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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림 Jul 24. 2024

민감자의 생존법 -3-

예민한 종이 인간의 고군분투기 11



    <이림 생존법 고급: 예민함 갈고닦기>


     지금까지 외부 자극을 막거나 필터링하여 나에게 부정적인 영향이 미치지 않게 하는 방어 방법들을 익혔다. 다음은 공격 방법인데, 타인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예민함을 어디에 사용하고 사용하지 않을지 스스로 정하여 이 무기를 예리한 칼날로 만드는 과정이다. 그러기 위해선, 나를 힘들게 해온 민감함이 평생 나를 괴롭히기만 하는 짐이 아니라, 장점 또한 될 수 있고 그것을 어디에 활용할지 내가 정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예민한 사람들은 환경에 적응을 매우 잘하고 어떤 성격의 사람이건 잘 어울릴 수 있는 편이다. 그 이유는 집단의 분위기나 사람들의 감정을 잘 알아채기 때문인데, 그 분위기를 깨지 않으려고,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을 맞춰주려고 나의 성향은 잘 드러내지 않는다. 그것이 나를 편하게 하는 방법이고 또한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방법은 점점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내가 어떤 것에 감정이 상하고 어떤 것에 괜찮은지, 나라는 사람의 성격은 무엇인지 점점 알 수 없게 만든다. 좋게 말하면 무던함이지만 이것은 내 속을 갉아내어 겉에 덧바르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첫 화의 "아니 이거 왜 이렇게 했어?"같은 그의 말에 대한 답변은 나의 경우엔 항상 "역시 반장님이 최고예요. 안 계셔서 현장 난리 났었잖아요."라는 너스레였다. 나는 그가 원하는 대답이 그것인 것을 알고 있었고, 그렇게 내가 반응하였을 때 그가 의기양양 해져서 못 이기는 척 나의 부탁을 들어주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내가 원하는 방향인 줄 알았으나, 내가 했던 행동은 단지 그의 기분을 맞춰주어 언쟁을 만들지 않으려는 행동이었을 뿐이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그날 매일 하던 너스레를 떨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나의 솔직한 마음을 들여다 보고 그의 기분에 상관없이 뱉어 볼 수 있었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왜 내 탓이야. 자기가 현장 비워놓고. 나한테 짜증 내지 말고 니 할 일 하세요. 나 너보다 바빠죽겠으니깐." 간극이 정말 크다. 이렇게 직설적은 아니더라도 내가 진짜로 생각하는 바를 말했더라면 무언가가 내 안에 쌓이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생각해 보면 그는 나에게 내 비위를 맞춰라라고 한 적이 없다. 그저 내가 혼자 그가 원할 것 같은 것을 스스로 행하였을 뿐. 나는 내가 친절하고 내가 나의 것을 내어주면 상대도 날을 감추고 진정한 관계로 거듭날 수 있다는 큰 이상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사람과 환경은 나의 이상대로 움직여주지 않으므로 내가 이상을 내려놓아야 하고, 타인을 감싸 안으려는 오만함도 내려놓아야 한다. 타인을 위해 나를 바꿀 필요도 없고, 내가 상대에게 느끼는 것이 무엇이건 나의 언행은 나의 감정과 나의 생각에 따른 것이어야만 한다.  


     상대의 감정보다 나의 감정을 먼저 헤아리고 정확히 알 것. 나로서 말하고 나로서 행동할 것. 내가 진정으로 원할 때만 나의 예민함을 활용할 것. 이것이 첫 번째 행동 수칙이다.


    두 번째 행동 수칙은 내가 원하는 것을 확실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지난 연애 관계를 되돌아봤던 상담 세션에서 기억에 남는 선생님의 질문이 있다. “연인에게 원하는 게 무엇이었어요?” “저는 그냥 그 사람이 있기만 하면 됐는데요...” 내가 대답하면서도 황당했다. 나는 내가 상대에게 원하는 건 이것이다라고 말로 나타내었던 적이 없다. 때로는 날 신경 써준 상대가 상처받을까 봐, 때로는 나의 못난 마음이 무참히 밟혀버릴까 봐. 과연 있기만 하면 됐을까? 아니었다. 그저 관계에 압도되어 내 감정을 들여다보고 표현할 줄 몰랐던 것이다. 내가 나의 진짜 말을 했을 때 타인의 반응이 예상이 갈수록 더욱 나를 숨겼다. 직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러한 행동은 관계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만든다. 요즘엔 거절하는 연습, 타인보다 나의 원하는 것을 먼저 생각하고 말하는 연습을 하고 있는데 생각보다 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대화가 명료해지고 존중받는 느낌이 든다. 내가 바라는 것을 타인이 알아채주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나 또한 타인의 생각을 나의 직관으로만 짐작하지 말고 정확히 묻고 대답을 듣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그것이 맞더라도 틀리더라도 말이다.



    <이림 생존법 심화: 나를 치유하기>


    기초, 중급, 고급 단계에서 나온 모든 방법을 행하였음에도 이미 내가 신체적, 감정적으로 영향을 받고 에너지가 소진되었다면 그것을 회복시키는 방법 또한 알아야 할 터이다. 나는 지난 글에서도 밝혔듯, 우울한 파도가 몰려오거나 소진되는 느낌을 받을 때 사람들을 더 만나러 다니거나 새로운 취미를 만들어대면서 나를 일으키려고 노력했었다. 하지만 이번에 알게 된 것은 나는 그런 행동들을 했을 때 더 소진되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쉼의 기간 동안 찾은 나의 에너지를 차오르게 하는 것들에 대해 기록해두려고 한다.


집을 청결하게 한다. 

   -나는 주변이 깔끔해야 마음이 안정된다. 집이 더러워지기 시작했다면 내가 힘들다는 신호임을 알아챈다.

요가를 한다.

   -나는 취미 부자일 수 없는 사람이다. 재미있고 잘하고 싶은 한 가지에 집중해서 일 외에 성취감을 느낀다.

매일 오롯이 나 스스로를 케어하는 루틴을 지킨다.

   -일어나서 일기 쓰기, 창문 열고 스트레칭 및 명상, 아침 먹기, 책 읽기. 이 시간은 어떤 것에도 방해받지 않도록 한다.

자기 전 명상

   -모든 생각의 고리를 끊고 나의 뇌와 몸을 이완시켜 잠을 잘 자는 것에만 집중한다. 잠은 많은 것을 치유한다.


    이 외에도 욕조목욕하기, 건강한 음식 먹기 등 많은 것들을 행하고 있지만 이 모든 치유 방법의 핵심은 하나이다. 내가 어디에서 에너지를 얻는지 알 것. 에너지를 빼앗기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이다. 나를 잘 아는 것. 그것이 제일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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