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차다. 입춘이 지났건만 겨울 한파는 여전히 기승을 부린다. 언덕 위에 달랑 한채인 우리 집은 이런 날씨에는 방안에 있어도 손이 시릴정도다. 그래서 낮이면 마루가 더 따스하다.
다행히 햇살이 환해서 모처럼만에 슬슬 걸어볼까 하던 참이었다. 그전에 아침 먹은 것을 소화도 시킬 겸 마루에서 햇볕을 쬐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윗채에 있는 냉난방기가 돌아가는지 바깥에 놓인 팬 소리가 들린다. 아침 먹고 난 후에 끄지 않고 나왔나? 요즘 깜빡깜빡하는 나를 의심하면서 몸을 일으켰다.
몇 년 전 창문을 두꺼운 것으로 죄다 바꾸긴 했어도 지은 지 삼십 년 가까운 언덕 위 외딴곳에 있는 우리 집은 한마디로 여름엔 덥고 겨울은 춥다. 애초 집 지을 때도 안에는 구멍이 숭숭 뚫린 블록으로 벽을 쌓았었다.
살다가 얇은 스티로폼을 한 장 더 붙이고 도배를 했건만 바깥에서 스며드는 냉기까지 다 막지 못하고 있다가 가까스로 창문만 고친 것이었다.
그러고 나니 바깥바람과는 차단이 좀 된 듯했지만 나무 보일러를 사용하면서 저녁에 잠깐 불 붙이는 것으로는 여전히 실내온도를 확 올리기는 어려웠다. 아무리 춥다고 보채어도 끄덕 않던 남편 대신 내가 용돈을 아껴서 모은 돈으로 비록 중고지만 몇 년 전에 냉난방기를 샀다.
애초에 그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은 작은 에어컨 정도였다. 다행히 기계를 볼 줄 아는 시동생의 도움으로 용량이 좀 되는 것을 설치하고 보니 최소한 거실과 부엌 정도는 금세 온도 변화를 느낄 정도여서 잘 활용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니까 평소에는 덥거나 춥게 지내다가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야만 틀 수 있는 응급처방 같은 거다. 그것조차도 남편의 눈치를 보면서 틀 정도로 검소함이 몸에 밴 남편은 혼자 있을 때는 한 번도 틀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 밤도 아닌 낮에 그것도 위채에는 남편 혼자 있는데 그 아까운 전기가 술술 새고 있지 않는가!
듣던 음악을 멈추고 서둘러 난방기를 끄려고 거실문을 열었다. 그런데 남편이 거실에서 그것도 길이가 어깨 아래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를 풀어헤친 채 히터 앞에 서서 말리고 있지 않는가?
그 광경을 보고 할 말을 잃은 난 한참 서 있다가 다시 나왔다. 거실문을 닫고 나서야 말이 나왔다.
''아니 드라이기로 말리지!''했다. 그런데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민 큰 소리로 웃고 말았다.
그제야 얼마 전 딸아이가 한 말이 생각났다
''아빠가 그거 좋더라. 불 때는 것보다 빨리 따뜻해지고 머리 말리기 좋아!''
몇 년간이나 눈치 보느라 아껴가며 켜든 히터였다. 그런데 남편이 얼마 전부터 그 히터 바람으로 긴 머릴 말렸었다는 게 참말로 웃겼다. 해서 동네 윗집 형님네 놀러 가서 한바탕 소동 벌려가며 떠벌리고는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