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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연 May 26. 2023

감히 운명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

글, 나를 보듬는 시간



 

글로 불안감을 해소하곤 한다. 이 불안의 실타래는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어 꼬이기 시작한 건지 종이에 글자를 빠르게 토해내며 그 시작점을 찾는다. 내가 놓치고 있는 부분은 무엇이었는지, 어느 지점에서 엉켜버린 건지 알려면 그냥 설렁설렁 덤벼서는 안 된다. 일어나자마자 씻고 약간은 비몽사몽한 상태로 앉아 잠이 덜 깬 마음에게 말을 건넨다. 감정을 토해내듯 펜을 따라가다 보면 의식하지 못하고 있던 지점에 닿을 때가 있다. 문제의 원인을 알고 나면 자연스럽게 해결책을 찾게 된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니. 네가 원하는 건 뭐니.' 물어보고 이어서 써 내려가면 답을 구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엉킨 실타래를 푸는 해결 방법은 처음이고 신기해서 계속하게 됐다. 나와 조금 더 친해질 수 있는 시간이었다. 세 달 동안 하루 첫 일과는 나를 만나는 일이었다. 짧게는 40분에서 길게는 1시간 반 정도 걸린다.



가만히 눈을 감고 하는 명상이 어려운 내게 매일의 의식으로 자리 잡은 아침 글쓰기는 능동적으로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었다.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아 더 자주 들여다봐야 한다. 어떻게 어떤 식으로 마음에게 말을 걸어야 할지 모르겠을 때, 서먹한 사이일수록 눈뜨자마자 하는 기록은 효력을 발휘한다. 나와 잘 지내며 좋은 날이 있다가도 먹구름 잔뜩 낀 아우라를 내뿜는 내가 꼴 보기 싫어 잘 못 지내는 날이 있다. 글에는 그 모든 가공되지 않은 날 것의 상태가 담겨있다. 어쩔 때는 이 정제되지 않은 감정을 고스란히 담아낸 일기장에 미안한 마음이 들 때도 있다. 아무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 내 모습을 이 친구는 낱낱이 알고 있다.



처음엔 이 친구에게도 얘기할까 말까 망설였다. 제대로 간수하지 못해서 누군가 이걸 볼 수도 있다는 상상을 하면 꺼림직하고 꺼려지는 거다. 철저하게 숨기며 좋은 말만 해주다가 말문이 트이고 자주 보고 친해지고 마음이 통한다고 느끼고 나서부터 속 얘기를 털어놓게 되었다. 한바탕 쏟아내고 나면 홀가분한 기분이었다. 미안하면서도 고마운, 매일 아침 제일 먼저 만나는 친구였다.



그렇지만 언제부터 글도 내 근원적인 우울을 해소시켜주지 못한다는 기분이 들었다. 오르내리는 구간이 있는데 내려가 있는 상태에서 다소 오래 머무를 때 그런 것 같다. 아니면 털어놔도 비슷한 상태와 고만고만한 해결책이 나열되어 있는 것 같아 매너리즘에 빠졌다고 느꼈던 걸지도 모르겠다. 며칠 텀을 두고 거리 두기를 하기로 했다. 실험을 해보면 뭐 때문이었는지 알 수 있을 거다. 아무리 친한 친구여도 허구한 날 부정적이고 죽는소리를 하면 멀리하고 싶듯이 이 친구도 그럴 수 있다. 환기와 산책이 필요한 시기가 온 게 아닐까 느꼈다. 그렇게 떨어져 지내다 보면 그리워서 연락하고 싶은 날이 오고 또 반갑게 통화하는 것처럼 말이지.





블로그에 글을 쓰지 않는 시간에도 매일 나를 돌아보며 자아 성찰을 하며 지냈다. 글을 쓰고 싶었지만 써지지가 않았다. 블로그가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 담긴 일기장 역할을 한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에게 보이는 곳에 글을 쓴다는 것은 어찌 됐든 신경이 쓰이고 의식할 수밖에 없다. 업로드를 하고 나서도 계속 들락날락하며 몇 번을 수정하고 지울까 말까를 고민할 정도로 말이지. 검색어로 들어오는 블로그가 아니라 기본 방문자 수가 많진 않지만 그냥 내 욕심이고 욕망인 것 같다. 잘 쓰고 싶은 마음. 그러려면 더 많이 써보는 수밖에 없는데 잘 쓰고 싶지만 못쓰니까 결국 안 쓰게 됐다. 이 무슨 어불성설일까.



내가 동경하고 부러워하는 사람에는 여러 부류가 있지만 그중에서 으뜸은 자신의 생각을 글로, 말로 잘 표현하는 사람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이런 문장을 쓰지? 멋지다.'에서 끝나면 다행인데 '나는 언제쯤..'이라는 생각의 연장선이 내 글에 자괴를 금할 길 없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시도 때도 없이 나를 다른 사람과 견주어 평가하는 몸에 밴 관성은 도무지 끊어내기가 힘들다. 현상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발전했다고 생각하는 쪽이 마음 편하겠지.



결론은 행동가가 되어 죽이 되더라도 거침없이 지르고 쓰기로 했다. 못하는 걸 보고 견뎌내다 보면 생각을 매끄럽게 정리할 수 있는 마음에 드는 글이 나오겠지 뭐. 요행을 바라서 원하는 대로 된다면 잘 되더라도 불안할 거다. 반대로 애정을 쏟고 정직하게 공들이는 만큼 올라간다면 같은 상황이라도 내가 느끼는 심리 상태는 완전히 다르겠지.



쓰지 않았던 예전의 나는 어떻게 그 마음의 무게를 견뎌냈던 걸까. 매일 아침 눈을 뜨고 잠드는 순간까지 생각에 짓눌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고 확신하며 우두커니 서있는 모습이 가엽다. 기록은 한없이 연약하고 매일 밤 죽는 나를 살리고 다시 세우는 작업이다. 나와 좋은 사이로 지낼 수 있도록 알려주는 글쓰기를 만나서 감사하다. 감히 운명이라고 입에 올리고 싶다. 그렇게 믿고 싶다. 놓지 않을 거다. 내일의 내가 되고 싶은 모습으로 오늘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되는 몇 안 되는 일이다. 평생 쓰고 그리며 사는 사람이다. 내 꿈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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