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 해인사 소리길은

연휴 첫날

by 이재영

유난히 긴 장마가 끝나고 하늘이 푸른 날에 아내와 연휴 맞이 나들이를 나섰다. 울산 사는 처형 내외를 만나 한 차로 합쳐 해인사로 향했다. 아내와 처형은 주변에 일어난 일들을 시시콜콜 얘기하고, 동서 형님은 코로나 재확산에 대한 짧은 우려의 말만 나누고 묵묵히 내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 차를 몰았다. BMW 7 시리즈는 우수한 가동력으로 우리를 대구 교동시장 주차장에 내려놓았다. 점심때라 중간 기착지로 강산면옥에 들러 올해로 꼭 50년 된 전통의 평양냉면을 먹기로 했다. 6.25 전쟁 중이던 1951년 1.4 후퇴 때 평양에서 피신 와 대구에서 처음으로 평양냉면점을 개업했다는 강산면옥에는 코로나 상황에서도 줄 서는 사람들이 많을 정도로 성황을 이루어 있었다. 처형이 기운을 차리게 하는 맛이라며 우리를 이 집으로 이끌었다. 냉면과 만두가 맛있었다.


어제는 부산 삼성 밀면을 먹기 위해 줄을 섰다. 주물럭 밀면을 먹으면서 과연 냉면과 밀면의 차이가 무엇일까? 동료들에게 질의를 했다. 밀면은 부산사람들이 즐겨 찾지만, 냉면은 전국구라는 점. 냉면은 면발을 메밀이나 감자전분으로 뽑아 찬 육수에 말아먹고, 밀면은 밀가루로 뽑아 평상 온도의 육수를 부어 먹는 점이 다르다고 했다. 하지만 면위에 얹은 고명과 육수가 비슷하지 않은가? 심지어 맛조차 구분이 어렵다. 내가 느끼는 차이점은 밀면의 면발은 뚝뚝 끊기지만 냉면은 쫄깃거리는 식감이 있다는 미묘한 차이, 그리고 가격 측면에서 냉면이 밀면 값의 두배나 된다는 확연한 차이점뿐이다. 밀면이 더 대중적 음식이라 할 수 있겠다. 비슷한 맛을 저렴한 가격으로 먹는 부산사람들이 더 지혜로워 보인다.

고속도로 톨게이트와 해인사 일주문을 거쳐 가로수 터널을 지날 때 차 안의 온도계는 27도를 가리켰다. 대구 교동시장 앞 온도는 33도였다. 살갗을 뚫고 들어오는 작열하는 햇빛에 당황하며 모자를 찾아 쓰고서야 짧은 거리에 있는 냉면집에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청정한 적송이 하늘을 가리고 깊은 계곡의 물소리가 귓가를 스치는 해인사 약수암은 부드러운 햇살로 방문객을 맞이했다.


비구니들이 정진하는 약수암 아래채에 처형과 아내가, 멀리 떨어진 외사채에 동서와 나의 일시 거주처가 정해졌다. 그리고 베개와 얇은 홑이불 하나를 배정받았다. 깊은 산사에서의 하룻밤을 추위에 떨며 지새워야 할지도 모르겠다.

처형은 계곡 따라 마을 아래까지의 트래킹을 권하며 신발을 등산화로 바꿔 싣었다. 해인사로 이어지는 아스팔트 길을 지나자 말로만 듣던 가야산 소리길 입구가 보였다. 제주도의 올레길, 부산의 갈맷길처럼 트래킹 길에는 저마다의 의미를 가진 이름이 붙여진다. 소리길의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다정한 여인이 함께 걸으며 나누는 정담의 소리, 아버지가 아들에게 전달해 주는 훈계의 소리? 아니면 이 계곡 중간이나 끝에서 전라도 소리꾼이 불러주는 판소리 한가락을 들을 수 있다는 것 일까? 경상도 해인사 땅에서 전라도 소리꾼과의 만남이 준비되었다면 절묘한 결합이 아닐 수 없다. 기발난 착상이다... 처형이 알려주는 소리길의 의미는 계곡에서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걷는 길이란 뜻이란다. 계곡 물소리가 귓가를 스치며 마음속 도심의 회색빛 우울을 씻어주는 길을 걷는다. 그 의미가 상당하다.

마침 긴 장마의 큰 비로 계곡의 수량이 풍부했다. 깊은 계곡이라 바닥과 경사의 변화가 심하고 물 흐름이 급하다. 계곡물은 크고 작은 바위틈을 지나가며 요란한 소리를 질러 됐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지나갈 때 계곡의 급류가 일으키는 물보라와 공기의 변화가 얼굴을 스쳐 시원하게 느껴졌다. 옛날엔 이 계곡은 접근하기 어려운 깊고 깊은 산중이었을 것이다. 옛 선조 몇 분은 이곳을 방문한 기념으로 큰 바위에 한자 이름을 새겼다. 후손들은 낙서로 자연경관을 헤쳤다고 하지 않고 유산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소리길을 따라 걷다 보면 계곡을 굽이도는 소나 작은 폭포를 칭송하는 옛 선비의 한시가 판넬로 제작되어 군데 군데 걸려있다. 더러는 아름드리 나무가 찢기진 체로 옆으로 누워있고, 가지를 옆으로 뻗어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는 마음을 가르치기도 한다. 무슨 일이 있었기에 수백 년간 탈없이 자라온 강인한 적송이 찢겨 허리를 눕히고 있는 걸까? 호기심과 동시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조금 더 내려오면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 길상암의 여래불과 석탑이 계곡 한편을 차지하기도 하고, 1950년대 마을 주민을 위해 폭포수를 끌어 들려 전기를 공급했던 수력발전소를 복원한 간이 발전시설도 볼 수 있다.

소리길은 계곡을 따라 계속 아래로 이어지는데, 일부 산길은 옛적부터 다니던 길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해인사에 팔만대장경을 모신 이후부터 걸어왔던 옛길 일부가 소리길에 포함되었다. 안타까운 것은 다수 적송의 허리 부분에 솔껍질이 벗겨지고, 칼질한 자국이 남아 있다는 점이다. 일제시절 송진을 채취하여 전쟁물자로 사용했다는 어른들의 얘기를 듣고 일본을 향해 본노를 느꼈다. 더불어 1960대 우리나라 경제사정으로 소나무가 개발대상이 되었고, 3년 동안 송진채취 후, 원목은 벌채되었다고 한다. 원인 모두 우리의 아픈 과거와 가난했던 상흔이다. 수십 년이 흐른 지금도 소나무는 그 상처의 흔적을 그대로 안고 있다. 우리 개인도 과거의 아픈 생채기를 안고 살아간다. 옛 상처를 그대로 가지고 있는 소나무가 아름드리 나무로 자라 푸르름을 자랑하듯, 우리 개인도 그 과거를 극복하고 현재의 굳건한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고 자위하는 것이 좋겠다. 더 이상 과거의 몸부림에 빠져 현실에서 포기하거나 주저하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소리길을 따라 걷는 동안 우리들의 마음속에도 평화와 고요의 물길이 흘러내렸다. 6km 길을 두 시간 동안 걷어 소리길의 마지막을 알리는 작은 문을 통과했다. 택시를 호출해 약수암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 깊은 계곡의 이름이 홍류동 계곡이라는 것을 알았다. 여름날 시원하게 흐르는 계곡물이 주인공이 아니라, 가을철 온통 천지가 빨갛게 단풍으로 물들어 흐르는 곳임을 알게 되었다. 가을 어느 날에 다시 찾아와 이 계곡을 걸을 것이다. 그땐 내 마음도 함께 빨갛게 물들 것이다.


약수암으로 돌아와 가슴 시리도록 차가운 물로 샤워를 한 뒤, 노스님이 권하는 찻잔을 마주하고 앉았다. 조그마한 소반이 참하다. 따뜻한 베리 차는 목을 타고 넘어가면서 마음을 시원하게 달래 주었다. 노스님과 지완스님의 맑은 얼굴과 깊은 눈길이 편안하게 느껴졌다. 20대 초에 출가하여 50여 년을 깊은 산사에 거하신 77세의 노스님은 허리를 반듯이 세운 자세로 속세에서 접한 얘기들을 들려주셨다. 고속도로 휴게실에서 얻어먹은 말간 물(아메리카노 커피)이 좋았고, 꼬챙이에 꽂힌 아이스케키가 맛있었다고 하셨다. 삼대 구년만에 만났다는 얘기도 하셨다. 무슨 뜻일까? 할아버지 아버지 나를 포함한 삼대에 9년을 더하니 아주 오랜만이라는 뜻이라는 것을 인터넷을 통해 알았다. 스님들이 툭 내던지는 말씀은 화두와 같아서 오래 되새기지 않으면 무슨 말인지 모르고 흘러 보내길 십상이다. 이번 노스님과 만남에서 건진 한 마디는 '천 부처님이 와도 인연 없는 중생 하나 구원하지 못한다'라는 말. 곱씹어 볼 만한 말씀이다. 조그마한 체구에 반듯한 모습의 노스님은 천생 중이다. 뒤통수가 톡 튀어나와 둥글둥글한 모습이 귀여워 중의 머리통으로 아마도 제일로 칠 것 같다.


산사의 밤은 일찍 깊어진다. 밤 9시 주위의 불은 다 꺼지고, 밤하늘의 별들이 초롱거렸다. 몽골의 밤하늘과는 비교될 수 없지만, 그래도 무수한 별을 보려면 아무래도 약수암으로 찾아와야 할 것같다. 넉넉한 별들 가운데 유난히 반짝이는 별 하나가 당신을 반가이 맞이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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