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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낙엽소리 들으며 걷는 길

버리미기재 ~ 희양산 ~ 은티마을

by 플랫폼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
모두에게 삼가 명복을 빔니다.
~~~
그리고
상심속에서 힘들어하고 있을 모든 유가족들에게도
악몽에서 속히 헤어나올 수 있기를
간절히 빈다.

대간 마루금을 걷는 이 일동


조금 미안해졌다. 아직 빛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꽃도 피워보기도 전인데. 159명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가버린 이태원 참사. 당시엔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인재로 보였다. 대다수 양심있는 국민들도, 대부분의 외신들도 그리 생각했다. 하지만 일부 몰지각한 위정자들은 그져 하찮은 일로 치부하기에 바빴다. 게다가 보수 집권 여당은 아예 막무가내로 일관했다. 내 탓은 일도 없고 온통 윗사람 아웅하기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선거때 목놓아 외쳤던 공정과 상식은 다 어디로 가버린걸까. 갑자기 기억 상실증이라도 걸려버린 걸까. 심지어 힘으로 욱박지르려는 권모술수까지 난무했다. 세월호 참사의 악몽이 아직 미쳐 아물기도 전인데. 도대체 어떻게 해야 그런 악몽이 재발되지 않을까. 또다시 일어나지 않는다고 어느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집권여당은 누구하나 책임지려하는 자세조차 보이지 않았다. 완벽한 책임회피며 탁구치듯 핑퐁게임만.


오늘 서울광장에서 일주년 추도식이 열릴 예정이란다. 거기에 진정한 국가는 없었다. 주최는 오롯이 민주시민들의 몫. 제발 위정자들은 정치싸움만 운운하지 말고 영정앞에 엄숙히 고개숙여 마음 아픈척. 공감하는 척이라도 해주길 바란다. 꽃 몇 송이 안겨드리고 진심어린 사과와 따뜻한 위로의 말씀 또한 정중히 부탁드린다. 내 가족, 내 친지이듯 가슴 아파해 주실것도. 그게 진정한 집권여당 포함 위정자들의 자세이다.



못다 핀 꽃
부디 하늘나라에서라도 아름답게 피워주길.


착잡한 심경 가슴에 꼬옥 껴안은 채 오늘도 리무진 버스에 올랐다. 마음 천근만근 무겁다. 남남갈등이 점점 심각해지는 현실. 이 상황을 어떻게 봐야할까. 어찌 풀어내야 할까. 우리에게 쾌도난마란 없는 것인가. 눈을 감았지만 잠이 올리 없었다. 더욱 초롱해지고 뚜렸해지기만 하는 전두엽. 그러는 중에도 하늘엔 별이 총총 빛나고 있었다. 참석하지 못한 미안한 마음을 안고 그런 저런 생각에 취해 두시간여 달려 도착한 버리미기재.


버리미기재의 새벽은 그져 무표정했고 분위기 또한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밤의 적막과 고요가 지배하는 곳.웬지 어색하고 생소하고 어눌하게만 느껴졌다. 그런데도 어스름속에 스미듯 다가오는 이 고개는 나와 대간러들을 반갑게 맞아 주었다. 리무진버스의 그림자가 달빛에 길게 늘어져 있다 금새 사라졌다. 그위로 대간러들의 그림자만이 가득했다.


만남과 헤어짐. 수많은 삶들이 이곳을 통과한다는 사실에도 안도했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잠시 머물렀다가 사라졌다가. 범법자를 양산하는 철조망은 여전히 우릴 감시하는 현실. 우린 이윽고 철조망 반대편으로 향했다. 바삭바삭 들려오는 낙엽소리 들으며 걷는다. 가을소리 정겹다. 난 언제부터 낙엽소리가 좋아지게 되었던 것인지. 구르몽의 시까지 급소환해 본다. 시몬아 넌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보드득 보드득 소리 요란하다. 마치 한겨울 눈밭을 걷는 느낌이다. 누구에게 살보시라도 한 것인지 구멍송송 뚫려있는 낙엽들 즈려밟고 걷는다. 곰팡이에게 오염된 낙엽들까지도 땅바닥에 널부려져 대간러들의 마음을 애타게 하고 있었다. 낙엽들 스스로 분해되어 새 생명 잉태께하는 자양분이 되려하는 것이겠지. 대지의 심장을 뛰게하고 뭇생명들 깨어나게하는 초능력의 소유자처럼. 삶과 죽음은 어차피 하나인 것이니.


배낭에 무거운 쇳조각 몇 개 짊어지고 걷는다. 아직도 걸어야 할길은 멀고도 험하기만 하고. 난, 언제 진부령에 닿을 수 있을까. 걷는다고. 마루금 걷는 걸 시작했다고 모두가 진부령까지 완주할 수 있는건 아닐텐데. 벌써부터 그리움의 진부령. 보이지 않는 그리움이 스멀스멀 피어난다. 도대체 몇 백개의 봉우리를 더 넘어야 할지. 난, 지금 가을의 문턱에서 서성이는 중인데. 내년 가을쯤엔 도달할수 있을까.


그렇게 걷다보니 붉은 여명이 악휘봉을 부드럽게 감싸주고 있었다. 오늘도 새벽은 그렇게 조심스럽게 내 곁으로 다가왔다. 무덤덤한 우리의 더듬이가 겨우 알아차릴 정도로만. 조용하고도 느리게 어스름을 밀어내고 있는 중. 순간, 뇌리에 이태원 참사때 비명에 쓰러져간 젊은 별들의 모습이 어렴풋이 스쳐 지나갔다. 국가가 지켜주지 못한 젊은 영령들의 수많은 울음소리가 귓가에 윙윙거린다.


별과 달이 자리를 비운자리에 새벽하늘을 수놓은 수많은 여명의 눈동자들. 그리고, 여명위로 붉디붉은 둥근해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우린 촛대바위 옆을 조용히 지키고 있는 아름드리 소나무 옆으로 다가갔다. 가냐리게 피어오른 핏빛 여명의 빛에 내 마음은 시나브로 전율이 일듯 얼어붙었다. 몸과 마음이 갑자기 정지된듯한 느낌. 저 소나무는 무슨 생각에 그리 골똘한 걸까.


지구별에서 절대로 일어나지 말아야할 일들이 일어났다는 웃픈 현실. 소나무는 아무 대답없다. 등로 주변 널부러져 흩날리는 낙엽들. 지나가는 나그네의 마음을 더욱 착잡하게 한다. 낙엽들 소리가 내 심장 깊은곳까지 파고든다. 숲의 새벽은 그렇게 싱그러웠고 밤새 숲이 토해낸 수분들로 가득했다. 지구별을 떠난 그 영혼들을 뒤로 한채 우린 또다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며 먼길을 떠나는 중.


수행도량인 봉암사에서 수행에 방해된다며 이곳저곳 목책으로 막아놓은 자리가 유난히 휑했다. 그 자리 애써 벗어났더니 683미터 주치봉 정상. 어디선가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몸을 기댄다. 홀연히 찾아온 이방인들을 위해 숲은 이 칠흑 어두움속에서도 잔잔한 몇 점의 바람을 선물해주었다. 그 바람에 온 몸을 맡겨 본다. 그렇게 무심으로 걸었더니 어느새 구왕봉.

한 여름 손수 아들 등목을 해주시는 어머니의 마음을 만난것처럼 아련했다. 나무들이 밤새 토해낸 싱그러운 공기를 폐부 깊숙이 흡입해 본다. 밤새 뜬눈으로 지새웠던 내 육신과 영혼까지 상쾌해지는 느낌이다. 정상에서 날 기다려준 아름드리 소나무 한그루. 소싯적 첫사랑을 다시 만난것처럼 살포시 안아주고 싶었다. 머얼리 봉암사 천년도량과 희양산이 보니 웬지 마음 울렁였다. 지름티재로 내려서는 낭떠리지길.


살짝 헛딛었다가 골로 갈수있는 위험천만한 길. 우린 바위 부여잡고 밧줄에 몸을 의지한채 한발 두발 내려섰다. 1번 올빼미 도하시작. 구령소리가 숲에 울려 퍼졌다. 저기 한국불교가 가부좌를 틀며 거침없이 흘러내리는 기슭. 그 남쪽끝에 아스라이 자리잡은 봉암사. 그 스님들 한참 정진수행에 열씸일테지. 내려오는 중 산짐승 한마리 소스라치게 놀라 달아났다. 보스락 보스락 낙엽들 소리 들으며 걷는길. 감미롭고 애틋한 길이다.


스스로 걷는자만이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마루금의 비밀공간들. 나무들이 내뿜는 수많은 숨들을 보라. 숲과 달과 별이 하나되는 새벽은 나를 행복의 길로 인도해주는 행복전도사였다. 깎아지른 절벽을 네발로 기다시피해서 내려선 곳은 지름티재. 난, 이곳 고개에서 온종일 걸었던 사연들을 모으고 모아 그져 글 한편 쓰고 싶은 마음 가득하다. 주변엔 온통 목책이 끝이없이 펼쳐져 있는 고갯마루.


산객들을 통제하기 위해 만들어 놓았다는 수많은 목책들은 나의 마음을 흔들어놓기에 충분했다. 꼭 이 방법밖에 없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구심들. 헤게모니들. 예전에 스님들이 지켰다는 감시초소도 보였다. 묵은 먼지들이 그위에 켜켜이 쌓이고 쌓여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했다. 그 위로 가을 낙엽들이 살포시 내려앉는 중. 희양산문봉암사.


한국불교가 똬리를 틀듯 조용히 쪼그리고 앉아있는 한국불교 선종. 그 구산선문의 하나. 해방후 성철스님을 위시해 불교정화운동이 활발히 일어났던 곳이다. 목책을 뒤로한채 다시금 네발로 기어 올라간다. 머리속이 어지럽다. 탈출할까. 포기한다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도 아닌데. 이를 악물고 다시금 오른다. 무엇이 나를 이끄는가. 그져 체력이 되는 한 오르고자 할뿐이다.

자신과의 약속이니 지켜야한다는 일념뿐. 올라가다 쓰러지기 직전까지 이를 악물고 올라야한다는 생각뿐. 방전되어가는 체력. 한숨이 절로 나오는 상황. 다시금 유격시작이다. 예측불허의 체력. 힘들땐 동료들의 응원이 힘이된다. 가진게 없으면 어떠리. 조금 부족하면 어떠리. 아무말도 하지 않아도 우리에겐 느껴지는 무언가가 생겨나고 있었다. 이 세상 산만큼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를 친밀하고 돈독하게 하는게 또 있을까.


산은 숲을 품고 숲은 나무를 품고 나무들은 대간러들 이끌어주고 대간러들 나무들 쓰다 듬어주고. 서로 공존의 숲이다. 여행의 묘미란 이렇듯 별게 아니었다. 굳이 너무많은 의미부여를 하는건 정말 금물. 큰 기대보다는 순수하게 과정을 즐기려는 열린 마음만이 필요할 뿐. 이러다보면 내 삶에 뭔가가 금새 채워진다. 어느새 마지막 봉우리가 지척이다. 좀전에 지름티재에서 포기했으면 어땠을까.


우린 이 순간 모두가 하나였다. 산이 주는 넉넉함에 취해 걷다보니 어느새 희양산. 그곳엔 우리만의 낙원이 펼쳐졌다. 구름과 나. 그리고 우리. 봉암사도 보였고 성철스님의 희미한 채취까지도 느껴졌다. 칠흑의 어둠을 뚫고 출발햇던 버리미기재는 아스라했다. 무사히 완주했다는 안도감에 취해 우린 하산을 서둘렀다. 쪽빛 하늘을 벗삼아 걷던길 들국화 몇 송이 하늘거리고 있었다.


가을의 노오란 숨결들이 바람에 부드럽게 출렁거리는 들녘. 비록 화려하거나 신비롭지 않았지만 노오란 원색의 들국화가 오늘따라 유나히 내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꽃다운 나이에 저 하늘 별이 되버린 이태원의 슬픔이 오버랩되고. 육체는 지쳐갔지만 영혼만큼은 말짱했던 하루가 아니었을지. 걷다보니 어느 아담한 마을이 나왔다. 어느 주막집에 들려 파전하나 시켜놓고 막걸리 한사발로 하루의 누더기들을 토해냈다.


어지럽게 흩날리던 일과들속에 어느덧 행복이야기가 꿈틀대고 있었다. 리무진 버스안은 조용했고 엄숙했다. 지친 영혼들이 쉬어가는 곳. 차창밖으로 다음 대간 산그리메가 드넓게 펼쳐졌다. 이만봉, 곰틀봉, 백화산, 조령산까지. 아직 갈길이 멀었다. 마루금의 모습이 희미해질 무렵 어느새 두눈은 스르륵 감기고 있었다. 다음 구간은 어떤 모습 보여줄까. 이렇게 별일많던 하루가 저물어 갔다.


계속해서, 가을 노송은 운무 가득 품어안고 편이 발행될 예정입니다.


PS) 일요일인 23년 10월 29일 서울광장에서 이태원참사 1주기 시민 추모대회가 열렸다. 아쉽게도 그 자리에 집권여당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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