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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이래요

by 날마다 하루살이

눈이 내리네요. 아침에 일어나 바깥 기운이 좀 우중충하다고 느꼈어요. 어제 아침처럼 비가 내리나 보다.. 하고 아침밥을 눌렀어요. 잠시 방으로 들어와 아이들 깨우고 다시 나와 창밖을 보는데 시야가 온통 하얗네요. 눈이 오고 있었어요. 아깐 인식하지 못했단 사실에 더 놀랐어요.


작은 아이가 따라 나와

"눈이다~!!"를 외치네요.

'그저 눈'과 '눈이닷~!'의 사이에는 오랜 세월의 간극이 느껴지네요.


방바닥 이부자리를 박차고 뛰어나가 눈을 맞이하던 나의 어린 시절도 있었겠죠.

첫눈 오는 날까지 봉숭아 물이 남아 있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는 막연한 믿음을 간직하던 때도 있었고요. 한창 나도 청춘이었을 땐 눈 오는 날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는 간절함도 있었더라구요.

하나둘씩 생각이 나네요.

어느 날엔 "눈이 오니 네 생각이 났어~"라고 이쁘게 써 내려간 친구의 편지가 참 감동으로 전해졌던 날도 있었어요.

눈 오는 날엔 마음과 마음이 만난다던 어느 시인의 이야기처럼 눈이 오면 평범한 일상이 특별해지는 신기한 시절이었네요.


돌아보니 그것은 청춘이었나 봐요.

설레고 따뜻하고 포근하고...

무엇보다 설레는 기분이 가장 떠오르네요.

그때를 생각하니 뭔가 야릇한 기분이 들어요.


신혼 때 그리던 로망을 남편에게 얘기한 적이 있어요. 집이 너무 추워서 힘들었던 그 시절이었어요.


"서방.. 난 꿈꾸는 행복한 모습이 있는데 뭐냐면...

아주 추운 겨울날이야.

밖에는 눈이 펑펑 내리고 있어.

그 장면을 따뜻한 집안에서 통유리창을 통해서 바깥의 눈 내리는 모습을 바라보는 거야. 집안에는 잔잔한 음악도 흐르겠지. 여기서 중요한 건 집안이 아주 따뜻하다는 거야. 그 장면을 서방이 날 뒤에서 포근히 감싸 안고는 같이 바라보는 거지."


오래된 주택인 우리 집은 겨울나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몇 해 전에 도시가스가 들어오고 나서는 보일러도 부담 없이 틀 수 있어서 좀 상황이 나아졌지만 그땐 그 겨울이 너무 길었어요.


나의 청춘.. 그 시절엔 낭만이었던 눈이 나이 든 지금은 "그냥 눈"이 되어버렸네요. 오늘의 날씨 정보창에 뜨는 두세 가지 안내 사항 중 하나일 뿐인 눈이 되었어요. 아침 운동을 나갈지 말지 고민하게 하는 눈이더라구요. 오늘 내리는 눈은 변덕을 부리네요. 조용히 수직으로 내려 고요한 기분이 들게 하다가 순식간에 거세진 바람에 사선으로 날리기도 하구요. 오늘 눈은 종잡을 수 없는 눈이에요.


그래도 우산을 받쳐 들고 오전 루틴을 실행하고 왔어요. 그 눈보라를 뚫고 다녀와서인지 오늘은 좀 더 뿌듯한 기분이 들어요. 다행히 많이 춥진 않았어요. 아직은 겨울바람에 목도리에 털모자까지 챙겨야 할 정도는 아니니 다행이었어요. 아침바람이 더 차갑게 변하면 아침마다 나가는 운동을 고민하게 되겠죠. 많이 고민하지 않고 가뿐히 겨울을 지날 수 있길 바랍니다.

전혀 낭만적이지 않은 눈보라 맞은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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