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기 직전에 우연히 들은 문구가 떠오른다.
인간의 표정과 말투에서 진심을 찾아라는 어느 스님이 남긴 어록이다.
표정은 진심이 드러나고,
말투의 끝자락에서 감정이 스며나온다고.
언어는 얼마든지 위장술이 가능하지만
표정과 말투를 숨기기는 무척 어렵다.
나는 10년동안 내 조카의 독서선생이었다.
내 조카가 고등학교 다닐 때, 마치 셋째 딸을 보살피는 마음이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어설프게 키운 두 딸에게 해 주지 못한 것을
조카에게 해 주고 싶었다.
두 딸에게 평생 공부하고 글쓰는 엄마가 당면한 분위기만을 주었다면
조카에게는 맛있는 거 먹고, 즐겁게 사는 삶을 슬쩍 주고 싶었다.
늘 허덕이고 넉넉하지 못했지만
5천원 짜리가 생기면 지갑에 두었다가 조카를 주었다.
그날도 조카를 옆에 앉히고, 딸들은 앞에 앉히고
국밥집에서 국밥을 먹었다.
내가 더 건져주는 고기와 국물까지 야무지게 먹은 조카가
갑자기 나를 보고 짧은 비명을 질렀다. 조카의 예쁜 입술도 순간 이그러져 있었다.
더구나 조카의 눈은 나의 옆 모습을 보고 있어서 나도 놀랐다.
나는 수저를 급하게 놓으며 왜냐고 물었다.
조카는 급하게 일그러진 웃음을 지으며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했다.
나는 신경이 쓰여서 나의 볼을 만지며 계속 물었다.
"이모 옆 머리통이 보여서요..."
나의 큰딸도 그 상황에 깜짝 놀라서 내 옆으로 와서 나의 옆 머리를 살폈다.
"어, 우리 엄마 오른쪽 머리카락이 갑자기 왜 이렇게 많이 빠졌지!"
큰딸은 나의 똥머리를 풀어서 머리카락이 한쪽으로 쏠리지 않게 털털 털어서
다시 묶어주었다. 그 어색하고 놀란 분위기를 그렇게 정리되었다.
하지만 나는 내 조카의 그 일그러진 표정을 잊을 수 없었다.
조카는 대학에 수시 합격을 하고 그 소식을 나에게 전하지 않았다.
대학에 들어가고 서서히 멀어졌다.
그렇게 멀어져가는 조카와의 인연이 아쉽지 않고 왠지 예정된 것처럼
당연하게 느껴졌다.
아직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국밥집에서의 그 표정과 비명에 이모와 조카의 외마디 인연이 담겨있다는 것을 안다.
그 당시에 국밥도 5000원이었다. 팔팔 끓는 뜨거운 국밥을 조카에게 먹일 때 마음도 따뜻했다.
하지만 조카의 애매한 표정과 경악스러운 이별은
나의 마음을 싸늘하게 식혔다.
5000원을 함부로 쥐어주면 오만 정이 떨어진다.
지금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그 당시 나에게는 5000원이 귀했고
조카에게는 5000원이 흔했을지도 모른다.
만원 권, 오만원을 조카에게 척척 내밀었어도 실망의 무게는 똑같을 것이다.
상대방을 한시적으로 이용하려는 사람에게 5000원도 아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