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말, 하나의 진실

언어의 전장

by 영업의신조이

『거울』



달라고 말했다

내어 달라고만 말했다


내 것을 가져가지 말라고

목이 잠길 때까지 말했다


내 앞에 선 얼굴이

같은 입술로

나를 따라 움직였다


달라고

버리지 말라고

제발 혼자 두지 말아 달라고


손자국처럼 지워지지 않는 마음이

유리 위에 오래 머물렀다

닦아도 닦아내도

그 자리는 얼룩만 더 깊어졌다


나는 오래

꼭 쥐고 있던

두 주먹을 조심스레 펴 보았다


가지라고 말했다

먼저 내어 주겠다고 말했다

덜 두려운 쪽으로

한 걸음 기울어 보겠다고 말했다


내 말이

손끝에서 막 떠나자

너도 천천히 말했다


가지라고

괜찮다고

곁에 있어 주겠다고


그때 알았다

거울은

먼저 웃지 않는다

먼저 울지도 않는다


다만

내가 들고 간 얼굴을

조용히

돌려줄 뿐이라는 것을


내가 세상 앞에서

주먹을 쥐면

유리는 더 차가워졌고


내가 세상 앞에서

빈손으로 서면

늦게나마

닫혀 있던 손바닥 하나가

천천히 펴졌다


오늘은

달라고 말하지 않는다

조금 먼저

내어 준다


빼앗기지 않으려

두 손을 다시 거두기 전에

조금 먼저

사랑한다고 말해 본다


거울 앞에 서면

끝내 나를 밝히는 것은

차가운 표면이 아니라

먼저 건넨

한 점의 온기였다


아무 말 없이

유리는 그 온도를 품고


조금 늦게

내 쪽으로

맑아져만 갔다



거울 by 영업의신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