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소설 연재 03
*육지에서 따로 떨어져 나간 섬, (만수동 주민의 방언)
어릴 적 옥수수 농사를 지어 새벽이면 이고 지고 포항 해수욕장에 팔러가는 어머니를 따라가 본 것 외에는 처음이다. 이른 아침 우리 일행은 서울 서부역에서 광천까지는 기차를 타고,
광천에서는 다시 배를 타기 위해 폴폴 날리는 먼지 꼬리를 달고 덜커덩거리는 만원 버스 안에서 엉덩방아를 찧을 때마다 함성을 지르며 해방감을 만끽하였다.
선착장이 있는 오천까지 포플러 가로수를 누비며 달렸다. 선착장에 도착할 무렵, 이미 날은 저물고 바람이 거세지더니 태풍으로 전환되어 부득이 민박을 해야 했다.
다음날 그다음 날도 뱃길은 열리지 않았다. 태풍은 점점 거세지지만 우리는 이런 낯선 기분에 마냥 들떠있었다. 다음날 오후 늦게서야 뱃길이 열렸다.
노을을 가득 안고 물살을 가르는 뱃전에서 그저 신기하기만 한 이 현실이 믿기지 않았다. 안면도의 최 남단 영목부두에 발을 내디뎠을 때의 풍경은 너무도 이국적이었다.
부두라고 해야 무성한 풀들만 우거진 언덕배기였다. 무릎에 감기는 풀잎을 가르며 마중나온 정감 어린 섬사람들과 폭풍우가 몰아치던 어제와는 너무도 다른 잔잔한 노을 빛 바다와 밤안개 너머로 한 잎의 수초와도 같은 원산도의 불 빛이 반딧불처럼 반짝이었다.
넝쿨이 무성한 콩밭을 지나 발길에 차이는 돌맹이들의 바스락거림이 정겹게 느껴지는 언덕 길을 따라 한 오리 쯤 걸었을까? 해태마을 이라는 이정표가 있는 만수동에 당도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이곳 섬 주민들은 해태사업인 김 양식으로 마을 전체가 풍족하게 사는 모습이었으나 교통 오지로 인해 묻의 사람들과는 달리 학문에 대한 열의가 부족하여 또래의 청년들이 문맹자가 많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당장 야학을 열어야겠다는 결심과 이곳에 꼭, 남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아침에는 꼬마들의 체조와 율동 그리고 마을길 쓸기, 꽃길 가꾸기를 하고 밤에는 늦게까지 남녀 청년들의 야학을 열렀다.
마치 상록수의 주인공 채영신이 된 느낌으로 나의 꿈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해 8월은 마침 당진에서 안면도로 잇는 육로가 개통되는 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루 한차례씩 버스가 출발하는 시간이면
체조를 하다 말고 아이들은 갑자기 언덕배기로 줄행랑을 치곤 했다. 자동차 구경을 하기 위해서이다. 처음엔 그 아이들이 참 신기해 보였다. 요즘처럼 자동차가 넘쳐나리라고 상상조차 할 수 없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