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뻔? 하루살이!

8. 설빔

by 하리

흑호라고 호랑이중에서도 센 호랑이해가 시작된 지 한 달 만에 진짜 설이 코밑으로 다가왔다.


이맘때면 어렸을 때는 온 동네가 한 달 내내 북적했었다. 방앗간에서 떡 빼느라 종일 동동 했었고 강정 준비로 엿을 고우느라 어른들이 진땀 빨 때 아이들은 그 달콤함에 취했었다.

무엇보다 동네 사람들 모두 기다린 사람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뻥튀기 아저씨였다. 그날을 맞기 위해 어지럽혀 있는 마을 안의 넓은 마당을 청소해놓았다. 뻥을 누가 먼저 튈지 순서도 정하지만 그보다 앞서 쌀이나 콩 또는 옥수수 등을 미리 말리느라 집집마다 다들 손이 바빴다.

그간 얼마나 뻥튀기할 재료 손질을 잘했는지는 ' 뻥' 소리와 함께 결과물을 보면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같은 쌀이라도 잘 말린 것은 양이 많고 맛도 좋아서 비교가 되었다.

그렇게 온 동네가 기다리던 뻥튀기 아저씨가 마을로 출장 온 날은 '뻥이요' 하는 소리가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이어졌다. 식사도 그른 채 자리 지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잠깐 자리 비운 사이에 새치기당했다고 소리치는 시람도 있는 그런 시끌벅적한 날이었다. 그렇더라도 그날만은 어른들뿐만 이니라 동네 아이들도 진종일 아저씨 옆을 맴돌며 밥 대신 런저런 뻥튀기를 먹는 것으로 대신하곤 했다.

설맞이 음식 준비가 어느 정도 되고 나면 그보다 더 손꼽아가며 기다리는 것은 다름 아닌 설빔이었다. 한해 한 두 번 겨우 까 말까 한 귀한 새 옷이라서 래 입 수 있게 격보다 소 큰 것을 사다 보니 한동안 헐렁함을 감수해야 했지만 말이다.


세월이 흘러서 비록 설음식 준비기간이 짧아지긴 했으나 부지런하신 어머님께서는 일찌감치 제사 장보기와 강정과 가래떡을 빼놓으셨다.

게다가 한동안 사서 쓰시던 두부까지 올해는 직접 지으신 콩으로 맞추셨다. 한마디로 설 맞을 준비를 다 하신 셈이다.

쁘신 어머님 곁에서 느릿느릿한 며느리인 나는 아직도 천하태평이다. 볕이 환한 날은 일광욕한다며 마루에서 한참 넋 놓고 앉아있고 흐린 날은 운동해야 한다며 뒷산을 올라갔다가 와서 쉬다 보니 또 다른 하루가 후다닥 지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론 사이사이 어머님께서 읍내 장터로 태워 달라는 요청에 따라 차를 몰기도 했다. 떡쌀 담글 때 잠깐 거들었으며 두부 할 콩을 건질 때 손을 보태기도 했다. 그런 잠깐의 거듦을 하고 난 뒤면 쉬는 시간이 더 필요했으니 말해 무엇하랴?

하지만 그런 나에게도 한동일 나만의 고유한 설맞이 행사가 있었으니 바로 설빔 준비였다.

설날은 설빔입고 새배하는 날

내 아이들이 태어나서 랄 동안에만 해도 당장 급한 옷이 아니면 일부러 설까지 미뤘다가 사곤 했다. 그렇게 연결되던 설빔 준비도 아이들이 자란 뒤에는 저희들 마음에 맞는 옷으로 사 입곤 해서 내손을 벗어난 지 한참 되었다.

그 덕에 이전 같으면 여기저기 가게를 기웃하거나 경비를 아낀다고 인터넷으로 보고 또 찾아보던 때도 옛말이 되어가고 있다.

하여간 평년 같으면 주머니 사정에 따라 설빔 준비하느라 나름 바빴을 나만의 고유한 설맞이 행사마저 내게서 점점 멀어져 간다는 것이다.

그 설빔들을 고를 때의 기쁨도 있었고 고맙고 좋다는 인사도 듣곤 했다. 하지만 매번 그런 것은 아니었다. 가끔은 아이들부터 시작해서 어머님과 다른 가족들로부터 부정적인 반응으로 돌아올 때도 있었다.

가령 색상이 그다지 맘에 안 든다거나 유행에 맞지 않는다는 등등의 이유가 많음에도 한동안 아이들 설빔 준비할 때마다 조카들 것도 살펴보고 남편과 시어른 내외분도 챙기곤 했다.

무엇을 선물한다는 기쁨에 젖어서 정작 그 옷이나 물품을 써야 할 본인들의 의사를 묻지도 않고 덜컥 결제 한 뒤에 후회한 적도 많았다. 그마저 점점 내게서 멀어져 가고 있어 존재감이 상실되는 느낌 또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

이는 설맞는 준비뿐만이 아니다. 생각보다 투병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자꾸 아프다는 말 듣는 것도 그렇고 아내 역할이나 며느리 노릇을 제대로 못한다는 잔소리도 입만 아프다는 결론을 내렸는지 언제부턴가 바지런한 시동생네들과 시누들이 서로 번갈아가며 시어른 댁을 들러서 청소나 식재료 등을 살피고 있다.

덕분에 그동안 제대로 하는 것도 없으면서 부담감에 짓눌려 지냈던 맏 며느리인 나는 뒤로 몇 발자국 뺀 채 건강 회복에 좀 더 집중하는 중이다.

물론 일을 제대로 않고 있으니 큰 소리 칠 일도 없고 특별한 권리 운운할 건더기도 전혀 없다. 그리하여 바라거나 기대는 것이 없으니 외려 마음 편하고 세상이 더 잘 돌아가는 것 같다. 온 가족이 합심하여 도와주고 있으니 올해는 더 열심히 노력해서 가족이나 이웃들 만은 못해도 지금보다는 더 좋아져서 도움받는 것이라도 최소화하도록 할 의무가 있긴 하다.


무엇보다 올해는 이전과는 달리 설빔을 내가 겨 받다.

마침 직장에 다니는 딸아이가 집에서 입을 요량으로 운동복을 다기에 내 것도 하나 슬그머니 골랐다. 그러자 큰딸이 아직 학생인 동생 것과 제 아빠 것도 샀다. 그렇게 얼결에 가족 설빔을 딸아이가 장만한 셈이다

대신에 나는 어느 한 개인 취향들을 따지지 않고 직접 신든 남을 주든 상관 안 해도 되고 주머니 사정까지 고려해서 제일 합리적으로다 양말을 샀다.

코로나의 기승으로 설 연휴 나들이와 친척 방문을 자제해달란 부탁을 나라나 방송매체마다 거의 애걸복걸 수준이다.

그래도 아마 우리 집은 그냥 넘어가지 않고 모일지도 모른다. 효자효녀인 가족들은 이미 설맞을 준비를 마치신 어머님 뜻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름의 방법대로 새배를 올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아직 은 숙제가 으니 한자리에 모이는 가족들 밥상을 준비야 한다. 동서들도 있고 아이들이 자랐으니 많이 거들긴 해도 무얼 어떻게 해서 먹느냐는 내가 결정할 일이다.

한 끼는 제사 지낸 뒤의 음식과 떡국을 먹으니 결된다. 대신 저녁상은 올해도 가볍게 한솥 가득 비벼 먹을 수도 있고 각자 입맛대로 먹어도 되는 무 콩나물 밥을 준비할까 싶다.

아마도 앞으로의 나의 하루하루는 점점 더 뻔뻔? 하게 달라져 갈 것 같다. 심지어 명절마저도 말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