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에 빠진 동화 0490. 이슬을 먹다니!
이슬을 먹다니!
봄!
붙잡고 싶었지만 붙잡을 수 없었어요.
무더운 여름이 기승을 부릴 때 생각난 건 달팽이었어요.
"블랙홀 같은 세상!
길고 느리게 살아야 한다.
달팽이처럼 살아가야 한다."
엄마의 잔소리였어요.
초등학교 6학년 진우는 엄마 잔소리가 싫었어요.
가끔!
잔소리 듣기 싫어 집을 나와 매화나무 앞에 서 있었어요.
봄이 끝나갈 무렵!
매화나무에서 이슬 먹던 달팽이가 보고 싶었어요.
"다름!
서로 다름을 이해하면 살기 쉬울 거야.
엄마 잔소리가 듣기 싫겠지만 널 위해 했을 거야.
엄마도 잔소리하고 싶지 않을 거야.
나를 봐봐!
친구들이 느리다고 잔소리하고 놀리잖아.
그런데
난!
빠르게 사는 것보다 느리게 사는 게 좋아."
이슬 먹던 달팽이가 했던 말이 생각났어요.
진우는 달팽이와 친구가 되었어요.
학교 친구보다 달팽이가 좋았어요.
"이슬만 먹고사는 거야?"
진우가 물었어요.
"아니!
더 많은 것을 먹고살아.
그런데
밤새 고인 이슬은 아침마다 먹어.
기분이 좋아지거든!"
달팽이가 웃으며 말했어요.
"그렇구나!
나도 아침마다 이슬을 먹어 볼까."
"맘대로 해!
그런데
맛은 없을 거야."
진우는 달팽이 만난 뒤부터 이슬을 먹었어요.
맛은 없었어요.
그런데
기분이 상쾌해진 것 같았어요.
봄이 가고 여름이 왔어요.
"매화향기 품은 달팽이는 어디로 갔을까!"
진우는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던 날 달팽이가 보고 싶었어요.
활짝 핀 매화꽃이 아니었어요.
매화향기도 열매도 아니었어요.
봄날!
더듬이를 길게 늘어뜨리고 이슬을 먹던 달팽이었어요.
"나도 너처럼!
길게 기지개를 켜고 싶다.
느리지만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
이슬을 먹고살아도 행복한 너처럼 말이야.
블랙홀이 모든 것을 빨아들이듯!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세상을 붙잡아 둘 수 없으니 희망을 가져야겠지."
더위가 심할수록 달팽이가 보고 싶었어요.
매화나무 위 어딘가에 달팽이가 있을 것만 같았어요.
그런데
매화나무 주위를 둘러봐도 달팽이는 보이지 않았어요.
달팽이!
이슬 먹고 자라던 달팽이는 어디로 갔을까요.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달팽이는 무엇을 하며 살아갈까요.
아침마다
진우는 매화나무 주변을 서성이며 달팽이를 찾았어요.
그런데
달팽이는 보이지 않았어요.
"살아있겠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겠지.
아침마다
이슬을 먹고 살아갈 거야.
보고 싶다!"
진우는 달팽이가 보고 싶었어요.
장마가 시작되었어요.
어젯밤에 비가 많이 내렸어요.
진우는 학교 가는 길에 길가에서 지렁이를 만났어요.
아주 큰 지렁이었어요.
몸을 길게 느려 뜨린 지렁이는 뱀처럼 보였어요.
"어디로 가는 거야!
땅속에서 나오면 죽어.
넌!
그것도 모르는구나."
진우가 한 마디 했어요.
지렁이는 꼼지락거렸어요.
"비켜주세요!"
몸을 길게 늘어뜨린 지렁이가 말했어요.
"그쪽으로 가면 죽는단 말이야!
저쪽으로 가야지.
풀밭으로 들어가야 살 수 있어.
앞으로 가면 차가 다니는 도로란 말이야"
진우는 주저앉아 지렁이를 바라보며 말했어요.
지렁이가 머뭇거렸어요.
"고마워요!
앞으로만 가면 풀밭이 있는 줄 알았어요."
하고 대답한 지렁이는 몸을 비틀었어요.
진우가 가리킨 풀밭을 향했어요.
"조심해!
소나무 가지에 새들이 많아.
널!
노리고 있을 거야."
진우는 지렁이가 걱정되었어요.
새들의 밥이 될 것 같았어요.
"내가 도와줄게!"
하고 말한 진우가 손가락으로 지렁이를 붙잡았어요.
그런데
지렁이가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졌어요.
"미안!
다시 붙잡아볼게."
진우는 두 손으로 지렁이를 붙잡고 일어났어요.
천천히!
풀밭을 향해 걸었어요.
"고마워요!
이름이 뭐예요?"
지렁이가 몸을 움츠리며 물었어요.
"진우!
허진우야."
"달팽이가 말한 친구도 진우라고 했는데!
혹시
매화나무에서 이슬 먹던 달팽이 아세요?"
하고 지렁이가 물었어요.
"달팽이!
매화나무에서 이슬 먹던 달팽이는 내 친구야."
하고 진우가 놀란 표정 지으며 말했어요.
지렁이도 놀랐어요.
풀밭에서 달팽이랑 놀던 생각이 났어요.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에 진우가 있다고 말한 달팽이 말이 맞았어요.
지렁이는 진우를 만날 줄 몰랐어요.
달팽이가 거짓말하는 줄 알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