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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조개

내 싦의 계절풍 08

by 정숙


놈의 탈출은 실패다 양은 냄비 속에서 끓고 있는 놈들에 대한 고문은 이미 시작되었다 사내는 먹다 남은 소주병을 따고 그녀는 냄비 뚜껑을 연다.


그새 놈들은 홀라당 기밀을 누설하고 뽀얀 육즙의 층계를 오르내리며 탈출의 꿈을 접은 채 보글보글 끓고 있다. 사내가 진종일 지친 어깨를 내려놓고 그녀를 향해 미소 지을 수 있는 것도, 다 놈들의 요 뽀얀 살냄새 때문이다. 사내의 시린 등짝에 온기가 돌면 소반 모서리에 폴폴 날아오르는 비단 나비 떼, 사내는 끝내 입을 열지 않는 놈의 주둥아리에 칼끝을 디밀고 주리를 튼다.

ㅡ묵비권이라니, 건방진 놈!


그녀가 버너 스위치를 올리며


ㅡ관 둬요. 사정이 있겠죠

그 속은 오죽하겠어요!


고삐를 늦출 줄 모르는 사내의 살기 찬 눈빛, 집요하게 주리를 트는 억센 손아귀에서 쩍, 갈라져 시커멓게 게

워 내는 놈의 가 슴 앓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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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노트) 한순간도 자연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우주공간의 모든 생명체들 사내도 그녀와 마주 앉아 따뜻한 육즙으로 목을 축이며 내일의 희망에 기댈 수 있는 것도 우연은 아닐 터. 취기 오른 눈빛으로 조갯살을 발가 먹은 껍질들이 어느새 소반모서리에서 활짝 날개를 펴고 폴폴 날아오른다.


혼탁한 삶의 공간이 환희의 세상으로 변신하는 순간이다. 자연이 우리에게 내어준 선물이다. 다만 시커멓게 썩어가는 놈의 가슴앓이는 어찌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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