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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거연인

시대 풍자

by DEN

자기야, 나 진지하게 할 말이 있어. 요즘 따라 우리 너무 붙어있는 거 같아. 오해는 하지 말아 줬으면 좋겠어. 자기가 질렸다거나, 싫어졌다거나, 귀찮아졌다거나 하는 이유가 아니야. 나도 자기랑 함께하는 게 좋고 늘 같이 있고 싶어. 하지만 우린 너무 긴 시간을 붙어있는 거 같아. 자기도 자기가 해야 할 일이 있고 나도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는데, 자꾸 붙어만 있는 건 서로에게 좋지 않은 거 같아. 우리, 조금만 떨어지자. 너무 서운해하지는 마. 그래도 잠은 같이 자잖아.

처음에는 좋았어. 자기랑 이렇게 긴 시간을 함께할 수 있었으니까. 집으로 돌아오면 다른 걸 다 제쳐두고 날 먼저 찾아줘서 좋았고, 외출 전에도 왠지 떨어지는 게 아쉬운 듯 내 옆에 있다가 정말 가야 할 시간이 되었을 때 나가줘서 좋았어. 하지만 요즘 좀 심해진 거 같아. 얼마 전까지는 약속도 많이 다니더니, 날이 추워진 이후로 나가지도 않고 늘 나와 함께 하잖아. 약속뿐만 아니야. 예전에는 산책도 하고 운동도 좀 하더니, 요즘은 운동도 안 나가고 나랑 붙어 있잖아.

그래, 다른 건 다 양보해서 그렇다 쳐. 사람 좀 덜 만날 수도 있고 운동 좀 덜할 수도 있지. 그래도 해야 할 건 좀 해야지. 저번에도 과제 해야 하는데, 하기 싫다면서 나랑 놀아달라고 나한테 오더니 결국 늦게 제출했잖아. 또 나랑 붙어있고 나서 자꾸 성적 떨어지고 있는 거 다 알거든? 내가 아무리 공부하라고 해도 듣지도 않고, 잔소리만 한다고 내 품에서 나가지도 않고. 맨날 말로는 괜찮다 괜찮다. 하지만 전혀 안 괜찮은 거 알거든.

내 품이 좋은 탓이라고? 내가 안 쫓아내서 그렇다고? 그런 말 들으니까 기분 좋긴 하네. 물론, 내 잘못도 있지. 나도 좋으니까 안 쫓아내긴 했어. 잠깐만, 또 이렇게 넘어가려고 하지? 자기 공부는 자기가 해야 하는 거 아니야? 누가 들으면 내가 자기 붙잡아서 공부 못한 줄 알겠어? 그리고 생각해 보니 어이가 없네? 자기가 공부 안 할 걸 왜 내 탓으로 돌려? 그리고 자기 내 품에서 뭐 했어? 매일 누워서 휴대폰만 봤잖아. 나한테 집중도 안 하고 내 품에서 인스타 릴스만, 넷플릭스만, 유튜브만 하루 종일 봤으면서 지금 내 탓 하는 거야? 맨날 말로만 내가 좋다고 좋다고 하지.

아니, 처음에도 말했지만 자기 싫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자기 걱정돼서 하는 말이야. 요즘 나 때문에 일상생활이 잘 안되잖아? 응? 붙어있는 것도 좋지만 각자 할 일이 있고 삶이 있는데, 그건 지키면서 함께해야지. 아무리 나랑 있는 게 좋아도 할 일은 하고 와야지. 나도 자기랑 함께 있고 싶어. 나도 자기랑 붙어 있는 거 좋아. 그럼, 그것만 약속하자. 우리 해야 할 일 있을 때 다 하고 오기. 어때? 괜찮아? 그래, 내가 자기 좋아하는 거 알지? 응. 그래. 약속했으니까, 들어와.


-침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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