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0시, 버스 정류장에서 울린 전화 벨소리

"너도 이 1억의 주인이다"

by CareerMak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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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간의 침묵을 깨고, 드디어 메일함에 두 번째 문의가 도착했다 이번엔 놓칠 수 없었다 교육받은 스크립트를 달달 외우다시피 했고,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수화기를 들었다


상담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내 기준에선 꽤 훌륭했다 고객의 반응도 긍정적이었다 나는 확신했다 '됐다 이번엔 진짜다' 하지만 통화의 마지막,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말은 내 기대를 산산조각 냈다 네,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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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더 생각해 보고 연락드릴게요"


'생각해 보겠다'는 말 영업판에서 그건 거절의 우회적인 표현임을 나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전화를 끊고 나니 맥이 탁 풀렸다 사무실 시계는 어느덧 밤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터덜터덜 짐을 챙겨 사무실을 나왔다 겨울바람이 유난히 차갑게 느껴지던 밤이었다 버스 정류장에 앉아 멍하니 도로를 바라봤다 '역시 나는 안 되는 건가, 내일은 또 어떻게 버티지'


그때였다 주머니 속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발신자 번호를 확인한 순간, 나는 숨을 멈췄다 방금 전 통화했던, '생각해 보겠다'던 그 고객이었다


"여보세요" "아, 네 선생님. 아까 상담했던 사람인데요. 그냥 지금 바로 시작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나요"

그 순간, 내 머릿속에서 종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네! 감사합니다! 제가 지금 바로 사무실 들어가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잠시만요!"


전화를 끊자마자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이미 불 꺼진 건물 로비를 지나,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새도 없이 비상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사무실 문을 벌컥 열었다

다행히 아직 퇴근하지 않은 선배들이 남아 있었다 "선배님! 저 다시 전화 왔습니다! 하신대요! 근데 저 이거 어떻게 등록하는지..."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선배들이 우르르 내 자리로 몰려왔다 손은 떨리고 머릿속은 하얘져서 회원가입 페이지가 어디 있는지도 보이지 않았다


"진정하고, 여기 회원가입부터 안내해 드려" "과목은 아까 상담한 대로 이걸로 선택하고" "결제창 띄웠어? 오케이, 이제 고객님한테 결제 진행해 달라고 해"선배들은 내 모니터를 둘러싸고 하나하나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프로세스를 챙겨주었다 마침내 화면에 뜬 [결제 완료] 팝업창!


"와아아아아!" 사무실이 떠나가라 환호성이 터졌다 선배들은 내 등을 두드리며 자기 일처럼 기뻐해 주었다 그날 밤, 나는 선배들의 축하 속에 처음으로 '해냈다'는 짜릿함을 맛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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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200만 원이 모여서 1억이 된 거야"


그 첫 결제의 기세는 무서웠다 '나도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기자, 나는 더 이상 사무실 구석에 웅크린 신입이 아니었다 때마침 달력은 12월의 끝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영업 조직에서 '12월 마감'이란 전쟁과도 같았다 특히 이번 마감은 우리 팀에게, 그리고 나를 이끌어준 과장님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조직 매출 1억 원" 그것은 과장님이 '부장'으로 특진할 수 있는 절대 조건이었다


사무실 공기는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 같았다 선배들은 마지막 한 건이라도 더 끌어오기 위해 쉴 새 없이 전화를 돌렸고, 나 역시 그 열기에 휩쓸려 미친 듯이 달렸다 그렇게 받아 든 나의 12월 최종 성적표 첫 결제를 포함해 총 3건, '총매출 약 200만 원' 뿌듯했다 0원이었던 내가, 내 힘으로 회사의 통장에 돈을 입금시켰다 하지만 고개를 들어 사무실 칠판에 적힌 '목표액 1억'이라는 숫자를 보는 순간, 내 200만 원은 너무나 초라해 보였다


'1억에 비하면 200만 원은 티도 안 나는 거 아닌가' '과장님 승진하시는데 내가 도움이 되긴 한 건가' 자정이 지나고 마감이 종료되었다 드라마 같은 환호성은 없었다 다들 진이 빠진 채로 전산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최종 집계된 팀 매출은 1억 원을 조금 넘긴 수치였다 목표 달성이었다


안도감이 사무실을 채웠지만, 나는 쭈뼛거리며 앉아 있었다 수천만 원씩 해낸 에이스 선배들 틈에서, 고작 200만 원을 한 내가 같이 기뻐해도 되는 건지 눈치가 보였기 때문이다 그때, 과장님이 내게 다가왔다 이제는 '부장님'이 될 그 형님이, 내 어깨를 꽉 쥐며 말했다


"OO아, 진짜 고생했다 나는 얼굴이 화끈거려 기어들어가듯 대답했다 "아닙니다... 저는 고작 200만 원밖에 못 했는데요. 도움이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과장님은 고개를 저으며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말했다 "무슨 소리야 이 1억 원이라는 숫자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잖아. 팀원들 하나하나의 매출이 모여서 만들어진 거야 네가 해낸 그 200만 원도 분명히 이 1억 안에 들어있어. 네가 팀에 힘을 보탠 거야"


멍해졌다 단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나는 그저 1/N의 몫도 못 하는 짐이라고 생각했는데, 내 작은 결과가 모여 거대한 '팀의 승리'를 완성했다는 것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이곳은 혼자 달리는 곳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며 함께 결승선을 넘는 곳이라는 것을 작지만 내 몫을 해냈다는 안도감 나를 '팀의 일원'으로 인정해 주는 선배들의 따뜻한 눈빛 먼지 묻은 옷을 입고 버스 창가에 숨던 나는 이제 없었다


'다음 달엔 무조건 더 잘할 거야. 그래서 우리 팀, 더 높이 올려놓을 거야'


그날 밤, 나는 다짐했다 이 뜨거운 사람들과 함께라면, 맨땅에 헤딩이 아니라 그 땅을 파서 우물을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2014년의 겨울, 나의 진짜 '사회생활'이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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