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시간과 잠자는 시간 외에는 대부분 자유로웠던 자연치유의 집에 비해 새로 발을 들인 교육장은 그야말로 같은 과목을 듣기 위해 총집합된 대학 강당 같았다.
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지끈 하건만 아파서 혹은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불안했을 사람들이 희망을 찾다가 당첨되었다는 그 하나만으로도 신이 난 것 같았다. 서로 인사를 주고받느라 식당 안은 금세 시끌벅적했다.
물론 무표정인 채 식사가 잘 안 되어 고심하는 분들도 더러 있었다. 대부분 항암 중에 오셨는지 머리에 두건을 쓰거나 가발이라 어색한 머리 모양이긴 했다.
막 식사를 마치고 산책길로 접어든 순간
"아얏"
나도 몰래 외마디 소리를 질러야 했다. 미처 피할 겨를도 없이 큰 말벌이 종아리깨를 쏘고 도망갔다. 평상시에 그다지 벌은 타지 않는다 자부했는데 아니었다.
오후 내내 종아리가 따갑고 간지러워서 강의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나름 들리는 내용을 열심히 적어나갔다.
면역력 증대가 가장 큰 숙제인데 무엇보다 심신의 안정이 최고니 이 시간부로 미움을 마음속에서 빼내 버리라고 하면서 예를 하나 드는 것이었다.
어떤 자매님은 볼 때마다 남편이 미워 죽겠다고 하기에 '그럼 하느님께 그 남편 데려가시라 할까요? 그럼 스트레스도 안 받고 자매님이 남은 재산 다 차지하고 오래 살 수도 있지 않을까요?' 했더니 '그런 기도는 하지 마세요'하고 말리더라고 하셨다.
모두들 공감하는지 손뼉 치고 웃느라 난리가 났다. 하필 일주일 강의 중에 첫 강의가 마치 나를 두고 하는 말 같아 가슴이 철렁했다.
그런저런 갈핀 한 상태라 소화도 시킬 겸 해서 걷다가 일이 터진 것이었다.
벌에 쏘인 종아리는 이내 거짓말 조금 보태어서 반대쪽보다 두 배쯤 붓자 수간호사가 응급 처치를 해 주었건만 아프고 가렵기는 매양 한 가지였다.
저녁 식사를 마치자 수간호사가 와서 상태가 어떤지 보더니 안 되겠다며 다음날 사혈을 해야겠다고 접수해 두겠단다.
신부님의 첫 강의 말씀이 귀에 쟁쟁하여 혼자 조용히 성당문을 밀었다. 이내 눈물콧물이 쏟아졌다. 이 모든 결과가 다 '네 탓이요'하고 있었던 내 모습이 그제야 보였다.
"안됩니다, 밉다는 것은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다는 것의 다른 표현이에요. 아프고 서럽지만 애들 아빠니까요. 잘 살게는 못해도 없으면 참말 더 곤란하지요'
실컷 울고 방에 오니 마음은 좀 가벼워진 것 같았다. 여전히 종아리는 가렵고 불편했으며
화장실도 연신 들락 거렸다.
다음 날 눈 뜨자마자 재어본 몸무게는 전날보다 또 빠져 있었다. 대신 화장실 볼일은 미사 후로 미뤄졌다. 체온이 더 내려가진 않았던 것이다. 그것이 감사해서 희무끄레 한 새벽녘에 다시 성당문을 밀었다.
벌써 많은 분들이 고요 가운데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가슴이 뭉클했다. 수녀원 수련생 시절 말고 언제 이렇게 이른 시각에 성당에 간 적이 있었던가! 처음이었다.
진단 후 놀라서 친정으로 달려간 날 모친의 성당 지인분들이 오셔서 함께 기도 해 주실 때의 그 감격이 명치께로 또다시 올라오고 있었다. 그것은 냉랭하던 내 가슴에 새로운 심지를 품고 불을 댕길 준비 작업 같은 것이었다.
약속했던 서울병원 행을 포기할 때까지만 해도 될 대로 되라는 마음이 더 컸었다. 그런데 강의를 들을 때마다 제일 먼저 미움을 지우는 연습을 해야겠다 싶어 노력하는 중에 아주 조금씩 어둠에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전에 기도는 거의 극약처방 같았으나 앞으로는 습관화가 되도록 해야겠다는 결심을 한 것도 그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