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 셈이

시소설 연재 05

by 정숙


딴 셈이

*육지에서 따로 떨어져 나간 섬, (만수동 주민의 방언)



여름 방학도 어느새 덤불 속의 호박들처럼 무르 익어가던 날 밤, 일과를 마친 우리들은 고단하고 끈적이는 몸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고작해야 우물가에서 두레박으로 등목을 하는 것이었는데 그나마도 남학생에게만 가능한 것이어서 나는 곧잘 바다로 가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내가 혼자 나가는 것이 좀 짠 했는지 오늘은 J가 따라 나서자,Y와 H도 피곤한 몸을 이끌고 동행해 주었다. 우리는 갯벌에 정박해 있는 두 척의 나룻배에 몸을 뉘이고 청회색 밤하늘에서 쏟아지는 별빛을 받으며 서로


자기의 별 자리라고 우기다가 잠이 들기도 하고 기분이 좋은 날은 노래를 부르며 한 낮의 고단한 일들을 다 날려 보낼 수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곯아 뗠어진 Y와 H를 기다리던 J가 내가 탄 배로 건너왔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밀물이 몰려와 배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한 달에 두어 차례씩 크게 만조가 되는 날에는 갯펄이 꽉 차도록 바닷물이 밀려오며 조류도 거세진다고 들었다.


짚어보니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영락없이 우리들은 잘못하면 밤 바다에 갇혀 갑자기 폭풍우라도 닥치면 고기 밥이 되는 건 시간 문제라고 생각하니 오금이 저려왔다.


아무것도 모르고 잠이든 Y이와 H가 부러웠다. 불안해 하는 것을 눈치 쳈는지 J가 손을 내밀었다. 밤새 이슬이 축촉히 내리는 것도 모르고 두서 없이 재잘 대느라 머릿 속이 온통 새하얀 나에게 침묵으로 일관하던 J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ㅡ 내가 요즘 커다란 나무 한 그루를 그리고 있거든


무슨 나무?


ㅡ 내 인생의 나무 말이야!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지만 나는 의외로 센티멘탈 해진 그가 낯설게 느껴졌다. 그림을 그리는 J답게 멋있는 수식어로 포문을 열었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더 상기된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ㅡ 그런데 무채색이야~


빠렛뜨 가지고 온 걸오 아는데?


ㅡ그 건 아니고, 난 네가.....

나의 커다란 나무의 푸른 잎이 되어 주었으면 좋겠어.


어색하던 분위기를 모면하려고 참새처럼 조잘대던 나는 그만 말 문을 닫고 말았다. 순간 내 혈관의 모든 피들이 심장으로 향해서 달음질치고 있는 느낌이었다. 오래 전 짝 사랑을 해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 갑작스레 프로퍼즈를 받아보기는 처음이라


연신 어떨떨하기는 마찬 가지였지만 아무 말도 못하고 먼동이 트는 곳을 바라보며 심호흡만 내쉴 뿐이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짚히는 대목이 떠오르기는 했다.


나는 맏이로 자라서 왠지 행동이 굼뜨고 어설퍼 보이면 뒤에서 챙겨주는 습관이 있어서 혹시 딴 생각을 했을 수도 있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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