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전장
바뀐 잔
저녁 식탁 위에
세 개의
빈 유리잔이
놓여 있다
반쯤 남은
주스병
아빠는
말없이
잔을 하나씩
채워 나간다
두 잔은 가득 차고
한 잔은
조금 비어 있다
그 잔은
엄마 앞에
놓여 있다
아빠는
그 잔에 물을 붓고
고민 없이
자기 잔과
자리를 바꾼다
아무 말도
오가지 않았다
문 뒤에서
엄마는
그 장면을
바라본다
그리고
아빠 모르게
두 잔은
서로의
위치를 바꾼다
어린 딸아이는
이유를
모른다
다만
엄마의 잔이
조금
연하다는 걸
느낀다
그래서
아이는
자기 잔을
엄마 쪽으로
밀어 두고
엄마의 잔을
가져간다
사랑은
설명되지 않고
그저
이렇게
옮겨진다
우리는
그렇게
말보다 먼저
닮아간다
오늘 저녁 식사는
아무도 모르게
그렇게
사랑이
넘쳐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