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열고 맨 앞장에 네게 쓴 짧은 메모를 읽기 전까지잊고 있었다. 정말로 까마득히 잊고 있었더라.
어찌 그날들을 잊을 수 있어?라고 하겠지만살다 보니 잊히기도 하더라.사는 것이 매 순간 만만하지 않았어.
중3 때 처음 생리를 하던 날이 생각난다. 갑자기 뜻 모를 허리 통증으로 전날 조퇴를 하고 왔지. 중3이 될 때까지 처음 조퇴를 한 날이다. 묘한 기분이 들면서 야릇한 통증이었다. 다음날 아침 난 첫 경험(초경이라는 것)을 하게 된 거야. '생리'라는 거지. 아기를 낳을 준비를 하는 것이란다.
처음 생리를 시작했을 때처럼 어떤 의도에 의해서가 아니라 적정한 시기가 되면 저절로몸의 변화가 시작되고 그 변화에 발맞춰 또 다른 변화가 이어지는 것인 줄 알았어. 결혼하여 임신을 하면아기는 자연스레 잘 자라는 줄 알았지. 하지만 우린처음심장소리를 들은 후 갔던 그 행복했던 진료 시간에 첫아기를잃게된 소식을 듣게 된 거야.
그러곤 더 이상 새로운 소식은 찾아오지 않았다.괜찮은 척, 잘 견디는 척했지만 사실은 너무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다.특히 아빠가 간절히 원하던 순간이기에 미안함까지 더해져 불편한 시간들이 지나갔다. 간절히 무언가를 원한다는 것은 기대와 희망이라기보다 어쩌면 다른 이름의 슬픔인 걸 알게 되었다.
드라마를 보면 넘어지고 맞고 쓰러지고 해도 여주인공에게 "아기는 괜찮습니다~"란 대사를 병원에서는 들려주더라. 그런 장면이라도 보는 날엔
'왜 나는... 나는... 왜.. 왜... 난 그냥 조용히 있었는데...'
라며 어느새 흐른 눈물을 훔쳐내야 했었다.아기랑 연관된 무슨 생각이라도 하면 저절로 눈물이 흐르는 것이었다. 지나는 길에서 임산부라도 보게 되면 부러움인지 질투심인지 종잡을 수 없는 감정에 애써 외면하고 맘 속으로 슬픈 대사를 중얼거리던 시절도 있었지.반복되는 일들이었지만 그 상실의 감정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았다.
너를 만나기 전 우리와 널 만난이후의 우린 이렇게 달라졌어. 널 만나기 전 치열했고 두렵고 막막했던 시간과 너의 존재만으로도 행복했던 그 이후의 시간.
너는 우리에게 정말 보물이란다.
그 소중했던 날들이 궁금해져다시 펼쳐본 일기장이다.저 메모를 보는 순간 '아~ 내게도 진심이었던 시절이 있었지'라며 그 시절을 다시 느껴보고 싶어졌다. 책장 한쪽에 고이 모셔두기만 했던 일기장을 열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