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호星湖 이익李瀷 선생 소고小考

성호星湖 이익李瀷 선생 소고小考


“따르릉~~, 여보세요.”

“아, 납니다. 신상성. 권 교장님, 오늘 저녁 6시까지 평생학습관 406호로 와 주세요.”

“네, 교수님. 무슨 일이시지요?”

“같이 공부할 일이 있어서 그럽니다. 이따 봐요.” 딸깍.

2017년 봄 교장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는데 신상성 교수님으로부터의 전화였다. 학부모 연수 때 문학 강연을 부탁드려서 얼굴을 뵙고 몇 번 시 원고 청탁을 해 주셔서 문학지에 작품을 보낸 사이였다. 신상성 교수님은 용인대에서 정년 퇴임을 하시고 대학원에서 명예교수로 강의도 하시고, 안산문인협회에서 주관한 수필교실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계신 분이셨다. 목소리가 시원시원하시고 일의 추진력 또한 빠른 분이란 소문은 다른 문인을 통해 귀동냥한 것이었다.


화요일 저녁 퇴근 후 찾아간 평생학습관 4층은 10여 명 정도가 모여 스터디를 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조금 기다리고 있으니 이00 수필가, 손0 소설가, 신00 시인 등이 도착했다. 서울 강연을 마치고 신상성 교수님은 조금 늦게 도착하셨다. 2016년 가을부터 시작한 스터디 모임은 ‘성호 이익 콘텐츠 사업단’이라는 이름으로 계획서가 준비되어 있었다.

조선 후기 실질적인 주자성리학의 중심지는 서울과 경기지역이 아닌 퇴계 학통의 근원지인 영남이고 율곡의 학통을 계승한 우암 송시열 학문의 근원지인 호서이기도 했다. 이들은 수도가 아닌 지방이지만 산림(山林)으로 서울의 관료들을 지배했다. 그렇다고 한다면 경기지역이 주자성리학의 중심지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경기지역의 정체성과 사상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국가 전체의 개혁을 주도하면 민산(民産)을 풍부하게 하고 국가를 안정시키기 위한 실학(實學)에 있는 것이다. 더불어 실학을 기반으로 열려 있는 사고를 통해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이는 개방성에 있다. 이러한 실학과 개방성은 다른 지역에서 드러나지 않은 경기지역만의 독특성이라 말할 수 있다. <경기일보 2017년 2월 13일자 제14면에서>

실학(實學)의 중조(中祖)로 일컬어지는 이익 선생에 대한 모임이기에 더욱 호기심이 생겼다. 특히 83세를 안산에서 살다 가신 성호 이익 선생이기에 그분의 일대기를 소설화한다는 것에 더욱 관심이 갔다. 나는 초임 교사 발령을 1987년 안산교육청에서 받았고 31년을 안산에서 교사, 장학사, 교감, 교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이익 선생에 대해서 공부하는 것이 즐거웠고, 소설, 만화, 애니메이션,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것에 대한 기대에 부풀었다.

성호(星湖)는 1680년 경신환국으로 아버지인 이하진(李夏鎭)이 평안도 운산으로 귀양 간 다음 해인 1681년 10월 18일에 그곳에서 태어났다. 두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1706년에는 둘째 형인 이잠(李潛)이 왕세자(후의 경종)를 해치려는 세력을 제거해야 한다는 강경한 상소를 올렸다가 죽임을 당하는 악운을 겪었다.
그리하여 그는 관직에 나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조상의 선영이 있는 안산의 첨성리(瞻星里)로 내려와 1763년 12월 17일 83세의 일기로 서거할 때까지 평생 학문에 종사하였다. 성호는 국가와 사회의 문제점을 예리한 시각으로 짚어내며 개혁의 방안을 제시하여 경세치용학파의 대표자가 되었고, 100여 권이 넘는 저술을 통해 실학의 비조(鼻祖)로 추앙받고 있다. <이우석, 경기일보 2013년 1월 21일자 제1면 중에서>

그날 이후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저녁 평생학습관 406호실에 모여 자신이 공부해 온 성호와 관련된 자료들을 정리하고 발표하며 소설화 작업을 진행해 나갔다. 또한 소설화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받기 위해서 경기도문화재단을 방문하고, 경기도의원, 안산시의회 의장, 안산시장과의 면담, 성호기념관 방문 등의 활동을 병행해 나갔다. 또한 이종인 수필가는 5월 18일부터 성호 이익 삶의 터전 답사를 안산문화원장이셨던 유천형 선생의 고증을 받으며, 김동건 교수님 등과 직접 다녔다. 나도 무더운 여름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장이 되신 배기동 한양대 교수님을 모시고 함께 안산대학교 뒤편에 있는 성태산성을 답사하는 데 함께 참여해 보았다. 먼 옛날 조선시대 성호 이익 선생이 걸었던 그 길을 걸으며, 현대화 물결에 우리 조상들이 남긴 소중한 문화재를 우리는 너무도 하찮게 방치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박학다식博學多識하셨던 성호 이익 선생은 평생을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안산에 살면서 소박하고 검소한 삶을 실천하면서 백성들의 생활을 개선하고, 사회의 병폐를 개혁하고자 노력하신 분이다. 우리 후학들은 이익 선생의 삶을 배우고 실천해 나가기를 바란다. 아직 마무리 짓지 못한 소설화 작업과 성호 선생 생가인 성호장星湖莊과 성호 호수 복원 등도 계속해 나가야 할 것이다. 안산이 결코 공업 배후도시와 다문화 도시만이 아닌 천년의 역사를 가진 문화와 예술의 도시라는 자부심을 세워야 하는 사명 말이다.

성호이익.jpg 성호 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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