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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하루살이 Jul 25. 2024

일기장을 사던 날

2011. 8. 23.

드디어 자그마한 일기장을 하나 샀다. 하지만 몇 자 적어 보려는 뜻과 달리 이걸 고르느라 찾아다닌 문방구 안에서 너무도 많은 에너지를 써버린 탓으로 하루가 지난 오늘에서야 몇 자 적어본다.

이걸 집었다.. 저걸 집었다.. 휴우~ 겨우 찾아낸 것이긴 하지만 100% 맘에 드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첫 번째 문구점에서 최종 낙점되었던 걸 그냥 집어 들고 오지 않은 것은 천만다행이다.

뭐 특별하고 대단한 일이라도 있느냐겠지만 내겐 좀 그런 일이 기 때문이다. 하루라도 먼저 생생한 내 감정을 옮겨놓고 싶었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아 뜻대로 되지 않았다.

맨 처음 그 감격(!)은 어느 정도 사그라들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솔직하고 진실된 마음을 적어놓으려 한다.

                                                -  2011. 8. 23 -


십여 년 만에 일기장을 펼쳤을 때 그때의 그 마음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와 감격하는 날 느꼈다. 온몸의 세포가 뭔지 모를 자극에 흥분하고 있었다. 얼마나 기다렸던 순간인가.


첫 유산 뒤 찾은 대학 병원에서  난 다낭성 난소 증후군이란 소견을 들었고 그래서 임신이 어렵다고 했다. 일단 나팔관이 막혔는지 먼저 검사를 해 보았고 다행히 이상 소견은 없었다.  자연 임신을 기대하긴 어려운 소견을 갖고 있으니 인공수정이란 방법을 써보아야 한단다.  다행히 시험관 시술을 해야 할 정도는 아니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우리는 총 6번인공수정을 했고 그 사이에 두 번의 유산을 추가로 경험했다.  지금은 그 숫자들 만이 남아 있는 상태지만 그 사이에 겪었던 맘고생을 어찌 다 표현할 수 있을까. 내 전재산을 어서라도 병원에 바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내게 아기만 찾아온다면.


우린 그 과정을 잘 버텨왔고 거의 포기하려던 순간 아니 어쩜 포기했을 수도 있던  그 순간에 천사의 미소가 우리에게도 비쳤다. 내 앞엔 새로운 일이 곧 펼쳐질 것이란 기대와 환호가 있던 시절이다. 내 인생 최고로 힘들었지만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다.


구구절절 감정을 나열하여 적지 않은 것은 꼭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리라. 나 혼자 간직할 이야기였으니. 지금 읽어보니 기억나는 것도 잊힌 것도 있어서 내가 브런치를 좀 더 빨리 만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사실 십여 년 전엔 브런치의 존재조차 없었겠지만.


"드디어"란 말로 시작했다. 얼마나 기다렸던 순간인지 알 수 있었다. 임신 확인 후부터 가슴에서 터져 나오는 모든 감정들을 어딘가에 쏟아내고 싶은 충동이 있었던 기억이 있다. 하루라도 빨리! 나의 감정이 더 생생할 때!

작은 일기장을 하나 사고 싶었다. 그냥 일기장이 아닌 내 아이와의 첫 만남을 통해 터져 나오는 나의 생생한 감정을 적어낼 일기장. 아기만큼 예쁘고 앙증맞은 디자인을 고르고 싶었다. 그 당시 내 기분을 적절히 표현해 줄 수 있는 디자인이 필요했다. 아무거나 집어 들고 나오고 싶지 않았다. 고심하여 고르느라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 동네 문방구를 다녀와 바로 펜을 들지 못할 정도로 체력이 떨어졌다.

바닥에 계속 눕고만 싶었던 그때. 갓 태어난 조카를 안아줄 수조차 없을 만큼 난 체력이 그 당시 바닥이었다. 두어 곳 문방구 탐방이 뭐 힘들다고... 몇 자 적는 거 조차 다음 날로 또 미뤘을까. 그때의 힘겨움이 잊고 있던 내 가슴을 자극했다. 그 뒤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또 다음장을 열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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