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을 풀었다.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물어야 했는데 그럴 준비성도 여유도 없었다. 어디 여행을 가본 적도 없었기에 큰 가방도 없다.
외삼촌께서 다니던 공장에 월차를 내고 트럭을 몰고 오셨다. 여벌 옷 몇 벌에다 속옷을 챙기고 쓰던 로션 등 필요물품을 챙겼다.
그 먼저 하던 일을 접어야 했다. 그 보다 앞서 아는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전화로 알렸다. 그저 아무 말없이 들어준 분도 있지만 이런저런 부탁의 말이 긴 사람도 있었다.
내 고향집은 바빠서 나를 돌볼 겨를이 없다는 이유가 첫 번째였으며 삼시세끼 해결도 중요하지만 같은 시간에 자고 일어나는 규칙적인 생활이 매우 중요하다며 요양원과 연결해 주신 분은 가톨릭 신심 단체장으로 계신 책임 신부님이셨다.
" 보따리 사서 요양원 가라. 내가 전화 해 뒀으니 이름만 대면 된다"
그리고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끊으셨다.
약속된 날이 되어 집을 나섰다. 갓 대학을 졸업한 바로 밑 동생과 이제 대학에 들어간 둘째 동생과 함께 지내고 있었다. 모두 남동생이었다. 그래도 떠나야 했다.
곧장 치료하지 않으면 옮길 수 있을 만치 전염력이 있는 질병으로 진단이 났기 때문이다.
벌써 지원 담당 수녀님의 확인 말씀 이전에 꾼 꿈을 떠올렸다. 그런데 그 꿈이 맞아 들어가고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나는 긴급 약 처방을 받고도 갈길이 멀어 헤매는 꿈을 이미 꾼 뒤였다.
사무실을 들러서 신상명세서를 작성했다. 추천인으로 지역에서 가장 오랜 성당의 주임 신부님 성함이 이미 적혀 있었다. 추천 내용의 첫 문장은 '가정 형편상'이었다.
학교 다닐 때도 써보지 못한 문장이었다. 고향집에는 조부모님과 부모님께서 소규모의 농사를 짓고 있었고 학생 신분의 동생 셋이 있었다. 세무서에 신고된 세금이 없었기에 가능했던 입소였다.
"내일부터 올 수 있겠어요? 약을 처음 먹게 되면 피곤할 수 있으니 괜찮을 때 나오면 됩니다."
친절하게도 사무실 직원은 나를 배려했다. 소개해 주신 신부님께서 당부하신 말씀이 사무실에서 봉사하는 조건으로 받아준다는 것을 강조했었다.
그렇게 기초수급 대상도 아니면서 국가에서 운영하는 결핵 요양원에 입소를 했다. 괄호 안에 '봉사'라는 조건을 달고서 말이다.
"오후 휴식을 마치고 3시에 묵주기도가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특별히 미사가 이어집니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엘보 씨였다는 것은 나중에야 안 사실이었다.
들고 간 가방의 짐은 채 정리하기도 전이라 들어갈 때 차림 그대로 성당을 찾아갔다.
마침 그날 입소자가 몇 사람이나 되어 인사를 시킬 겸 특별히 원장 신부님께서 미사를 드리게 된 연유를 미사 전에 먼저 말씀하셨다.
조용한 발걸음과 정돈된 말투로 미사 해설이 이어지고 예절이 진행되었다.
대부분 같은 복장을 하였으나 표정은 제각각 이 있다.
무엇보다 놀란 것은 나보다 훨씬 더 깡마른 체구였다는 것이다.
바깥에서 지낼 때는 날씬? 한 거로 치면 두 번째가 서러울 지경인 내가 봐도 모두들 너무 말라서 뒷모습만 보면 나무둥치 가운데 토막끼리 모아 놓은 느낌이었다.
미사 후에는 각자 소개가 이어졌다.
''이 자매는 내일부터 사무실에 봉사하러 내려갈 거니 공동 구역 청소는 빼고~~''
그렇게 요양원 첫 신고식은 치러졌다. 그리고 내게
엘보 씬 조용한 이미지의 미사 전례 봉사자로 인상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