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재영 Aug 27. 2020

소풍 가는 날

장모님 상, 첫날

(1일 차)


전날 약속에 따라 아침 일찍 중간 약속 장소로 출발했다. 함께 가기로 한 친구는 갑자기 마음이 변하여 동행을 거부하고, 다음 기회에 별도로 방문하겠다며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친구를 픽업하기 위해 이 장소에 들린 것인데...


친구들과 지리산 피아골 가기로 한 약속을 취소하고 이번에 동행을 작정한 친구와는 계획대로 목적지로 향했다. 12시 40분쯤에 목적지 논산 상월에 다달았다. 경부 고속도로의 교통량이 적어 예정보다 목적지 근처에 일찍 도착했다. 근처 작은 물가 정자 옆 그늘에 돗자리를 폈다. 점심때라 논산 상월로 급하게 목적지를 변경한 친구가 피아골 계곡에서 먹기 위해 준비한 도시락을 이곳에서 일행과 나누어 먹기로 했다.


무얼 그리도 많이 쌌던지 도시락 가방이 개인지 모르겠다. 김치, 콩조림, 다진 고추 멸치볶음, 김치볶음, 콩나물 무 볶음, 부지깽이나물 무침 등 집에서 먹는 식단을 그대로 옮겨와 야외에서 점심상을 차렸다. 등산을 즐기는 친구가 밀양 표충사 뒷산에서 채취했다는 부지깽이 나물이 향긋하고 구수한 맛으로 입맛을 돋웠다. 압권은 제주도에서 공수한 생갈치 구이였다. 아이스박스에 넣어 온 생갈치를 꺼내 식용유를 두른 코펠 위에 얹고 버너의 불을 높였다. 고소한 냄새가 사방으로 퍼지고 갈치는 익어갔다. 한번 뒤집고 뚜껑을 닫았다. 잠시 후 노랗게 익은 갈치 한 토막씩 제 밥그릇으로 옮겨 나름 방식대로 뼈를 발라내고 부드러운 살을 입속으로 가져갔다. 내 방식은 양쪽 편 가시를 발라내고 몸통 삼분의 일 지점과 삼분의 이 지점을 길게 가른다. 가시가 모두 제거된 커다란 양쪽 살 조각을 오물조물 맛있게 먹는다. 그리고 가운데 큰 가시를 발라내고 오동통한 살 조각을 분리해 먹는다. 그러면 가시만 발라내게 되고, 맛있는 갈치의 살 조각을 온전히 먹게 되는 것이다.

반짝이는 제주 은갈치의 맛이 얼마나 맛있게요~. 코펠 한판 가득 은갈치를 구어 두 토막씩 먹고, 한판 더 구어 또 두 토막씩 먹었다. 부드럽고 고소한 맛. 이 맛에 제주 갈치를 찾는 것이다. 갈치 전문식당이 갈치 맛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갈치 원물이 맛을 좌우한다. 길가 정자 옆에서 구워 먹는 제주 은갈치 맛은 정말 휴가철 제주도에 가서 먹는 6만 5천 원짜리 갈치  맛에 비견할 수 있었다. 아니 오히려 갈치 살이 더 부드러웠고  감칠맛이 더 뛰어났다. 원물이 워낙 뛰어났으니까. 1인당 네 토막씩 먹었으니 양으로는 2인분씩 먹은 셈이다. 10만 원짜리 갈치구이를 먹은 셈인가? 맛도 좋았고,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야외 소풍 와서 갈치를 구워  먹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친구의 기발한 시도로 야외에서 갈치를 맛있게 구워 먹었다. 당신이 8월 어느 날  논산 상월  들판을 지나다가 맛있는 갈치구이 냄새로 입맛을 다셨다면, 그것은 바로 근처에서 제주 은갈치를 구워 먹고 있는 우리 곁을 지나간 것이다.


갈치 맛에 빠져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2시에 약속된 면회를 앞당겨 실시할 예정이니 서둘러 와 달라는 간호사의 요청이었다. 요양병원에 도착하니 코로나 예방을 위해 열을 재고 명부를 적고, 손에 소독제를 짜 주었다. 감염을  예방하기 위한 엄격한 통제는 당연하게 받아들였으나, 환자의 상태를 고려하여 면회를 제한하기로 했으니 돌아가 달라는 어처구니없는 말에 잠시 당황했다. 2시에 면회를 허용하겠다는 약속을 할 때는 언제고, 부산에서 4시간을 달려온 우리의 면회를 거부한다는 병원의 결정을 수용할 수는 없는 일이다. 결국 유리창을 맞다고 비대면 접견이 이루어졌다. 휴대폰을 꺼내고 스피커 폰으로 대화가 시도되었다. 유리 밖에서는 오직 '엄마'라는 눈물 젖은 외침만 계속되고, 유리 안 환자는 눈을 감고 깊은 침묵에 빠져 계셨다. 반복되는 '엄마!' 소리에 마침내 환자의 눈이 열리고, 시선이 주위를 한 바퀴 선회했다. 마스크 쓴 낯선 얼굴들이 누군지 알 수가 없으셨겠지. 마스크 벗어라는 소리에 다들 급히 마스크를 내리니 비로소 자식들의 얼굴을 구분하셨다. 엷은 미소를 띠며 몇 번 자식들을 향해 손을 흔드시고는 힘에 겨운 듯 눈을 감으셨다. 다시 '엄마! 엄마!'라고 외치는 소리, '우리 엄만 한 두 달 더 사시겠네.' 라는 걱정을 거두는 소리에, 환자는 기운을 다해 다시 깊은 눈을 잠시 떠셨다가 감으셨다.


다소 안심한 자식들은 그들이 온 서울로, 세종시로, 부산으로 차를 몰고 갔다. 우리 일행은 야외 소풍 온 기분과 사랑하는 엄마를 본 안심하는 마음으로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시골길을 따라 차로 천천히 달렸다. 한 20분 동안 차를 몰고 가면서 어느 휴게소에 들러 다시 돗자리를 깔고 저녁을 먹을까? 라면을 끓여 먹을까? 고민 얘기를 나누는 중에 전화벨이 울렸다. 병원이었다. '맥박이 잡히지 않으니 다시 돌아와 달라' 고 했다. 급히 차를 돌려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으로 돌아가는 길은 멀고도 아득하게 느껴졌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