에는 칼바람을 맞으며 차가운 철제 빔과 볼트를 조립하던 날들. 그러던 어느 날, 하필 내가 나가지 않았던 그 하루 아버지가 구조물 위에서 떨어져 허리를 크게 다치셨다 꼼짝없이 누워계신 아버지를 보며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아니, 애초에 내가 돈을 많이 벌어서 아버지를 저곳에 보내지 않았더라면...'


그때의 속상함과 죄책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 후 들어간 박스 공장도 마찬가지였다. 온종일 박스 먼지를 뒤집어쓰고 퇴근하는 버스 안 버스가 화려한 대학가를 지나갈 때면, 나는 슬그머니 창가에서 몸을 돌렸다 캠퍼스를 거니는 깨끗한 옷차림의 또래들. 그리고 유리창에 비친 먼지투성이의 내 모습 그 대비가 사무치게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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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넥타이 매고 싶다. 나도 번듯한 곳에서 일하고 싶다.'


그때 나에게 손을 내밀어 준 건, 평소 알고 지내던 한 형님이었다 그 형님은 내가 들어가게 될 회사의 '과장님'이기도 했다 입사를 앞두고 정장을 사야 했다. 형님은 갓 사회에 발을 들이는 나를 데리고 정장 가게로 가주었다 내 얇은 주머니를 털어 셔츠와 바지는 겨우 맞췄지만, 당장 입동이 지난 날씨에 걸칠 코트와 넥타이까지 살 여력은 없었다 입사 전날 밤, 형님이 나를 불렀다 자신이 입던 코트와 넥타이 하나를 내어주었다


"내일 이거 입고 와라"


받아 든 넥타이는 한겨울에 매기엔 조금 얇은 재질이었다 하지만 그 어떤 넥타이보다 멋졌다 반드시 여기서 뭔가를 보여줘야지 그렇게 나는 '교육 마케팅'이라는 세계에 발을 들였다 근로계약서를 쓰던 날,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기본급 60만 원." 어느정도 예상했지만 계약서를 막상 보니까 두려웠다 하지만 그 옆에 적힌 조항이, 벼랑 끝에 선 나를 붙잡았다 "성과급 별도. 노력한 만큼 가져간다."


단순히 영업만 하는 게 아니었다. 내 성과가 좋으면 '팀'을 꾸릴 수 있었고, 팀 매출이 오르면 내가 직접 영업을 뛰지 않아도 '관리 수당'이 들어오는 구조였다.


"너 하기에 달렸어. 여기서 억대 연봉자도 나왔다."


그 말은, 잃을 게 없는 스물두 살 청춘의 가슴에 불을 지르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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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 검색의 시대, 나의 전쟁터는 '네이버 카페'였다


내가 속한 조직은 매출 1억 원 달성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나를 이끌어준 그 형님, 아니 과장님은 이번에 1억을 넘기면 '부장'으로 특진한다고 했다 팀 전체에 묘한 긴장감과 열기가 흘렀다. 그 뜨거운 배에, 형님의 코트를 입은 내가 탑승한 것이다.


첫 입사 교육. 내가 받은 무기는 딱 두 개였다


PC 한 대, 그리고 교육자료 2014년은 지금처럼 모바일이 및 AI가 모든 걸 지배하던 시절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정보를 찾기 위해 PC 앞에 앉았고, 그 정보의 바다는 '네이버 카페'였다 나의 임무는 단순하지만 치열했다 활동 지수가 좋은 네이버 아이디를 확보하고, 사람들이 검색할 법한 '키워드'를 찾아내어, 카페 게시판 상위에 내 글을 노출시키는 것


이미지와 글을 조합해 그럴듯한 홍보글을 만들었다. '조회수' 싸움이 시작됐다 좋은 계정, 좋은 카페, 그리고 검색 로직을 뚫는 글쓰기. 이 삼박자가 맞아야만 내 글이 '상위 노출'이라는 왕좌에 앉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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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간의 침묵, 그리고 첫 전화


패기롭게 시작했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매일같이 글을 수십 개씩 올렸지만, 기대했던 문의는 오지 않았고 전화벨도 울리지 않았다 반면 옆자리의 선배는 달랐다 하루에도 몇 통씩 전화를 받더니, 능숙하게 1건, 2건씩 등록을 성사시키기 시작했다 그 옆에서 내 전화기만 고장 난 것처럼 묵묵부답이었다 초조함이 목을 타고 넘어왔다. 렇게 10일이 지났다.


'나는 안 되는 놈인가.' 불안감이 엄습하던 그때였다


습관적으로 메일함을 새로고침했다 가장 위에 굵은 글씨로 새 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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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문의] 새로운 신청이 접수되었습니다


폼 문의를 통해 들어온 나의 첫 고객이었다 순간, 심장이 쿵쾅거려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고객의 번호를 누르고 수화기를 드는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사회생활이라곤 아르바이트가 전부였던 내가, 누군가의 인생을 상담하고 돈을 받아야 한다 무서웠다. 두려웠다 교육받은 매뉴얼이 머릿속에서 하얗게 지워졌다


결과는? 당연히 '실패'였다.


어설픈 신입의 목소리에 고객은 지갑을 열지 않았다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고 나서야 참았던 숨이 터져 나왔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흥건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좌절감보다는 오기가 생겼다


"문의는 온다. 방법은 틀리지 않았다."


상담은 망쳤지만, 내가 만든 글이 사람을 움직였다는 사실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그 아득한 목표를 향해, 나는 다시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렸다 내 사회생활의 첫 페이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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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0시, 버스 정류장에서 울린 전화 벨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