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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영 Jul 23. 2020

빛고을 광주, 그리고 목포

휴가철을 맞아 국내여행, 세번째 이야기

대학 2학년 겨울 방학때 기차타고 전국을 한바퀴 돌았다. 그 때 광주 송정역옆 여관방에서 라면으로 늦은 저녁식사를 떼웠다. 새벽녁에 완행열차를 타고 목포에 가서 유달산을 한바퀴 돌았다. 수산시장을 둘러보고 목포에서 가까운 섬에 가서 텐트치고 하루를 묵었다. 그리고 썰물로 넓게 펼쳐진 새벽 갯벌을 호기심으로 맨발로 걸어보기도 했다... 수 십년이 흘러 광주를 다시 찾아가려니 지난 기억들이 하나 둘 떠 올랐다.

광주는 달라졌고, 송정역 부근은 구도심지로 변했다.

목포 유달산엔 이순신 장군 동상과 임진왜란때 왜군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기 위해 군량미로 위장했던 노적봉이 그 자리에 그대로 우뚝 서있다.

노적봉 바로 아래에 구 목포 일본영사관이 기념관으로 변모하여 관광객을 른다. 목포항 개항, 일본의 쌀 수탈과 전쟁 준비, 항일운동의 애국자 등 역사적 유산과 기록들이 근대 도시 목포의 탄생을 설명한다. 항공폭격을 피하기 위한 방공호, 우리 말을  말살하고자 사용했던 일본어 교본, 전쟁 막바지에 민간인이 사용하던 놋그릇까지 수탈해 가고 대신 나누러 주었던 사기 밥그릇에는 '결전'이라는 단어가 선명하다. 잘못된 과거의 행위를 반성할 줄 모르는 일본. 영사관 앞에는 일제의 침략과 수탈을 잊지 않도록 소녀상이 세워져 있다.

목포 도심지 바로 옆 해안가가 잘 가꾸어져 있다. 필리핀 마닐라베이를 연상시킨다. 데크를 걷는 이에게 바다위를 걷는 느낌을 준다. 가슴을 시원하게 청빛으로 물들게 한다.

천년기념물 제500호로 지정된 목포 갓바위에는 두가지 전설이 서려 있다. 첫번째는 아버지의 관을 바다에 빠트려 불효를 통회하며 하늘을 바라볼 수 없다며 갓을 쓰고 자리를 지킨 아들이 죽은 후 솟아오른 바위라는 전설이다. 그리고 부처님과 아라한이 영산강을 지나다가 잠시 쉬던 자리에 두고 간 삿갓이 바위가 되었다는 구전 얘기가 그것이다.  


일제시대 부두 노동운동, 광주학생의거, 광복후 정부수립시기 여순항쟁, 5.18광주항쟁 등 불의와 탄압을 거부하고 의연히 일어섰던 전라도다. 일제의 수탈에 대항에 최초로 노동운동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입은 피해와 억압, 고통은 전라인으로 하여금 속마음을 외부로 나타내지 않고 속으로 숨기도록 만든 원인이 되었다. 더 이상의 피해와 고통를 받고 싶지 않은 것이다. 역사적 한이 서린 광주와 목포는 시민의식과 노동의식이 낮아 보인다. 내가 만난 이 지역 여러사람들은 계급과 질서에 순응하고, 상급자에 대한 충성심이 높았다. 내 판단과 선입관이 사실과 다르길 바란다. 과거 이 나라의 민주주의 발전과 독재정권을 물리치는데 기여해 온 이 지역 주민의 성숙된 의식은 여전히 마음속에 잠재되어 있을 것이다. 필요할 때 사회적으로 발휘되어 자유롭고 평화로운 시민사회를 만드는데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근대역사와 현대가 공존하는 목포를 떠나 부산 집으로 돌아온 이틀 후에야 목포 신항에 바다에서 끌어 올린 세월호가 있다는 것이 생각났다. 찾아가 아이들에게 애도를 표하고,  침몰 원인이 조속히 밝혀질 것을 기원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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