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문장은 매우 중요합니다. 아무리 훌륭한 글이라도 처음엔 그 첫 문장으로 시작했으니까요. 작가들도 첫 문장 만들기가 가장 어렵다고들 하잖아요! 첫 문장만 쓰면 그다음 문장이 풀린다고들 합니다. 그 말은 다소 과장된 듯한 느낌이 있긴 합니다. 하지만 그만큼 처음 한 문장이 매우 중요하다는 걸 강조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그 첫 문장은 그냥 첫 문장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 문장을 생각하기까지 다양한 이야기 감을 머릿속에 떠올렸을 테니까요.
그 첫 문장! 유아들과 함께 만들어보면 어떨까요? 딱 한 문장으로 시작해 보는 겁니다. 작가처럼 첫 문장을 떠올리기 위해 고심해야 할 필요 없습니다. 그래도 문장의 구성요소를 갖춘 문장이면 좋겠습니다.
영어의 경우, 주어(임자말)에 강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문장 안에 항상 주어가 있어야 합니다. 주어를 만들 수 없다면 비인칭 ‘it’이라도 사용해야 합니다. 단, 구어에서는 주어를 생략해도 됩니다. 그런데 우리말에서는, 구어가 아니라 문어에서도, 주어 생략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아이들과 한 문장을 만들 때는 문장의 구성요건을 모두 갖춘 문장을 만들어보면 좋겠습니다. 이때 ‘주목술카드’를 사용하면 좋습니다. 주목술카드는 제가 만든 카드인데, 뭐 대단한 건 결코 아닙니다. 아래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카드 1장에 각각 하나의 주어, 목적어(부림말), 서술어(술어)를 적어놓은 카드입니다. '주목술카드'라는 파일 이름으로 업로드해 두었습니다. 제가 예시로 몇 가지를 넣었으니 여러분들이 아무 단어(아이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단어)나 추가하여 만드시면 됩니다. 무작위로 주어, 목적어, 술어를 골라주는 놀이자료를 파워포인트로도 만들어서 업로드 했습니다(주목술_자동선택).
주목술카드 예시
주목술카드를 사용하면 문장을 떠올려야 하는 부담이 없습니다. 주어, 목적어, 술어 모음에서 각 한 장씩 무작위로 골라서 순서대로 배열하기만 하면 됩니다. 예를 들어, 주어 카드에서 ‘나는’, 목적어 카드에서 ‘밥을’, 그리고 서술어 카드에서 ‘먹는다.’라는 카드를 골랐다면, 그 카드 순서대로 “나는 밥을 먹는다.”라는 문장을 완성하기만 하면 됩니다. 하나도 어렵지 않습니다.
무작위로 카드를 고르기 때문에 말이 안 되는 문장이 나올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나는 밥을 먹는다.”와 같이 ‘말이 되는’ 문장보다는 “할아버지가 코끼리를 먹는다.”와 같이 ‘말도 안 되는’ 문장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문제’는 문제가 아니고 오히려 상상력을 발휘할 기회가 됩니다. 말이 안 되는 문장이 나오면 말이 되게 바꾸면 됩니다. 이때 아이들 나름대로 생각의 나래를 펼치게 됩니다. 예를 들어, “할아버지가 코끼리를 먹는다.”는 “할아버지가 코끼리 모양 쿠키를 먹는다.”와 같이 바꿀 수 있습니다.
굳이 문장을 바꾸지 않아도 됩니다. “할아버지가 코끼리를 먹는다.”라는 문장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여, 이어지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구성할 수도 있습니다. 딱 1 문장 만들기에 만족하려고 했으나 의도하지 않게 후속 이야기가 줄줄이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이상한’ 문장이 나오면 아이들이 가만있지 않습니다. 새로운 문장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할아버지가 코끼리를 먹었대!”라며 박장대소하며 웃다가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지 설명하는 문장이 이어지는 겁니다. 1 문장이 자연스럽게 2 문장이 되고 5 문장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무작위로 만든 ‘이상한 문장’을 ‘말이 되는’ 문장으로 바꿔도 되고, 아니면 다른 문장을 도출해 내는 실마리 문장으로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코끼리가 할아버지를 먹는다.”와 같은 문장을 만들었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합니다. 이러한 뒤집음은 혼란을 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혼란은 새로운 상상의 시작일 수 있습니다.
‘손 같은 고사리’, ‘풍경 같은 그림’, ‘시간 같은 쏜살’...... 한 번의 뒤집음은 혼란을 가져온다. 억압적 관계 맺음 뒤의 무정부 상태. 신은 뒤집힌 상태에서 출발한다. (이성복, 2001: 224쪽)
코끼리가 할아버지를 먹었다고 해서 두려워할 필요 없습니다. 어쩌다 보니 할아버지가 코끼리 뱃속에 그냥 갇힌 것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1). 갇힘은 절망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평온함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만족할 수도 있습니다2).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쨌든 코끼리 뱃속이니까, 나가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피노키오처럼 재치 있게 탈출에 성공하면 됩니다.
제가 업로드한 주목술카드를 사용해도 좋지만 다양하게 변형한 자료를 활용해서 1문장 만들기를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지은 선생님은 젠가를 활용했습니다.
이지은 선생님의 주목술 젠가놀이
주목술별로 동그라미 색 스티커를 붙여 컬러코딩을 했고(예를 들어, 주어는 빨간색, 목적어는 노란색, 술어는 파란색), 주어, 목적어, 술어 단어를 라벨지에 인쇄해서 붙였습니다.
놀이 방법은 젠가보다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빨간색(주어)를 뽑은 다음에는 반드시 노란색(목적어) 나무토막을 빼내야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놀이를 하다보니까 아이들끼리 눈감아주기도 하고, 무너질 것 같으면 같이 붙잡아주기도 했다고 하더군요. 젠가 놀이가 아니라 1문장 만들기 놀이를 하고 있다는 걸 아이들도 잘 알고 있으니까요.
젠가에 단어를 각인한 주목술 젠가는 시중에도 판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미리 각인된 단어만 사용할 수 있고 단어를 추가, 삭제할 수 없습니다. 아이들의 요구에 따라 단어를 바꿔줘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번거롭겠지만, 라벨지에 인쇄해서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라벨지의 점도가 높으면 단어를 교체할 때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럴 때는 점도를 약간 낮춘 다음에 붙이면 됩니다. 라벨지에 인쇄한 다음, 유리 등에 몇 번 붙였다 떼는 걸 반복하고 나서 붙이면 점도가 낮아져서 나중에 쉽게 뗄 수 있습니다.
이성복(2001).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 이성복 아포리즘. 서울: 문학동네.
1) 사람들은 모두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데 일부 몇 사람만 그런 가능성을 실현하는 이유에 대해, 매슬로우(Abraham Maslow)는 위대해지는 것을 꺼려하는 인간의 성향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겁을 먹고 거역한 탓에 고래뱃속에 갇히게 된 요나의 이름을 따서 ‘요나 콤플렉스’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Maslow, A.H. (1993). The farther reaches of human nature. NY: Penguin Publishing Group. (34쪽).
2) 바슐라르(Gaston Bachelard)는 매슬로우와는 다른 의미의 ‘요나 콤플렉스’를 언급한 바 있습니다. 바슐라르는 어머니의 자궁에서의 편안함으로 회귀하려고 하는 상태를 ‘요나 콤플렉스’라고 말합니다. 즉 모태귀속본능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자면, 숨바꼭질을 하다가 다락방의 좁은 공간이나 장롱에서 느꼈던 평화로움과 같은 것입니다. Bachelard, G. (2023). 공간의 시학. (곽광수 역). 서울: 東文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