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보 씨는 꿈에서 본지도 한참이나 된 요양원 동기였다. 원래는 몇 자 더 붙어 있는 게 그의 가톨릭식 이름이다. 하지만 도롱뇽 꼬리처럼 싹둑 잘라 내고 나니 어쩐지 어색했다. 그래서 다시 고쳐 짓기로 했다.
엘보, 그는 가난했다. 아니 부자였다.
엘보, 그는 외로웠다. 아니 행복했다.
엘보, 그는 꿈쟁이였다. 아니 지극히 현실 주의자였다.
그를 떠올려도 되는지 나에게 먼저 묻게 된다.
그는 가고 나는 지금 살아 있다고 그를 떠올리는 건 내 자유지만 그에 대해 써도 되냐고 물어볼 때가 지금 아무도 없다.
다만 진실된 사랑이 뭘까?
지금껏 살아오면서 보고 느낀 것을 써볼까 싶을 때 처음으로 떠오른 이가 그이일 뿐이었다.
명의학에 따르면 올해가 내 생의 최고의 해라 했다. 그것도 중국 유학까지 다녀오신 신부님의 수업 중에 특별히 받은 나의 사주풀이로 가장 이로운 숫자는 바로 통상적으로 불운 또는 최대로 조심하란 경고의 숫자인 9 , 즉 아홉수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길하다는 해가 이제 며칠 남지 않는 것이다.
아니 음력으로는 달력 한 장이 더 남아있긴 하다.
그래서일까?
눈감으면 꿈이 화려하고 눈 뜨면 생각이 바쁘다.
그러다 떠오른 것이 앞으로 나의 삶을 성숙하게 채우기 위해 무얼 하면 즐겁고 행복할까?라는 의문문을 종종 던지고 있었다
한마디로 그것은 설렘이었다.
잡힐 듯 말 듯 조금씩 멀어지는 아지랑이 같은
기억을 떠올려서 지금 살아가는 하루를 행복으로 채우는데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그리 해보겠단 생각에까지 미쳤다.
나에게서 너에게로 혹은 , 타인에게로 눈과 귀를 열어 볼까? 하는 사이!
아니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성탄절과 그다음 날이 되어버린 성가정 대축일을 연거푸 낮 미사를 드리고 난 후 받은 은총의 선물 같은 거였다.
특별하고도 산뜻하면서 마치 오랜 숙제의 실마릴 찾은 듯 전율이 일었다.
엘보 씨 이야길 써보자고 생각하고 이름을 적을 때다. 첫 글자로 엘이라 쓰니 뒤 따라 나온 것은 엘프!
뭐지? 하고 사전을 열었더니 요정이란다. 곰곰 생각해도 그의 생전의 이미지와 맞지 않아 지웠다.
한참을 이리저리 꿰맞추다 결정한 것이 엘보다.
엘보라는 용어가 수도관 같은 어떤 통로를 잇다가 다른 방향으로 전환이 필요 힐 때 쓰는 팔꿈치 모양의 꺾인 작은 관을 말하듯 적어도 내게는 요양원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바로 그다.
내 기억 속의엘보는 전례 봉사자였다. 또한 요양원 안과 바깥을 연결하는 통로 역할을 했었다.
물론 그의 본명과도 비슷한 이미지이니, 지금부터 그냥 엘보라고 부를 것이다.
엘보 이야길 따라가다 보면 스물여섯 한창나이에 들어간 요양원에서 외려 마음속 키가 쑥쑥 자라나는 나와 맞닥 뜨릴 수도 있겠다.
비쩍 마른 몸으로도 날로 기쁨이 자라고 있어 사랑 안에 머물러서 행복했던 나도 종종 출연할 것이다.
기대하시라! , 우리들의 엘보,
그대 사랑은 영원히 살아 숨 쉴터이니!
♡걱정 마! 언젠가는 그대의 꿈을 제대로 가꿀 수많은 얘기들이 여기서 잠깐 기다릴 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