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아들이 일으킨 오토바이 사고 수습을 위해 피해자가 살고 있는 대구에 들렸다. 지나치게 과한 보상을 요구하는 피해 학생의 영악함과 철저한 계산에 놀랐다. 사고 상황에 대한 이해나 조그마한 배려도 없다. 큰 바가지를 쓰는 기분이지만 아들을 위해 합의할 수밖에 없었다.
기분 전환을 위해 대학 동기를 불러냈다. 그는 은행의 지점장을 지내다 명퇴하고 대구에 살고 있다. 대구의 골목길 순례는 김광석 거리에서 시작했다. 김광석은 대구 대봉동 방천시장의 번개 전업사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노차사), 동물원의 보칼, 통기타 가수 등으로 큰 인기를 끌다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진 비운의 가객이다. 그의 사인에 대한 논란은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짝사랑을 그린 '사랑했지만', 이별의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였음을', 군 입대하는 '이등병의 편지', 사랑하는 사람을 잊지 못할 때 '사랑이라는 이유로', 좌절을 극복하는 '일어나', 정의를 외치는 '광야에서', 또 '서른 즈음에', 인생의 황혼기를 노래한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 등 숱한 노래로 인생과 감성을 감미롭게 표현했다. 그의 노래는 우수에 차고 외로움이 담겨 있다. 나도 젊었을 적 한순간 그의 노래를 듣다가 눈물을 지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도 매년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모여 '김광석 노래 부르기' 행사를 한다. 뮤지컬 '바람이 불어오는 곳'은 김광석의 사랑과 꿈과 우정을 노래한다. 김광석의 거리에 들려 그의 시와 노래를 들으며 내 어릴 적 아픔과 사랑과 그리움을 떠 올려 보는 것도 좋겠다. 잠시 정화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김광석 거리에 이어 반월당을 거쳐 약전골목으로 들어섰다. 내가 경북대학교에 다닐 때 거닐었던 거리다. 옛 골목은 사라지고 깔끔히 단장되었다. 차가 붐비던 중앙통은 차가 통제되고 사람들이 걷는 거리로 변해 있었다. 길거리에 즐비하던 난전은 없어지고 약방들이 줄어들고, 맛집들이 들어찼다. 한 30분 기다리다가 겨우 잡은 식당에서 내놓은 매운 갈비찜은 맛이 매우 좋았다. 김에 생강을 얹어 싸 먹는 퓨전식이었는데 부산에 가도 잘 팔리겠다. 이 맛을 배워 훗날 식당이라도 하나 낼까 생각이 들 정도로 맛났다.
약전골목에서 계산 성당에 이르는 골목길은 선비가 되기 위해 과거를 치르는 한양을 향해 걸었던 과거 길이 재현되어 있다. 약방, 시장 풍경, 과거시험에 합격해 어사화를 쓴 벽화가 재미있다. 우리나라 개화기 시대에 건축한 성당 내부를 둘러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다.
올해가 3.1 운동이 일어난 지 101년이 되는 해. 대구에서 3.1 만세운동이 일어난 90계단을 올라가면 청라언덕이 있다. 청라언덕 어디선가 많이 들었다. 어렴풋이 가사가 생각나 가만히 엂조려 본다. 대구 출생인 박태준이 지은 가사에 이은상이 곡을 붙인 가곡 '동무생각'에 등장한다. 청라언덕은 20세기 초 의료선교 목적으로 온 선교사들이 살았던 근대 건축물을 휘감아 둘렀던 푸른 담쟁이넝쿨이 있는 언덕을 지칭한 말이다. 지금은 제일교회로, 선교박물관과 의료박물관으로 꾸며져 있어 방문이 허용된다. 언덕 한편에는 대구를 사과로 이름나게 했던 대구 능금의 효시인 최초의 서양 사과 3 세목이 자라고 있다.
청라언덕을 내려와 길 하나 건너면 바로 서문시장이다. 서문시장에 대한 최초의 나의 기억은 경북대학교에 입학과 관련된다. 아버지께서 서문시장에 함께 오셔서 객지에서 자취할 자식을 위해 이불을 한 채 구매하시고, 돼지국밥을 사 주셨다. 그때 처음 돼지국밥을 먹어 봤다. 그리고 대학을 다니면서 틈틈이 서문시장을 스쳐 지났다. 대학시절 가벼운 주머니로 갈 수 있었던 곳은 대구백화점 뒤 막걸리 집과 서문시장 내 붕장어 대가리와 껍질을 연탄불로 구워 파는 막걸리 집이었다. 2천 원에 붕장어 대가리 열개. 구수하고 맛났던 그 옛적 서문시장이 이젠 현대화되어 야간에도 불을 환하게 밝히고 있다. 야시장을 찾은 젊은이들이 버스킹 노래를 들으며, 포장마차 앞에 줄을 서서 거리 음식을 사 먹고 있다. 비주얼로 식감을 자극하는 퓨전 음식들이 젊은 데이트 족을 유혹한다. 전통시장이 이제는 관광장소로, 데이트 장소로 이용된다.
김광석 거리에서부터 서문시장으로 이어지는 대구 골목 투어는 근대 문화거리로 조성된 뒷골목을 거닐면서 근현대 역사를 경험하는 체험 여행이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서 옛 기억을 떠 올리며 지난 얘기를 나누며 걷는 골목투어. 재미있고 의미 있는 도시 탐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