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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노송은 운무 가득 품어안고

은티마을 ~ 이우릿재, 영혼잃은 미아처럼

by 플랫폼

올해도 어김없이 다가온 시월의 마지막날. 가을은 긴긴 기다림이자 또한 애잔한 그리움이다. 자연의 시계처럼 플랫폼도 나만의 고유의 속도로 그 가을의 심장을 향해 달리는 중. 모처럼 설악의 품에 고히 안겨보고 싶었다. 어쩌면 가을 낙엽처럼 나도 마음속의 응어리를 모두 비워내 버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오색 단풍이 짙게 물들어 있을 가을 설악의 모습이 자꾸만 눈에 아른거려 점점 정신이 혼미해져 가던 때.


공룡의 등짝에 살포시 걸쳐 앉아 빨리 도망가려 재촉하는 가을의 모습들을 진정시키고 싶었는데. 단지 대청봉 정상에 올라 오색찬란한 일출의 모습을 두 눈에 넣어보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거기까지. 결국, 계획했던 꿈들이 사정없이 내동댕이 쳐져버린 상황. 비예보 때문이었다. 아니 내면 깊숙이 이는 움츠려드는 자신감 때문이었을 수도. 설계변경은 어느새 내 삶에 일상 이상이 되어 버린지 오래다.


그렇게 계절의 수레바뀌를 붙잡으려 이우릿재에 도착했던건 꽤이른 아침 7시. 설악 대신 마루금의 심정이었다. 고갯마루 후미진곳에 애마를 파킹하고 서둘러 택시를 이용 은티마을로 향했다. 택시비는 고작 7천원. 정말 참한 가격이다. 택시 기사분께서 친절하게 위쪽까지 태워다 주신다는 걸 한사코 마다하고 난, 그냥 두발로 걷는걸 택했다. 행복한 하루 되시라는 인사도 잊지않고 드디어 마루금으로 향한다.


이른 아침부터 바람 살랑살랑 불어오는 전형적 시골마을은 여전히 곰탕하늘. 언제 쏱아져도 전혀 이상할것같지 않은 하늘을 벗삼아 걸음을 서둘렀다. 어젯밤 고흐라도 다녀갔는지 물감으로 아름답게 붉게 물들여진 감나무 이파리들을 감상하며 걷는다. 금새 둥근무늬병원균의 짓이란걸 알 수 있었다. 조금더 올랐더니 소리쟁이 이파리에도, 뽕나무 잎새에도 구멍들이 송송 뚫려있다. 주인공은 좀남색잎벌레미국흰불나방 애벌레들.


한순간도 한눈을 팔수가 없다. 곤충들도 이미 번데기가 되어 모두 땅속으로 들어가 버린후의 황량함들. 함박꽃처럼 화들짝 미소짓는 만수국 꽃망울들의 호위를 받아가며 룰루랄라 휘파람까지 불어가며 점점더 깊은 숲속으로 들어간다. 마침 몹시 쭈글쭈글해진 단풍잎들이 녹슨 더듬이에 포착된다. 가을을 잡아보기위한 마지막 안간힘들. 가을을 아쉬워 한건 만수국과 나만이 아니었다. 진달래도. 구절초도. 쑥부쟁이도 일심동체.


한시간 30여분 유유히 걸어주었더니 2주전 지나갔던 마루금 접속로와 마주한다. 역사의 유구한 흔적 가득한 희양산 성터. 고구려 백제 신라의 치열했던 영토싸움의 그 현장이다. 마치 그 영령들이 금새라도 툭 튀어 나올것같은 분위기가 연출되고. 세월의 무상함에 무너져 내리고 뼈만 앙상하게 남은 몰골을 한채 남아있는 역사의 희미한 흔적들을 뒤로한채 난 또 걷는다.


그 침묵속에서 몇 천년을 아무말이 없이 지켜온 마루금과 숲들. 바람에 깎이고 폭풍우에 씻기고 잠긴 흔적들이 수두룩. 그렇게 가을의 심장을 따라 걷는길은 그져 무념무상이다. 가려는자와 아쉬움에 잡으려는 자 사이에 마치 영혼 잃은 미아처럼 이리저리 길을 서성거리기를 여러번. 그 애매모호한 자리에서도 마루금은 말없이 균형을 잡아내고 있었다. 나에겐 한낱 그리움의 길이자 영혼의 길.

긴장의 끈을 풀고 조금 더 들어갔다. 마침 벌레 잔뜩 먹은 뽕나무 잎새가 바람에 심하게 출렁거린다. 벌레들에게 살보시한 살신성인의 자세가 깃들어있는 나목들이 그곳에 서있었다. 이제 곧 떨어져 내리겠지만. 아름답고 그져 사랑스러웠다. 어쩌면 과거 내 삶의 모습과 그리도 닮은것인지. 무너지지 않으려 애쓰는 자아와 제 한몸 바쳐 뭇생명들 먹여 살리는 길을 택한 나무들의 의연함들. 나무의 길과 사람의 길은 뭐가 다를까.


그렇게 두시간여 무심히 걷다보니 마치 삼신산이나 석가산처럼 돌로 쌓아놓은 의자하나 보였다. 그 모습 정갈했고 고요했다. 갑자기 송광사 불일암 법정스님의 일명 빠삐용의 의자가 생각났다. 배낭을 풀고 살포시 앉는다. 엉덩이에 느껴지는 차가운 감촉과 느낌. 순간 그 스님의 무소유가 생각났다. 나도 그 스님처럼 의연해질 수 있을까. 그분처럼 숭고한 가치에 내 온몸을 던져버릴수 있는 것일까.


무수한 버림과 채움을 통해서 무소유라는 가치를 마음속에 체화시킨 법정스님을 회고하며 걸었다. 길섶에 철이 너무 일찍 들어버린듯한 진달래 한송이가 흐드러지게 피어 가을 바람에 스산하게 흔들거렸다. 지구변화에 의해 온난화과정을 몸소 체험하며 한걸음 한걸음 옮긴다. 인간들이 화석연료를 무분별하게 사용해 오존층이 파괴되고 북극동토가 녹아내린 바로 생리교란의 현장이다. 바람이 제법 불어댔다.


운무로 뒤덮힌 이만봉. 아스라했다. 바람타고 어디선가 불경소리 희미하게 들려온다. 사방이 운무로 뒤덮힌 마루금길. 내 영혼은 이미 그 소리의 진원지를 향해 찾아나서는 중. 지금 마루금의 모습이 흔들리는 내 마음과 같다. 스산한 바람은 운무들을 휘감고 괴산땅을 넘었다 문경땅을 넘었다 마구마구 출렁대고 있었다. 마치 어릿광대가 춤을 추듯. 그 운무따라 난 그져 걷고 또 걷는다.


나무들이 떨어뜨린 보스락거리는 낙엽들을 밟으며. 나무들은 버려야할것이 무엇인지. 버려야 할때가 언제인지를 정확히 알고 있는 선지자처럼 느껴졌다. 어떻게 알았을까. 버림으로서 자신이 빛나고 존재가치가 더한다는 걸. 이렇게 점점 무르익어가는 가을. 가장 아름답게 불타고 있는 숲들. 어쩌면 제삶의 모든 이유였을 이파리들을 과감히 떨쳐내 버리고 삶의 여유마져 물씬 풍겨나는 숲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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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일부였을 잎새들을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무들은 진정 생의 절정기에 이르지 않았을까. 항상 정확한 자연의 시계. 한치의 오차마져도 용납하지 않는 살신성인의 자세. 이처럼 가장 아름다운 색으로 물드는 가을. 불현듯 내 마음의 현주소가 궁금했다. 어쩌면 추운 겨울을 대비하는 치열한 월동준비처럼. 유연함과 강인함. 그렇게 신비가득한 자연의 지혜를 닮고 싶어졌다.


어떤 나무는 잎을 다 내려놓고 겨울을 먼저 맞이했고 어떤 나무는 말못할 무슨 미련이라도 남은것인지. 아직 연녹색의 빛을 악착같이 붙잡고 있는 중. 누군가는 빨리 비움을 통해서 삶을 준비하고 또 누군가는 오래 붙잡아둠으로서 삶을 더욱 빛나게 영글어가는 지혜. 오색으로 물든 단풍도, 쓸쓸히 다 비워내버린 나무들도 모두 아름답다는 것을 이제사 겨우 깨닫는다. 산에 오른다는 건 뭘까. 가을산을 걷는다는 건 무얼 의미하는 걸까.


한편의 대하드라마의 시작과 또 끝을 보는것처럼 아슬아슬하다. 새들의 날개짓처럼 매번 위태롭고. 이제 막 헤엄치기를 시작하는 애기 물고기처럼 연약하고 이제 막 노젓기를 시작하는 처녀뱃사공처럼 위험천만한 외줄타기. 머언 들판을 바라본다. 추수가 끝난 들판은 황량했다. 가을준비에 한창인 박쥐나무. 이파리속에 있는 영양분을 회수하려 갈무리를 진행하는 중. 내년봄 새잎을 틔우기위한 강한 몸부림이 엿보인다.


이런저런 생각에 휩싸여 걷다보니 사다리재. 그 고개에 앉아 잠시 쉬어감을 택한다. 그곳을 지키는 이정표가 내 마음을 마구마구 흔들어댄다. 옛적엔 이곳도 많은 사람 오갔을리라. 때로는 나뭇꾼들이. 때로는 약초꾼들이. 때로는 피난민들이 오갔을 수많은 애환들. 그렇게 깊은 사연 베인곳이 어디 마루금길 고갯마루 뿐일까. 붉게 영근 산앵도나무 열매속에도. 오색으로 물든 단풍나무 이파리속에도.


심지어는 길섶 어느 모롱이에서 피어난 이름없는 풀보기 하나에도. 말못할 사연들 숨겨져 있으리라. 때마침 새색시 입술처럼 빨갛게 물든 산앵도나무 열매가 마음 급한 나를 유혹한다. 잠시 쉬었다 가라는 것일까. 바람이 점점 거세어진다. 점점 곰탕으로 물들어가는 하늘. 난, 좀더 서둘러야 했다. 이 심산유곡에 나혼자라니. 자나가는 길손하나 보이지 않는 길목에 나 혼자뿐이라니.


연륜이 물씬 느껴지는 신갈나무 한그루 보였다. 이파리를 모두 떨어뜨려 버린채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몰골. 쳐다보니 쭈글어진 잎새하나가 덩그러니 바람에 흩들리고 있었다. 아쉬움일까. 가을을 잡고 싶어 안달하는 걸까. 산과 구름과 바람과 햇빛들은 대간 숲을 풍성하게 키워냈다. 그야말로 몽환적이다. 마음을 내려놓을 만큼 지나는 이들의 마음을 따스하게 품어주는 이 산들의 따스함이 그대로 느껴졌다.

아무렇치 않던 두다리에 점점 힘이 없어진다걸 느꼈을땐 마침 백화산을 지나고 있을때였다. 겨우 발걸음을 떼고 있다 생각되었을 뿐. 내 의지대로 걷는건 아니었다. 어디선가에서 들려오는 빗소리. 안돼! 아직 갈길이 멀기만 한데. 드디어 올것이 오고 말았다. 백화산은 그냥 아무말이 없었다. 정상석은 차가운 바람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는 중. 지나가는 대간러의 애잔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짖굳은 하늘을 보며 원망에 찬 한숨을 길게 내뿜는다. 내 가는길을 막고 있는 빨갛게 영근 참빗살나무 한그루. 아름다웠다. 이 아름다움 무엇에 비할까. 신비 가득했다. 이 신비로움을 누구에게 전할까. 하지만 난, 지금 누구와 비교할수도 누군가에게 전할 상황도 아니었다. 오직 비를 피해서 이우릿재에 빨리 도착해야만 한다는 생각밖에. 주변 공기는 점점 차가워지고 바윗길은 제법 물기들로 미끄로웠다.


점점 스틱에 의지했고 태고의 신비 간직한 나무 한그루와 마주했다. 돌배나무로 보였다. 세월의 무상함에 근육질의 줄기 한쪽이 완전히 떨어져 나가버린채 묘한 몰골로 서있었다. 얼마나 버텼을까. 얼마나 아팠을까. 억척스럽게 견뎌준 이 나무에게 연민의 정마져 스멀스멀 피어나기 시작한다. 비가 점점 거세어진다. 송광사 불일암 채마밭 한켠에 심겨져있는 파초위에 떨어지는 빗소리처럼 처연하게 들려왔다.


점점더 우아하고 강렬하게 내 마음 깊숙한 곳까지 파고든다. 빗소리에 낙엽들도 놀라 이리저리 뒤척인다. 놀라웠다. 이 상황에 빗소리가 이토록 내 심금을 울릴 수 있다니. 내 머릿속을 뒤집어 놓을 수가 있다니. 추적추적 내려주는 빗소리에 덩달아 내 마음까지 바빠진다. 누군가 말했던가. 사는일은 끊임없이 우산을 펼쳤다 접었다를 반복하는 일이라고.


그리고 이 가을비를 혼자 맞으며 걸어갈줄 안다면 인생의 진정한 참맛을 아는 사람일 거라고. 난, 그 비를 맞고 마치 음유시인이나 되는것처럼 바삭바삭 낙엽소리 들으며 홀연히 걷고 있는 중. 걸음걸이가 조금씩 빨라진다. 늦가을 비때문에. 바람때문에. 갑자기 마루금길에도 적막함과 고요함이 엄습한다. 이어지는 스산한 빗소리와 바람소리. 새소리들이 겹쳐 묘한 하모니를 연출한다.


마루금길. 비와 바람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누가 왔고 누가 떠나 왔는지를. 가을 비멍에 점점더 빠져든다. 졸참나무 군락이 스산스럽게 출렁거린다. 점점 짙어지는 바람과 빗소리. 혹병에 걸려 투병중인 아름드리 졸참나무 한그루도 나타났다 금새 사라졌다. 광활했다. 바닥엔 수북히 내려앉아 있는 가을의 기운들. 나뭇잎들도 바닥으로 낙하해 흙으로 환원되고 물질순환에 기여하고 있는 자연의 신비로움에 그져 감탄했다.


모든게 한줌의 흙으로 변하는 과정. 까맣게 영근 짝자래나무도. 바람에 휘청이는 낙엽송도. 나타났다 어느생 사라졌다. 모두 이곳의 주인공들. 천상화원은 바로 마루금위에 있었다. 그렇게 찾아 헤매이던 파라다이스. 행복이 머무는 이곳을 난 감히 하늘의 정원이라 칭하고 싶어졌다. 낙엽송들도 바람에 심하게 출렁거리기를 여러번. 바람에 비벼대고 부딪치는 소리 요란스럽다.


때마침 괴이한 소리가 숲속에 깊숙이 울려 퍼졌다.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건 빗소리요 사람을 아름답게 만드는건 우산이라고 모추기경님께서 말하셨는데. 이제 비로소 그말 믿어야 할것 같았다. 비멀미에도 취하고. 단풍비에도 마음껏 빠져든다. 혼자여도 좋았다. 어짜피 삶이란 원래 홀로인 것. 홀로왔다가 홀로 조용히 사라지면 그만. 그렇게 혼자인듯 아닌듯 있다가면 되었다. 곁에 단풍도 있고 속삭이는 바람도 있고.

거기다가 가을의 기운까지. 노랗게 물들어 땅바닥으로 사뿐히 떨어져 내리는 가을 흔적들을 벗삼아 클라이막스를 향해 걷는다. 때마침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에 낙엽 한장 몸 뒤집으며 땅으로 착지하는 모습이 너무도 사랑스럽다. 새의 깃털처럼. 낯설고 두렵고. 생전 처음보는 것처럼 가슴이 떨리기까지. 설레임반 두려움반. 그리고 산들산들 하늘거리는 억새들.


얼마남지 않은 가을에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억척스럽고 태고적 신비까지 물씬 느껴진다. 결국, 혼자라 생각했지만 이 억새들도 나도 진정 혼자가 아니었다. 그렇게 넋을 잃고 걷다보니 드디어 조봉. 이젠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이렇게 끝은 없어졌다가도 감쪽같이 나타나 날 시험에 들게한다. 정말 멀지않은 이우릿재. 꿈이 현실이되듯 심장마져 두근두근 떨려온다.


물박달나무와 졸참나무가 서로 몸을 비비며 둥숙 중이었다. 사랑이 너무 진한것일까. 난, 두손 고히모아 빌어 주었다. 천년만년 그리 살아만 달라고. 밟는 낙엽소리와 내 배낭뒤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묘하게 일치되어 울려 퍼진다. 일정한 리듬따라. 운율따라. 숲속 깊은곳까지 스며든다. 비에 젖은 달맞이꽃 한송이가 마치 패잔병처럼 어깨 축늘어진 나를 반겨 주었다. 고왔다. 물분자들의 마법에 함께 취하는 듯.


가을의 중심에 선 감국들도 흔들거린다. 빗줄기에 몸뒤집는 모습이 내 모습과 너무도 닮아보인다. 이토록 너무도 정확한 계절의 시계. 어느새 겨울의 언저리에 들어선 계절의 길목. 꽃비에 젖어 마음 심하게 요동치고 아려올때가 바로 엊그제 같았는데. 걷다보니. 무심으로 한발두발 옮기다 보니 이우릿재였다. 만신창이가 된 육신. 어느새 내 볼가엔 한가닥 미소가 아른거린다. 홀로걷기. 비멍. 바람멍. 심장떨림이 온몸으로 전해졌다.


이우릿재. 산과 산이 만나는 곳이었다. 마음과 마음이 만나고 문경 고을 소식들이 괴산고을로 산산이 부셔지는 곳이기도. 굽이치듯 흐르던 산줄기가 잠시 숨을 고르고 객들이 쉬어가던 고갯마루엔 너무도 고요했다. 옛적 그 영화들은 다 어디로 가버리고 적막만이 엄습했다. 멀리 연풍땅이 아스라히 보였다 또다시 운무에 뒤덮혔다. 그리고 새로 뚫린 신작로가 아스라이 보여지고.


옛적 굽이굽이 돌아가던 길이 일직선으로 뚫렸다. 늘 햇빛에 의해 다지인되던 숲들의 모습은 어디로 가버린 걸까. 포크레인에 의해 디자인이 바뀌어버린 그 산의 일부가 어렴풋이 보였다. 마음 아파졌다. 전국 도처에 잘못된 성형후유증으로 몸살중인 마루금의 현실을 보며 . 금산은 어떤가. 자병산은 또 어떤가. 언제쯤 개발이란는 미명아래 빠름만을 고집하는 정책들이 멈추게 될까.


느림의 미학은 어디로 사라져 버린것일까. 세상이 정지하듯 구름도 운무도 멈춰버린듯 그렇게 외롭게 보였다.

이우릿재가 품고있는 역사의 흔적들을 한가닥 찾아보려 했지만 경적소리만 울리며 쌩쌩달리는 자동차소리만이 요란했다. 플랫폼의 홀로걷는 대간여행은 또 계속된다. 혼자여도 좋았고 충분히 의미있었다. 가을 노송은 운무가득 품어안고 마루금길 걷는 이방인을 위해 외롭지 않게 지켜내고 있었다.


계속해서, 세속이 떠난 산 편이 발행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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