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알아요

by 김인

"우리 아빤 나 사랑한다면서 같이 놀기는 싫대요."

여자아이 큰 눈이 나를 향한다. 오늘 놀러온 아이 친구다. 아이는 놀라운 말을 한다. 초등학생 우리 애도 '아침은 새 거라서 좋다'든가, 사과하면 '아까는 왜 그 생각을 못했어'하며 바라보아 어른을 반성하게 만든다. 나는 여자아이를 향해 끄덕끄덕하고는 아이가 쥔 빨간 크레파스와 고사리손을 내 손 안에 감싸듯 잡고 함께 태양을 칠한다. 이럴 때는 당연한 말을 들은 것처럼 반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들은 부모를 비난하기 위해서 말하지 않는다. 의구심을 남기는 부모를 이해하고 싶어서, 서운함을 해소하고 싶어서, 사랑하고 싶어서 소리를 낸다.

"나랑 놀기는 싫은데 진짜 사랑한대요."

"그렇구나."

"아줌마도 그래요?"

"응."

"그러지 말아요. 우리도 놀기 힘들어요."

"어떤 부분이 힘들어?"

"아빠랑 놀면 규칙 설명하느라요, 아빠는 이름도 모르고 자꾸 까먹어서 놀 시간도 줄어들어요."

"아."

"우리도 친구가 편해요. 근데 아빠니까 좋단 말이예요."


진혁(가명)이는 내가 좋아하지 않는 아이였다. 브랜드로 갖춰입었지만 깔끔한 행색과 달리 주저주저하고 자신이 없어서 대하기가 어려웠다. 같이 있으면 기분이 가라앉았다. 또래와 어울릴 때도 빈축을 사기 일쑤였다. 자기 기분이나 입장을 알리길 체념하고 입술을 달싹이는 아이. 그런데 우리 애 생일 잔치 앞두고 청소하는데 진혁 어머님이 전화를 하셨다.

"진혁이랑 정말 친한데, 왜 초대장을 주시지 않았을까요?"

"저희 집이 크진 않아서 열명만 부르다보니,"

"이러시면 안돼죠. 생일한다고 다른 아이 눈에 눈물바람 일으키시면 돼요?"

전화기 저쪽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린다. 과몰입하는 부모들이 한둘은 있다. 나는 곤란하게 되었다고 생각하며 시간을 견뎠다. 진혁 어머니는 '보낼께요'하고는 내가 대답할세라 끊어버렸다. 들떠있는 아이에게 사정을 묻자 의외의 설명을 한다.

"진혁이한테 초대장 줬어. 근데 걔가 못 온다고 해서 민주한테 준 거야."


여름볕이 가득한 집은 까맣고 작은 머리들로 북적북적했다. 오고 싶다고 한 애가 또 있어서 열 대여섯명이 난리였다. 애들 소리 들으면 병도 나을 것 같다며 흔쾌히 웃어주신 이웃 어르신들에게 고마웠다.


아이들은 서로를 만끽했다. 케익도 불만 끄고 어른들이 쥐어준 과자네 치킨이네 별 관심없이 노느라 정신이 없었다. 벌써 커텐 한켠이 뜯어져 내려와 있고 마루바닥에 장난감이 흩어져 아수라장이다. 데려다주신 어머니들이 한켠에 있겠다고 했지만 아이와 약속한 대로 어른들은 돌려보냈다. 아이들은 환성을 지르며 잔뜩 흥분해 떠든다. 집은 어린 영혼들의 생기로 부풀어올랐다. 새삼 아이들의 고독이 사무쳤다. 평소에는 다른 세대인 부모와 살며 또래면 바로 이해하고 알아줄 감각을 누리기가 힘들었겠다. 생존을 의탁하는 유년은 대상화 당하기 쉬운 시절이다. 어른들은 애들 바로 옆에서 애키우기 힘들다고 떠든다.

주방으로 왔는데 수도 앞에 진혁이가 서 있다. 체리가 묻었다길래 빨아준다고 하자, 아이는 공손히 배꼽인사를 하며 꼬깃꼬깃 구긴 셔츠을 내민다. 로켓이 그려진 메리야스를 입은 진혁이는 더 토실토실하게 보인다. 또래보다 몸집이 크다. 창피하다고 해서 내 티셔츠를 입혀주었다.

옷을 빨아 건조대에 널고 돌아서는데 진혁이가 전화를 했다가 끊고 했다가 끊고 하는 모습이 보인다.

"어머님한테?"

"네. 꺼져 있어요."

"배터리 없나보다. 이따 다시 해보자."

"안 받을 거예요. 아저씨랑 있거든요."

"아저씨?"

아이의 곱고 조심스러운 표현을 간단히 적자면, 진혁이 어머님이 회사 동료와 만난다고 한다. 어제 아빠가 진혁이더러 엄마 폰 비밀번호를 물어봤는데 모른다고 대답했다고....... 엄마아빠가 자기 없을 때 싸울까봐 걱정이 되어서 초대를 거절했는데, 진혁 엄마가 학부모 단톡방에서 생일 얘길 듣고 나한테 전화했다고 한다.

"제가 거짓말했어요." 진혁이 시선이 발치로 떨어진다.

"그런가?"

"아빠한테는 모른다고 하고 엄마한테는 초대장 못 받았다고 하고 아줌마한테도......"

"네가 잘하려고 한 소리 같네. 사실 아줌마도 거짓말 많이 하거든."

"그래요?"

"그럼. 진혁이는 엄마랑 아빠가 싸울까봐 걱정이 되는구나."

"엄마는 나 없었으면 아빠랑 이혼했을 거래요."

"......"

"아저씨 만나고 행복하구요."

"행복하다고 말씀하셨어?"

"아뇨. 폰에서 사진을 봤어요. 엄마가 그렇게 웃는 것 처음 봤어요."

우리는 잠시 바닥을 함께 보며 한숨을 쉬었다.

"진혁아."

"걱정하지 마세요. 엄마한테 아빠가 비밀번호 물어봤다고 얘기했어요. 번호 바꾸는 것 봤어요."

"그랬구나. 엄마한테 네가 알고 있다고는 말하지 않은 거지?"

"엄마는 요즘이 방학 같대요. 그 아저씨한테 그랬어요. 방학이 길었으면 좋겠다고, 여름방학 다음에 바로 겨울 방학이면 좋겠다고 했어요."

"문자를 본 거니?"

"네. 아줌마 나 이센치나 컸어요. 나도 다 알아요."

"......"

"방학은 끝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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