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겨울
우리는 고 신동엽 시인의 자취를 취재하러
부여를 찾았다.
문화원장 이석호 씨는 시인의 삶을 이야기하며
눈물을 훔치곤 하였다.
부소산성에 세우려던 시비를 지역 유지들이
공산주의자라며 끝내 막았다는 사실 앞에
우리는 역사의 왜곡이 얼마나
비겁한 일인지도 알았다.
안경알이 두꺼운 문화원 직원이 빌려 준
『금강』을 가슴 떨며 처음 읽을 때
강철보다도 단단했던 군사정권의 권력에도 아랑곳없이
힘 있게 써 내려간 갑오년 동학혁명
도도하게 흐르고 있는 민초들의 뜨거운 피에
얼어붙은 금강도 어느새
밑으로부터 천천히 녹아 가고 있음을
깨어지고 있음을 느꼈다.
이 땅에 푸른 죽순 솟아냄을 알았다.
십 년 만에 다시 찾은 시비
시인은 산에 언덕*에 민주의 참꽃을 피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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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동엽 시인의 시, 「산에 언덕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