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가 할아버지를 먹은 문장을 시작으로 할아버지의 ‘코끼리 뱃속 탈출기’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한 문장을 주제문장으로 활용해 보는 것입니다. 한 문장을, 다음 문장을 이끌어 내는 수단으로만 사용할 것이 아니라 다음에 이어지는 이야기 모두 한 문장과 관련되게 만들어보는 것입니다. 주제문장을 기반으로 이야기 만들기를 하면 ‘말이 안 되는 문장’에서 ‘말이 되는’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고, 이야기 구조가 튼튼해질 수도 있습니다.
코끼리가 할아버지를 먹은 문장을 주제로 이야기를 만드는 건 쉽지 않습니다. 원래 의도와는 다르게 자꾸만 주제에서 벗어나는 이야기가 펼쳐질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지속적으로 첫 문장 내용을 상기시켜주어야 할 필요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때 신중해야 합니다. 억지로 하면 곤란합니다. 아이들의 이야기가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와중에, 자꾸만 주제문장을 상기시킨다면 아이들의 생각 흐름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주제에서 벗어나도 좋습니다.
만약 한 문장을 주제문장으로 활용하여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면 알아두어야 할 점이 있습니다.
한 문장이 “사랑한다”와 같이 생각이나 느낌을 담은 동사를 포함하고 있다면 주제문장으로 활용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사랑한다.”가 아니라 “사랑해서 어떤 행동을 했다.”와 같이 행위를 담은 동사라면 주제문장으로 활용하기가 쉽습니다.
글쓰기에 능한 작가라면 상관없겠지요! 하지만 아이들과 이야기 만들기 할 때는 어렵습니다.
행위를 담은 동사라고 하더라도 그 행동의 여파가 자기에게만 미친다면 주제문장으로 활용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 같은데 자기 마음에 확신이 없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래서 애꿎은 아카시아 잎을 떼어냅니다. 한 잎씩 떼어내면서 ‘사랑해,’ ‘사랑 안 해.’라고 말하고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런 행동도 ‘행동’이긴 합니다. 하지만 그 행동이, 현재 직면하고 있는 상황에 미치는 영향은 극히 제한적입니다. 이야기 속에서는, 누군가가 무슨 행동을 한다면 그 행동이 미치는 파장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행동을 담은 문장을 주제문장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실제 삶에서는 3년째 짝사랑만 하고 있어도 됩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 하나 없이 그냥 마음속으로만 짝사랑해도 됩니다. 그런데 이야기에서는 다릅니다. 이야기에서는,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 마음을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짝사랑하는 사람을 따라다니기라도 해야 합니다. (아니, 그건 곤란합니다. 스토킹은 범죄니까 그건 안 됩니다.) 선물이라도 줘야 합니다. (아니, 그것도 안 되겠군요.) 어쨌든 사랑하는 사람에게 ‘절대로’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행동으로 표현해야 합니다.
최연철, 2024. 2. 12 (wrtn으로 그림)
영화 시나리오나 연극 대본이라면 굳이 행동으로 보여주지 않아도 마음 상태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플래시백이나 독백, 방백 등을 통해 관람객들에게 자신(주인공)의 감정 상태에 대해 알려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에서는 그렇게 하기가 어렵습니다. 더구나 아이들 이야기에서는 그렇게 전개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사랑하는지 아닌지 생각하느라 시간을 많이 쓸 수도 없습니다. 아무튼 이야기는 계속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느낌 동사로 된 문장을 주제문장으로 삼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사랑한다면 무엇인가 해야 합니다. 그 행동이 이야기에 나타나야 합니다.
사실 실제 삶에서도 행동이 중요합니다. 어떤 행동을 취하고 나면 사랑한다는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이야기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야기하는 사람이 (행동을 통해) 확신을 가지게 되면 이야기가 더 재미있어집니다. 참 이상하죠? 확실한 느낌을 가지고 싶다면 그 느낌을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행동을 하면 느낌을 공고해집니다. 이야기에서는 주인공의 행동이 그의 성격이나 인격보다 훨씬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