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가 보이는 집에 산다. 큰 아이가 입학해 학교를 다니다 보니 집 앞이 학교인 것이 너무 좋았다. 등교도 손잡고 시켜주고 학교 마칠 시간이 되면 무슨 애인이라도 만나러 가는 양 들떠서 아이를 데리러 교문 앞에서 서성였다. 거의 매일 하루도 놓치지 않고 아이를 데리러 가다 보니 큰아이의 친구들 얼굴도 많이 익힐 수 있었다. 내 손을 잡고 나오는 큰 아이를 같이 봤으니 내가 모르는 친구들도 날 알아보고는
"○○이 엄마다! 안녕하세요~"
라며 먼저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그럼 이름을 물어보고 난 고마운 마음을 표현했다.
큰 아이가 고학년이 되자 작은 아이가 입학하게 되어 나의 루틴은 지속되었다. 학교가 코앞인데도 데려다주었다. 그냥 그렇게 하는 게 즐거웠다. 어느 순간부터는 아이들만 둘이서 나란히 등교하게 되었지만 작은 아이 하교는 데리러 가려고 노력했다. 이제는 작은 아이의 친구들이 먼저 인사해 준다. 고마운 일이다.
보통의 엄마들은 맞벌이로 아이들과 나처럼 시간을 보낼 수는 없기에 친구들에겐 우리가 동경의 대상일 수도 있겠다.
나이가 어릴수록 더 크게 필요한 엄마의 자리. 작은 아이 1학년때는 단짝 친구가 "○○이는 엄마가 맨날 데리러 와서 좋겠다"라고 하는 말을 듣기도 했었다. 내 아이들이 부러움의 대상?
우리 집에선 폰 제한도 없다. 큰아이 어릴 적에 조율을 해보려다 부작용이 더 크게 느껴져 그냥 자유롭게 활용하도록 두었다. 그랬더니 폰으로 여러 가지를 배우기에 이르렀다. 작은 아이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데 어떻게 알아냈는지 여러 활동하는 모습을 보았다. 순기능만 받아들이기로 했다.
폰 사용으로 아이가 성적이 뒤처지거나 제 할 일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일이 아직은 없으니 그대로 그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집으로 공부하러 오는 작은 아이의 친구(3학년)는 요즘 "○○이 부럽다~ 매일 게임만 하고!"라는 말을 공부하는 시간마다 내게 늘어놓는다. 자기는 하루에 1시간 밖에 못한다고...
뭐가 옳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아직까지는 초등학생이고 원하는 대로 들어주고 싶다. 자신이 수행해야 할 과제를 아직까지는 잘 수행하고 특별한 문제가 없어 보여 그냥 지켜보는 중이다.
부부 사이에도 의견이 다르다면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다행히 우리 부부는 같은 생각을 바탕에 두고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공부는 원할 때 스스로 해야 효과가 나타나는 것. 같은 의견이 아니었다면 큰 다툼이 있었을 수도 있는 일이다.
모든 순간에는 선택을 해야 한다. 우리 부부는 이 쪽을 선택했다. 다른 친구들의 부러움이 되는 대상이 되기로. 아이들이 느끼는 행복감을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지금은 행복하기로 하자. 언제부터는 스스로 조절하며 폰을 사용하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갖고 있다. 가끔 흔들릴 때도 있지만 아직은 괜찮은 거 같다. 믿는 만큼 자란다고 하지 않던가. 난 내 아이들을 믿어보기로 했고, 우리 아이들이 행복하길 바란다.
초등학교 저학년에게는 엄마와 함께하는 시간이 많을수록 좋을 것이고 우리도 어릴 적 맘껏 TV를 보았듯이 요 녀석들에게도 즐거운 놀이 문화가 있어야 할 것이다. 다만 시력에 문제가 생기지 않길 바랄 뿐이다. 원하는 대로 해주고 싶다. 아직까지 우리 집은 괜찮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