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한 종이 인간의 고군분투기 9
지난 화에서 언급한 ‘나는 초민감자입니다’를 읽고, 지속적인 심리 상담을 진행하며 나 같은 민감자가 실행에 옮겨 볼만한 몇 가지 방법들을 파악해 보았다. 첫 단계는 내가 예민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 자극을 받고, 그로 인해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알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소리와 타인의 감정에 특히 예민했고, 그것이 곧 나의 신체적 피로와 정신적 우울로 이어졌기 때문에 그 두 가지에 대해 중점적으로 인식해보고자 했다. 그것이 어떤 것인지 알았다면 다음 단계는 실행인데, 그 방법은 큰 의미에서는 의외로 간단하다. 자극을 주는 요인을 피하거나, 피할 수 없는 자극은 막는 것. 하지만 이것을 실천하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평생 동안의 사고 회로를 바꾸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나는 어떤 것을 새로 배울 때 항상 기초책부터 한 권 사버리는 습관이 있는데, 그 습관을 여기서 활용해 보려 한다. 새로운 생존법을 배우기 위한 셀프 기초책이다.
<이림 생존법 기초: 내가 자극받는 요소 알기>
'선호하지 않는다. 싫다'가 아닌, 나에게 두통이나 오심, 급격한 피로 등의 신체적 변화를 야기하고 강한 스트레스감, 불안감과 같은 정신적 충격을 유발하는 외부 요인들을 나열해 본다.
사람이 많고 시끄러운 번화가나 실내
밀집된 지하철이나 버스 안
목소리 큰 사람
언성 높여 말하는 사람
불평하는 소리
큰 음악 소리 (혼자 들을 때는 괜찮음)
주변의 언쟁
대부분의 단체 모임
좁은 공간을 공유하는 것 (너무 가까운 사무실 책상이나, 출장 시 숙소 공유)
장시간 지속되는 대화
엄청 활발한 사람
나에 대한 과도한 질문
견제하거나 경쟁심이 느껴지는 환경
개인 시간이 예측 어렵거나 확보 안 되는 상황
거짓말
사내 정치
평가하는 말
통제하는 성향의 상사
겨울
공포영화나 잔인한 것
신체적 접촉
내 물건을 빌려가거나 쓰는 것
할머니들을 마주하는 것 (눈물버튼)
엄마와의 대화 (항상은 아님)
기타 등등... 차차 추가하기로 한다.
<이림 생존법 기초: 물리적 필터 장착하기>
나에게 자극을 주는 요소들을 알았다면 이제 이 자극들이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나에게 신체적이나 정신적 영향을 주지 않도록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한다. 가장 기초적인 방법은 물리적인 필터를 장착하는 것이다. 먼저, 완성된 리스트에서 피할 수 있는 자극이 무엇인지 골라내 본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피한다는 것이 외부 요인들을 바꾸려고 한다거나 원천 봉쇄를 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는데 있다. 예를 들면 목소리가 큰 사람에게 목소리를 작게 바꿔달라고 하거나 무작정 마주치지 않으려 한다던가 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번잡한 곳이나 밀집된 대중교통 같은 경우는 최대한 가지 않는 행동으로 피할 수 있다. 큰 음악소리나 나와 상관없는 주변의 언쟁도 나의 귀를 막는 행동으로 막을 수 있다. 굳이 다 들으면서 고통받을 필요가 없다. (내가 조율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노이즈캔슬링 이어폰이나 귀마개를 적극 활용하자. 겨울은 피해 갈 수는 없지만 대비할 수 있다. 난방비 아낀다고 계절이 일으키는 우울의 폭풍을 맞지 말자. 이렇게 타인과의 간섭 없이 나의 작은 행동으로 거를 수 있는 것이 충분히 많다. 이것들을 물리적으로 차단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효과가 있다고 하니 잘 실천해 보도록 한다. 실제로 또 다른 예민한 인간인 나의 친구는 선글라스와 귀마개와 속칭 '이모셔널 서포트' 물병을 항상 들고 다닌다.
기초를 배웠다면 다음은 심화단계이다. 나의 감정을 타인의 감정과 구분하고, 타인과의 소통 방법을 바꾸는 것을 배워야 한다. 이것은 앞의 방법보다 조금 복잡하니 다음장에서 세세히 다뤄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