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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장.
사회의 얼굴 – 거울로 다듬는 사회적 자아
마리는 스스로 괜찮다고,
이만하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렇게 믿고 싶었다. 스물일곱의 그녀는 대학원에서 심리학 박사 과정을 마친 뒤, 한 상담센터의 정식 상담사로 채용되었다.
정장을 입고 출근하는 첫날,
거울 앞의 마리는 너무도 완벽해 보였다. 어깨선을 타고 흐르는 세련된 다크 그린 블라우스, 자연스럽게 말린 웨이브 헤어, 피부 위에 얇게 얹힌 은은한 메이크업, 그리고 적당한 자신감이 깃든 눈빛까지. 누가 봐도 성숙한 성인의 얼굴이었다.
오랜 시간 그녀가 바랐던,
‘완전한 자기’의 이미지가 드디어 현실이 된 것 같았다.
그날 아침, 마리는 거울 앞에서 자신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이제는 진짜 어른이야!”
중지와 검지 손끝으로 턱선을 따라 천천히 내려오며, 자신을 다독이듯 쓸었다.
유년 시절의 울퉁불퉁한 여드름도, 사춘기 때 싫어하던 둥그스름한 눈매도 이제는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도드라진 광대와 단정한 콧날, 깊고 또렷해진 눈빛이 ‘마리’라는 사람을 보란 듯이 증명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 얼굴과 그 육체에, 그 감정과 정서에 마침내 안착한 듯 보였다.
처음 몇 주간은 정말이지 아무 문제도 없어 보였다.
동료들은 그녀를 “센스 있는 신입”이라 불렀고, 직장 상사는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라며 마리를 칭찬했다. 클라이언트들도 그녀의 목소리에 안도했고, 그녀의 경청하는 태도에 감동했다.
매일 아침 정갈하게 차려입고 출근길에 나서던 마리는, 카페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작게 미소 짓기도 했다.
‘이게 바로 내가 꿈꾸던 삶이야.’
하지만…
이상하게도, 알 수 없는 허기가 마음 한구석에서 자꾸만 고개를 들이밀었다.
점심시간,
동료들과 함께 웃으며 대화할 때면 그 웃음이 입술 끝에서만 맴도는 느낌이었다. 회의 시간, 상사가 던진 농담에 모두가 웃을 때, 그녀의 얼굴도 웃고 있었지만 눈동자는 금세 멍해졌다.
퇴근 후 거울 앞에 서서 하루를 지낸 얼굴을 지울 때면, 베이스 메이크업보다 더 진하게 쌓인 ‘웃는 표정’이 가장 지워지지 않는 듯했다.
어느 날은 특히 그랬다.
그날도 회의실에서는 상사의 날카로운 지적이 이어졌고, 마리는 어김없이
“죄송합니다.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라는 대답으로 자신을 방어했다. 옆자리 선배는 미묘하게 고개를 저으며 마리를 흘겨봤고, 그 시선에 마리는 괜찮은 척, 더 강해 보이는 척, 더 씩씩하게 메모를 이어갔다.
하지만 속은 천천히 무너지고 있었다.
화장실에서 혼자 남은 마리는 오른손 등으로 오른편 입술에서 왼편 입술까지 쓸어내렸다. 아침에 정성 들여 바른 립스틱이 손등에 긴 자국으로 묻어 나오고 있었다.
“아… 이것도 다 번졌네.”
거울 속 그녀는 번진 립스틱 자국과 함께 여전히 웃고 있었지만, 그 웃음의 끝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퇴근길,
지하철 창문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던 마리는 갑자기 숨이 막혔다.
이건 내가 아냐.
이건… 내가 아니야.
어느 순간부터인지,
그녀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얼굴을 바꿔가며 다른 가면을 쓰고 있었다. 동료들 앞에선 ‘센스 있는 신입’, 클라이언트 앞에선 ‘따뜻한 경청자’, 상사 앞에선 ‘성실한 부하직원’. 하지만 그 어떤 순간에도, 그녀는 ‘진짜 자신’으로 존재한 적이 없었다.
집에 도착해 거울 앞에 섰을 때,
마리는 자신의 웃고 있는 얼굴을 다시 한번 바라보고 있었다. 입꼬리는 올라가 고정되어 있었고, 눈에는 진정성 없는 얇은 주름이 습관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그 미소가… 너무 가짜처럼 보였다. 너무 낯설고, 너무 멀게 느껴졌다.
무언가 갑자기 왈칵 솟구쳐 올라왔고, 마리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주저앉았다.
“나는… 도대체 누구야…”
눈물이 흘렀다.
처음엔 조용히, 그러다 점점 거세게. 얼굴에 남아 있던 파운데이션이 무너지듯, 그녀의 감정도 바닥까지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그날 밤,
마리는 일기장을 펴지 못했다. 그저 거울을 바라보며 몇 번이나 묻고 또 묻었다.
그다음 날 아침,
거울 속에서 그녀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눈가에 선명한 붉은 자국이 남아 있었다.
가면은 여전히 그녀의 얼굴에 남아 있었지만,
이제 마리는 그 가면을 구분하고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것은 시작이었다.
자신의 가면을 인식하고, 그 너머의 자아를 찾기 위한 조용하지만 단단한 첫걸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