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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

시대 풍자

by DEN


한 숲에 원숭이 마을이 있었다. 원숭이 마을이라고 하지만 인간처럼 집을 지어 살거나, 곡식을 저장해두고 있던 것은 아니다. 원숭이 무리의 서식지,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 더 적합할지도 모르겠다. 그곳에서 원숭이들은 나무를 타고, 바나나를 먹고, 번식했다. 나름대로 놀이하는 어린 원숭이, 힘에 밀려 사랑하는 암컷을 얻을 수 없었던 수컷 원숭이, 아이들을 굶기지 않기 위해 고민하는 부모 원숭이 등 원숭이 무리라고 하더라도 인간 사회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양태가 있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 마을 중 잎이 풍성한 나무들이 가장 응집된 곳, 초록색 잎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태양의 빛을 완전히 막아서는 곳, 낮의 어둠과 선선함을 양산하는 곳, 그 밀림 지대에 젊은 수컷 원숭이들이 거칠게 놀고 있었다. 인간의 관점으로는 싸움 혹은 권력다툼, 서열 나누기 등으로 보였을 수도 있으나, 원숭이들의 입장에서 그 정도 몸싸움은 장난에 불과했다. 이리저리 다니면서 쫓고 쫓길 수 있는 나무도 많을뿐더러, 무더운 낮의 햇빛을 피할 수도 있는 이 밀림 지대는 그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놀이터였다.

한편, 그곳 주변으로 하나의 원숭이가 지나갔다. 그 젊은 수컷 원숭이들과 거의 또래처럼 보였으나, 약간은 나이가 더 있는 듯했다. 그렇다고 한들 여전히 젊다고, 인간으로 치면 청년으로 불릴만한 원숭이였다. 그 원숭이는 안타깝게도 신체적 결함을 가지고 있었다. 한쪽 다리를 절었는데, 선천적인 것인지 후천적인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안 그래도 왜소한 신체를 가진 데다가 다리를 절며, 힘겹게 걷는 모습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우끼끼! 우끼끼!”

“우끼끼! 우끼끼!!!”

“우끼끼~ 우끼끼? 우끼끼!”

“우끼끼끼끼끼끼! 우끼끼끼끼!!!”

젊은 원숭이들은 그 절름발이 원숭이를 비웃었다. 그중 하나가 들리겠다며, 목소리를 낮추라고 하자, 다른 원숭이 하나가 들어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더욱더 큰 소리로 비아냥거렸다. 절름발이 원숭이도 자신을 향한 그 조롱을 듣고 있었다.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안 그래도 왜소한 데다가, 장애를 가진 자신의 몸으로는 10마리가, 20마리가 있다고 한들 저 원숭이들을 이길 수 없었다. 그저 듣지 못한 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갔다.

젊은 원숭이들은 그 애처로운 모습이 재밌었는지, 엄청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웃음소리의 파동은 빽빽한 나무 사이를 오고 갔다. 그러거나 말거나, 절름발이 원숭이는 계속 걸어갔다. 그리고 바나나가 가득 매달린 한 그루의 나무 앞에 섰다. 당연했다. 나무가 많은 만큼 열매도 많았다. 절름발이 원숭이는 그 나무를 올랐으나, 결함이 있는 신체로 올라가기에는 그 나무는 너무 높고 굵었다. 나무를 힘겹게 오르다가 떨어지고, 힘겹게 오르다가 떨어지는 그의 모습은 무척 애처로웠다. 하지만 젊은 원숭이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유흥거리였다. 그들의 웃음소리는 훨씬 커졌다.

얼마나 웃었을까? 슬슬 이 원숭이를 조롱하는 것도 재미가 떨어졌다. 그저 빨리 이곳을 떠나주기를 바랐다. 그래야 자신들의 놀이를 방해 없이 할 수 있으니까. 무력을 쫓아낼 수도 있었겠지만, 바나나만 얻고 나면 알아서 떠날 원숭이에게 굳이 그런 무자비한 행동을 할 필요는 없었다. 젊은 원숭이들 중 한 마리가 절름발이 원숭이를 우롱하려는 듯 빠르게 그 나무로 올라가 바나나를 떨어뜨렸다.

절름발이 원숭이는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 뒤, 바나나를 들고 왔던 길을 떠났다. 젊은 원숭이들은 또다시 폭소를 터뜨렸다. 쟤는 원숭이가 나무하나 제대로 타지 못한다며, 좋다고 받아 가는 꼴을 보라며 비웃었다. 절름발이 원숭이도 그 비웃음을 들었으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바나나에 집중했다. 그렇게 젊은 원숭이들은 다시 놀이를 시작했다.


한 도시에 마을이 있다. 도시라고 해도 흔히 생각하는 대도시는 아니다. 도시와 시골의 경계, 교외 격정도 되는 마을이었다. 비록 대도시는 아니라고는 하나 꽤 많은 사람이 모여 살았다. 아파트도 몇 채 있었고, 학교도 있었다. 어지간한 각종 편의시설도 모두 있었다. 이곳은 평범한 시민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이 터전에서 사람들은 태어나고, 살아가고, 사랑하고, 죽어갔다. 이런 인간 삶의 다양한 양태가 있었음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 마을 중 주택가가 즐비한 곳, 신호등도, 차도도 없이 인간과 차가 모두 같은 길로 다닌다는 곳, 가로등과 전봇대가 교차하는 곳, 삶 속에서 수없이 들어오고 나가기를 반복하는 곳, 그 주택가 골목에서 한 학생의 무리가 걸어가고 있었다. 고등학생인지, 대학생인지 알 수는 없었으나, 건장한 체격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얼굴은 앳된 청년들이었다. 그들은 번화가를 가기 위한 것인지, 학교를 가기 위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하여튼 걸어가고 있었다.

걸어가고 있는 청년들의 시선에 한 노인이 들어왔다. 그 노인은 수레 위로 폐지를 힘겹게 모으고 있었다. 청년들은 그 모습을 보고 한편으로는 불쾌한 마음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기롱의 마음이 들었으나, 인간의 도리상 내색은 하지 않았다. 그때 반대편 골목에서 한 남성이 걸어왔다. 체격이 무척 왜소하고 원숭이를 닮은 남성이었다. 언뜻 봤을 때는 20대 중반쯤 되어보였으나, 얼굴의 표정이 살짝 이상했다. 그 표정이 묘한 이질감을 안겨주고 있었다.

“야, 저 사람 원숭이 닮았지 않았냐? 킥킥킥”

“미쳤냐. 히히히히”

“너도 웃으면서.”

“야, 너도? 키키키킼”

“야, 말조심해. 진짜 원숭이일 줄도 몰라.”

청년들은 남성을 조롱하며, 비웃었다. 다행히 남성은 그 목소리를 듣지 못한 채 노인에게 다가갔다.

“제가 도와드릴게요!”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아니요. 도와드릴게요!”

“고마워요…”

청년들은 남성의 표정과 목소리에서 자신과는 조금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음을 알았다. 속된 말로 묘한 싸함을 느꼈다. 그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웃음을 터뜨렸고 한 명의 청년은 그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고개를 돌렸다. 그들은 웃음이 터져 나온 것을 이유로 잠깐 걸음을 멈추었다. 한편, 남성은 폐지를 주워 싣고 있었다.

‘우당탕탕’

그때였다. 남성이 폐지를 올리다가 수레에 쌓인 상자들을 쏟아버렸다.

“헉! 제… 제가… 이게.”

갑작스러운 상황에 노인은 당황한 듯 보였고 남성은 패닉이 온 듯 불안해 보였다. 이 광경까지 보자 청년들은 도저히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래도 인간의 체면이 있다는 것인지 모두 다 뒤를 돌았지만, 누구나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크게 웃었다. 노인은 바닥에 널브러진 상자를 보고 망연자실해 있었고, 남성은 독특한 억양의 “죄송합니다.”라는 말만 반복했다.

“흐흐흐흐크흨힣, 야 이 나쁜 놈들아 이걸 웃냐.”

“크크킄킄그그, 너도 쳐 웃고 있잖아. 미친놈아.”

“너네, 진짜 쓰레기다. 킼키키키키.”

청년들은 서로를 보며, 한참을 웃었다. 분명 그 소리는 노인에게도, 남성에게도 들렸을 것이나 둘 다 그런 웃음소리에 신경을 쓸 상황은 아니었다. 노인과 남성의 손은 무척 더뎠다. 심지어 실다가 다시 쏟아버리기도 했다. 청년들은 그 모습을 보고 더 큰 폭소를 터뜨렸다. 노인과 남성은 청년들의 비웃음에 부끄러움을 느꼈지만, 모른 척했다.

그래도 청년들은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는지, 서로 눈치를 보며 도와주자는 대화를 주고받았다. 일종의 합의를 마쳤는지, 청년들은 노인과 남성을 도와 폐지를 주워주었다. 청년들의 동작은 신속하고 정확했다. 노인과 남성이 몇분이나 걸려야 했을 작업을 수십 초 만에 끝내주었다. 노인과 남성은 허리를 굽히며, 연신 청년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청년들은 별거 아니라는 듯 얼버무리고 지나갔다.

“야, 가까이서 보니까 진짜 원숭이 같지 않았냐?”

“키키킼, 모자란 사람 놀리지 마라, 진짜 쓰레기다.”

“지는, 네가 제일 크게 웃었으면서.”

“이걸 어떻게 안 웃냐?”

“원숭이 손동작 봤냐. 상자도 제대로 못 올리던데?”

“어어어 죄에에송합니다아아.”

“키키키키 미친놈.”

그렇게 그들은 한참 동안 그 남성을 희롱하며, 웃음거리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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