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가뭄 끝에 단비가 하늘에서 내리고 있습니다. 대지에 빗물이 스며드니까 나무들과 식물들이 좋아라 만세를 부르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이지만 저 먼 동유럽에서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구의 곡창지대에서 밀 수확이 한창일 6월에 전쟁의 포성과 상처로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으니 안타깝기만 합니다.
6월에 피는 밤꽃들이 고속도로나 국도를 지날 때 산마다 피어 있음을 봅니다. 특히 공주지방을 지나다 보면 많은 밤꽃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공주에서 다녔습니다. 그때도 산에 많은 밤나무가 있었습니다. 공주에서 부여로 넘어가는 국도 우금티 고개에는 동학농민운동기념탑이 있습니다. 탐관오리의 악정에서 벗어나고자 전봉준과 동학농민군들이 한양으로 진군하다가 우금티 고개에서 관군과 일본군들에게 패한 역사적인 곳입니다.
밤꽃
권태주
유월은 살아 숨 쉬는 신화
녹음으로 숨차 오르는 고개턱마다
하얗게 피어서 전설 모으고 있는
지천의 꽃들
메마른 하늘 위로 날아간
꽃살덩이
백여 년 깊은 침묵이
이제야 깊은 뿌리를 드리웠다.
누가 황토물 흐르는 저 산언덕
팽겨진 등성이로 피 뿌리며 쓰러져 갔는가.
숱하게 밟힌 군화의 발소리 따라
풀잎 쓸며 숲으로 숲으로 가버린
주검 냄새 가득한 산천
돌아보니
산에는 흰 옷자락 펄럭이며 뛰어오르던
동학농민군 함성이 메아리로 남아
피어서 피어서 자유의 향내만 풍기는
그 꽃
밤나무골의 밤꽃 잔치
하얀 밤꽃들을 보면 흰 옷자락 날리며 죽창 들고 산등성이를 뛰어오르던 동학농민군이 생각나서 쓴 시입니다. 그들은 우금티 고개 어디인가 무덤도 못 만들고 죽어 흙이 되어 6월이면 지천으로 밤나무 꽃을 피우는 것이 아닐까요?
또한 6월이면 6·25 전쟁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갑작스러운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전쟁은 3년에 걸쳐 수백만의 사상자만을 남기고 38선이 휴전선으로 바뀐 채 지금까지 분단국가로 남아 있습니다. 6·25 전쟁 때 본인의 외삼촌도 경찰이었다가 피난 가지 못하고 숨어지내다가 잡혀 서산 양대리 해안가에서 북한군에게 학살당한 아픈 가족사도 있습니다. 지금은 정전협정조차도 맺지 못하고 핵실험을 하려는 북한과 이를 막으려는 자유 진영의 대결이 멈추지 않는 현실입니다. 이 한반도에 남북통일이 되고 참 평화가 오기를 기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