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타이의 눈을 맞서다 –
알타이산맥 초입.
BC 2350년의 동방 하늘은 잿빛 구름으로 뒤덮였고,
바람은 거대한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행렬을 몰아쳤다.
사무랑은 갑옷 위로 쌓이는 눈을 털어내며
단군 앞에 섰다.
“단군님, 눈보라가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면 백성들의 발이 얼어붙기 전에 숙영지를 찾아야 합니다.”
단군은 눈 덮인 산릉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는 흔들림이 없었으나
백성들의 고통을 헤아리는 온기가 담겨 있었다.
“이 산은 우리를 시험하려는 하늘의 장벽이다.
하지만 이 고난을 넘지 못하면
해동의 별은 떠오르지 못하리라.”
사무랑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제가 앞장서서 길을 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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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얼음폭풍의 첫날
행렬은 산 능선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눈은 허리까지 차올랐고,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 속이 얼어붙는 듯했다.
어린아이들이 울음을 터뜨렸고,
젊은 전사들마저 말의 고삐를 움켜쥔 손이 얼어 파랗게 변했다.
그러나 사무랑은 가장 앞에서
날카로운 얼음바람을 온몸으로 받아냈다.
그의 허리에서 해동의 검이 미세하게 빛을 발했다.
그 빛은 겨울 폭풍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게 해주는 신성한 방향처럼 느껴졌다.
백성들은 그 빛을 보고
조용히 희망을 되찾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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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초원 전사들의 선택
눈보라가 거세던 오후,
일행을 따라온 초원 유목 전사들의 우두머리 바라크가 사무랑에게 다가왔다.
“사무랑, 이 산을 넘는 길을 우리는 알고 있다.
하지만 이 폭풍은 평범한 자연현상이 아니다.
산령(山靈)이 분노할 때 나타나는 징조다.”
사무랑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바라크를 바라보았다.
“산령의 분노라…
우리는 침입자가 아니라, 새로운 별을 찾아가는 길손일 뿐이다.”
바라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돕기로 했다.
당신들의 인내와 단군의 뜻을 보았기에.”
바라크는 자신의 전사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들은 말의 짐에서 야크 가죽으로 만든 방풍막,
그리고 고산 지대의 은밀한 계곡길 지도를 꺼냈다.
“이 길을 따르면 폭풍의 빈틈을 지나 다른 능선으로 갈 수 있다.”
단군은 그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며 말했다.
“너희의 도움은 하늘이 보내준 손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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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얼어붙은 계곡의 시험
계곡을 따라가던 중,
앞을 가로막는 깊은 크레바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눈 아래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이 도사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두려움에 움찔했지만
사무랑은 먼저 다가가 검을 뽑아
눈 위에 길을 그리듯 꽂아 넣었다.
해동의 검은 차갑게 빛났고,
얼음벽 사이에서 은은한 공명이 울렸다.
“하늘이 내게 준 임무는 단군님과 백성을 지키는 것.
이 정도로는 발걸음을 멈출 수 없다.”
그는 얼음층의 두께를 파악했고,
로프를 묶어 하나하나 이동하기 시작했다.
백성 모두가 무사히 건너갈 때까지
사무랑은 가장 위험한 가장자리에 서서
떨어질 위험을 홀로 감당했다.
그 모습을 본 바라크는 감탄하며 말했다.
“이런 사내라면…
동쪽 끝의 별을 반드시 찾아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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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고난 속의 희미한 빛
밤이 되자, 눈보라는 잠잠해졌다.
구름 사이로 별빛이 스며들며
겨울산의 깊은 고요가 찾아왔다.
단군은 백성들을 둘러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오늘의 고난은 우리를 더욱 하나로 묶어주었다.
내일, 이 산의 첫 봉우리를 넘어설 것이다.
여러분의 인내는 먼 훗날,
동해의 물결처럼 길이 이어질 것이다.”
백성들의 눈에는 피로 속에서도
희망의 불씨가 살아났다.
사무랑은 멀리 산등성이의 어둠을 응시했다.
그 어둠 너머에
새로운 대륙, 새로운 강, 새로운 하늘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곳이
단군이 말한 해동(海東),
해 뜨는 나라의 기원이 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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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화 마무리
고난의 행군은 그들을 시험했지만
마침내 단군의 일행은 한 걸음 더
새로운 문명의 탄생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
사무랑은 해동의 검을 어루만지며 속삭였다.
“우리의 길은 아직 멀다.
하지만 반드시 도착하리라—
하늘이 허락한 동쪽의 땅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