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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영 Feb 01. 2021

볼리비아 라파즈, 마녀 시장과 달의 계곡

남미 여행 15

볼리비아 수도 라파즈는 원래 추키아고라고 불리던 인디언 거주지였다. 1548년에 스페인 알론소 데 멘도사 선장이 이곳을 발견하여 도시를 건설했다. 라파즈는 해발 3600 고도의 절구 모양의 지형을 가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고지에 자리한 수도다. 다른 가난한 나라들이 다 그렇듯이 볼리비아의 가난한 자들이 도심지로 모여들었다. 도시 중심에는 고소득자가, 가장자리 산 언덕 위는 저소득자들이 산다. 시가지의 아래와 위의 고도가 700m나 되고, 산소가 부족해서 고산병에 주의해야 한다. 덕분에 볼리비아 축구팀은 약체임에도 불구하고 홈경기를 라파즈에서 치르기 때문에 세계 최강의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 축구 대표팀과의 경기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라파즈는 산꼭대기까지 붉은 벽돌집으로 빽빽이 차있다. 집 뼈대 구조는 기둥이 콘크리트로 되어 있는데 기둥의 철골이 위로 뾰족이 드러나 있다. 이는 건축 중인 시설물로 신고되어 세금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란다. 이곳에서는 건축자가 호황을 누린다. 가파른 산비탈에 집을 짓은 까닭에 매년 수백 가구가 무너져 내리고 새로 집을 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달의 계곡 입구. 아기자기한 계곡사이를 걸으며 구경할 수 있다.

라파즈에서의 마지막 하루는 여러 관광지를 둘러보고 라파즈의 맛집을 찾아다니는 것으로 계획했다. 택시로 50 볼(1 볼,  160 원) 달라는 달의 계곡을 3 볼 주고 시내버스를 타고 갔다. 달의 계곡은 원래 인디오들이 영혼의 계곡이라고 불렸다. 산과 계곡이 폭우와 풍화로 깎겨 내려와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달에 첫발을 내딛은 닐 암스트롱이 이곳을 방문한 뒤, 마치 외계 풍경같이 전혀 낯선 풍치를 자아냈다고 해서 달의 계곡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곳이다. 조밀하고 아기자기한 계곡은 규모는 적지만 계곡 사이를 직접 걸어 다니며 구경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도중에 아이들과 청소년들이 춤추는 것을 촬영하는 팀을 만났다. 민속춤을 보고 사진을 찍을 수 있어서 큰 다행이었다.

이곳도 한류 열풍으로 젊은이들이 케이팝을 흥얼거린다. 1549년에 지어진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로서 남미에서 손꼽히는 외관을 가진 산 프란시스코 성당을 방문했을 때이다. 안내하는 아가씨의 영어 설명을 듣고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중, '혹시 한국에서 왔느냐?'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렇다'라고 하니 반갑게 인사하더니 한국말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무작정 따라 부르던 케이팝 노래의 의미를 알기 위해 독학으로 공부해서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까지 참석했다는 아가씨의 한국어는 비교적 발음도 정확했고 설명도 능숙했다. 한류 열풍으로 한국의 위상이 높아진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다음으로 메르카도 네그로  시장, 속칭 마녀 시장에 갔다. 서양 영화에서 볼 수 있은 고깔모자, 망토 등을 키가 작고 몸이 굵고 땅딸한 할머니들이 파고 있었다.  가게에는 다양한 상품 외에도 주술 또는 신에게 제사드리는데 필요한 과자, 꽃 말린 것, 화려한 색체의 이런저런 진기한 것들을 팔고 있었다. 특히 새 집을 지을 때 마당에 묻으면 행운이 온다는 믿음 때문에 가게마다 태중, 또는 어린 라마를 말린 것들을 주렁주렁 매달아 놓은 것이 이채로웠다.  


오랜 여행으로 머리가 길게 자랐다. 특히 이발료가 우리 돈 1,500원 정도로 싸다니, 머리를 깎아 보기로 했다. 머리 스타일이 볼리비아 풍이라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그래도 머리칼은 자라는 것이라 시간이 흐르면 나아질 것을 기대한다. 각 나라마다 스타일이 다르군.


남미에서 제일 가난한, 그래서 물가가 싼 이 곳에서 간단한 먹을거리를 사고, 우유니 소금 사막을 가기 위해 저녁 7시에 버스에 오르다. 12시간 동안 비포장도로를 밤새 달려야 한다.

라파즈를 빠져나오는 길에 저 멀리 만년설로 덮인 6,480m 거대한 일리마니 산이 버티고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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